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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7. 2016

다시 읽는 신인철학(29)

제3장 우주 속의 인간의 지위


제1절 인간생명의 진화


1. 불연기연에서 


"천고의 만물이여, (而千古之萬物兮) 

각각 이룸이 있고 각각 형상이 있도다(各有成各有形)


보는 바로 말하면 그렇고 그런 듯하나(所見而論之則 其然而似然) 

그 부터 온 바를 헤아리면 멀고도 심히 멀도다(所自而度之則 其遠而甚遠). 

이 또한 아득한 일이요 헤아리기 어려운 말이로다(是赤杳然之事  難測之言). 


나의 나 된 것을 생각하면 부모가 이에 계시고(我思我則 父母在玆), 

뒤에 뒤 될 것을 생각하면 자손이 저기 있도다(後思後則 子孫存彼). 


오는 세상에 견주면(來世而比之則) 

이치가 나의 나 된 것을 생각함에 다름이 없고 理無異於我思我), 

지난 세상에서 찾으면 (去世而尋之則)

의심컨대 사람으로서 사람 된 것을 분간키 어렵도다(惑難分於人爲人).


아! 이같이 헤아림이여(噫 如斯之忖度兮). 

그 그러함을 미루어 보면(由其然而看之則)

기연은 기연이나(其然如其然)

그렇지 않음을 찾아서 생각하면(探不然而思之則) 

불연은 불연이라(不然而思之則 不然又不然). 


왜 그런가(何者). 

태고에 천황씨는 어떻게 사람이 되었으며(太古兮天皇氏 豈爲人) 

어떻게 임금이 되었는가(豈爲王). 

이 사람의 근본이 없음이여(斯人之無根兮)

어찌 불연이라고 이르지 않겠는가(胡不日不然也). 

세상에 누가 부모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世間孰能無父母之人). 

그 선조를 상고하면(考其先則) 

그렇고 그렇고 또 그런 까닭이니라(其然其然又其然之故也). (중략)


이에 그 끝을 헤아리고 그 근본을 캐어 본즉(於是而揣其末 究其本則)

만물이 만물되고 이치가 이치 된 큰 일이(物爲物 理爲理之大業) 

얼마나 먼 것이냐(幾遠矣哉). 

(동경대전, <불연기연>)*


*[편역자 주] 불연기연(不然其然)은 말하자면, '동학의 논리학'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인식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학 공부의 오묘한 묘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우선 그 길을 따라가 보자. 


2.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이것은 수운의 인생관의 일절이다. 우주와 인생의 관계를 말한 것이다. 

천지만물을 현상 그대로 본다면 "그렇고 그렇고 또 그렇다[其然如其然], 즉 각자의 특성으로 각자 생활을 도모하는 생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편역자주]이를 '각자위심(各自爲心)'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세상 만물이 제각기 저 스스로 생겨난 줄 알고 살아가는 것, 혹은 '나는 나고, 너는 너'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나아가서, 그러므로 어떻게든 내가 이익을 보고, 내 이익이 최대가 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각자위심이다(편역자의 '각자위심' 해석임). 

 

그러나 천지만물의 본원을 거슬러 올라가[遡求] 논한다면 묘연(杳然)과 헤아리기 어려움[難測]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이치를 미루어 우리 사람을 돌아 본다면 이것이 오는 세상[來世]와 지난 세상[去世]에 이 하늘과 땅만큼[天壤]의 차이가 생긴다. 오는 세상로서 본다면 자손으로부터 자손에 유전하여 무궁히 흘러 갈 것이나, 지난세상으로 돌이켜 생각[溯考]해 보면 의심컨대 사람으로서 사람된 것 아님이 확실하다. 


가령 이 예를 천황씨*라하는 가정한 인류의 시조가 있다고 가정해 보면 그 인류의 시조는 어디로부터 생겼다 할까? 천황씨는 인류의 근원이 끊어진 곳에서 생겼다고 상상할 수밖에 없은즉, 마침내[究竟] 인류는 비인류(非人類)인 대자연계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겠느냐? 


*[편역자 주] 천황씨 :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 삼황(三皇, 천황, 지황, 인황)의 한 사람으로, 12 형제가 각각 만 팔천 년씩 왕 노릇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동학 경전서는 "최초의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만 팔천년'이란 선후천을 아우른 시간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진화론과 수운주의 인생관이 합치되는 점이다. 그리하여 "만물이 만물 되고 이치가 이치 된 일이 얼마나 먼 것이냐[物爲物理爲理之大業 幾遠矣]라는 말에 이르러 천지만물은 무궁으로부터 흘러 온 것을 알수 있으며, 그리하여 인간성 자체도 천지만물을 통하여 무궁에 연원(淵源)하고 무궁에 근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람은 어떤 시대에 돌연히 출생한 것이 아니요, 무궁자의 한울성이 천지만물을 통하여 사람에게 이른 것이라 하는 것이다.


(다음 '2. 진화론과 수운주의 인생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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