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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22. 2016

동학, 더불어 삶을 가르치다(5)

동학이야기 세 번째, 동학과 공동체

5. 어울려 살지 않으면? 죽는다


다시, 오늘날 우리, 우리 사회가 어울려 살기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을 돌이켜보자. 


이대로는 더 이상 인류의 행복과 공리공영 추구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생명공동체, 지구공동체의 생존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 상황에서 자구책으로 모색되는 것이 바로 어울려 살기라고 했다. 어울려 살기가 우리 모두(!)의 방주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어울려 살기’임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동학에서는 어울려 살기를 더 이상 미루다 보면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다고까지 경고한다. 


“이 몸은 선천이기(先天理氣)로 화생함이요 이 마음은 후천이기(後天理氣)로 받음이라, 이런고로 세상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지 아니함이 아니건마는, 후천 운수를 알아 지키지 아니하면(이것이 각자위심의 삶이다-인용자 주) 한울이 간섭치 아니하는 바, 한울이 간섭치 아니하면 오직 사람의 중함으로도 놀다가도 죽고, 자다가도 죽고, 섰다가도 죽고, 앉았다가도 죽을지라. 이와 같이 죽음이 무상한 것은 그 간섭치 아니함을 반드시 알지라. 만일 지키는 사람도 이 운수의 근본을 알지 못하면, 설령 정성이 지극할지라도 한울이 간섭치 아니할 터이니 깨닫고 생각하라.”(의암, 권도문)


오늘날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정도가 심해지는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각종 재난을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 자연적인 현상이 인간의 무분별한 성장 중심 경제와 그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 그리고 그에 따른 지구 온난화의 결과라고 보는 점에서는 인재(人災)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결국 이것을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문제이다. 인간이 저질러 놓은 일이니 인간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는 좋게 볼 수 있으나, 여전히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의 한계이다. 신(한울님)에 예속되는 길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신을 온전히 내 안에 받아들이는 자기고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겸허함이 필요하다. 


“사람은 다 모신 한울님의 영기로 사는 것이니, 사람의 먹고 싶어 하는 생각이 곧 한울님이 감응하시는 마음이요, 먹고 싶은 기운이 곧 한울님이 감응하시는 기운이요, 사람이 맛나게 먹는 것이 이것이 한울님이 감응하시는 정이요, 사람이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 바로 한울님이 감응하시지 않는 이치니라. 사람이 모신 한울님의 영기가 있으면 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죽은 것이니라.”(해월, 향아설위)


(다음, '6.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나눈다 - 유무상자'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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