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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20. 2016

동학, 더불어 삶을 가르치다(4)

동학이야기 세 번째

4. 동학, 한울과 사람과 귀신의 어울려 삶을 말하다 


해월은 일찍이 벽을 향하여 제사 지내는 그때까지의 제사 방식을 혁파하면서 ‘나를 향하여 제사상을 차리는 향아설위’의 제사법을 주창하였다. 이것은 동학이 선천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벽하는 운수를 말하고 실천하는 가르침임을 보여주는 가장 결정적인 대목이다. 


“나의 부모는 첫 조상으로부터 몇 만 대에 이르도록 혈기를 계승하여 나에게 이른 것이요, 또 부모의 심령은 한울님으로부터 몇 만 대를 이어 나에게 이른 것이니 부모가 죽은 뒤에도 혈기는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요, 심령과 정신도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제사를 받들고 위를 베푸는 것은 그 자손을 위하는 것이 본위이니, 평상시에 식사를 하듯이 위를 베푼 뒤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심고하고, 부모가 살아 계실 때의 교훈과 남기신 사업의 뜻을 생각하면서 맹세하는 것이 옳으니라.” (해월, 향아설위)


향아설위의 제사법에 이르면, 동학에서 어울려 삶의 범위는 하늘과 사람과 땅(자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까지 이르러 귀신과도 어울려 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오해 없이 제대로 이해하려면 일찍이 동학의 한울님은 “귀신이라는 것도 나(한울님, 鬼神者吾也)”라고 했던 것을 알아야 한다. 


아무튼 우리는 귀신과도 어울려 살고 있음을 의암은 아래와 같이 설파하였다. 


무릇 성현의 덕은 화하는 것이 초목에까지 미쳐서 간섭치 않음이 없고, 덕은 창천과 같아서 만방이 다 같이 힘을 입느니라. 그러므로 천추만대에 한울같이 받들며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사람마다 도를 이루게 하니, 주고받는 것이 불 본 듯이 밝은 것이니라. 성인의 가르침과 덕을 늘 생각하여 잊지 않으면, 성인의 마음과 신의 밝음이 내 마음을 비치나니, 그 주고받는 것을 말할 적에 벽에 의지하여 주는 것인가, 사람에게 의지하여 주는 것인가. 사람과 더불어 주고받는 것이 황연히 의심이 없느니라. 이로써 보면 향아설위가 어찌 옳지 않겠는가.”(의암, 수수명실록)


동학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은 물론 이 세상 만물은 본래 한몸(동귀일체)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나와 한몸(=한울님)에서 나온 형제요(人吾同胞), 이 세상 만물도 나와 한몸(=한울님)에서 나온 형제(物吾同胞)라고 설파하는 것이다. 


해월이 하늘과 사람과 땅이 어우러져 사는 이치를 말한 결을 따라, 의암은 우리가 그렇게 세상을 살고, 그렇게 도를 닦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여 변화가 무궁하고, 사람은 밥에 의지하여 만사를 행하는지라, 어찌 도를 멀리 구하며 능히 근본을 깨달아 지키지 아니하리오. 모름지기 사람마다 신령한 마음이 있어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수족이 있어 능히 동정함으로써 만사를 능히 다하여, 마시고 먹고 입는 바는 도시 다른 바 없건마는 그 근본을 알아 지키는 것이 적으므로, 한울을 등져서 영대가 혼미하고 진실로 한울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지라. 군자는 이것을 능히 알고 순히 지켜서 잠시라도 떠남이 없으므로, 영대가 한울같이 신령하고 그 밝음이 일월 같고 그 앎이 귀신같아서,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고 귀신으로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할지라.”(의암, 권도문)


(다음, '5. 어울려 살지 않으면? 죽는다'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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