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창간 100주년 D-1년에
[이 글은 <개벽신문> 제85호(2019.6) '개벽의 창'(사설) 글의 1/4입니다(6월 15일자)]
1.
<개벽> 창간 100주년을 만 1년 앞둔 시점에 기적처럼 ‘개벽’이 부활하는 중이다. 특히 지난 1년 사이에 ‘개벽’에 대한 관심이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한 기세로 달아오르고 있다. 처음 개벽종교와 개벽파로 가시화된 이 움직임은 개벽학으로 비약을 하더니 이제 개벽대학과 개벽도시를 너머 개벽나라를 상상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개벽마을, 개벽학당, 개벽포럼, 개벽경제, 개벽문학, 개벽청년(벽청), 개벽연구회, 개벽문명, 개벽저널, 개벽라키비움, 개벽아카데미…. 이러한 신생 용어들은 전통적인 개벽 담론(용어, 개념)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서 개벽의 부활을 촉진하고 원시반본과 수미쌍관, 오래된 미래로서의 개벽의 본류를 되살린다.
다시개벽이 그 원조이고, 선천-후천개벽, 도덕개벽, 인심개벽, 물질-정신개벽, 정신-민족-사회개벽(삼대개벽), 인문개벽, 제도개벽, 영성개벽 등은 1860년 동학 창도 당시부터 제기되어 천도교,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이른바 개벽종교 흐름 속에서 심화, 분화, 조화를 이루어 왔다. 그리고 지금부터 99년 전 1920년 6월에 <<개벽>> 잡지가 창간되는 것을 계기로 하여 동서 문명을 회통하는 방면으로도 확장되었다.
또 <<개벽>>을 발간하는 <개벽사>와 그 모체인 천도교청년당의 7대 부문(어린이, 학생, 청년, 여성, 노동, 농민, 상민) 운동을 중심으로 한 신문화운동을 통해 생활 현실에서의 개벽이라는 지평을 새롭게 개창하였다.
현재 인터넷 매체(다른백년)에 연재중인 ‘개벽파 선언’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거나 배경으로 하면서 한국 근현대 사상사와 인식의 지평을 개벽파의 눈으로 재정의하고, 세계 문명의 흐름을 개벽파의 눈으로 재구축하는 개벽공사(開闢公事)를 수행한다. 동시에 개벽학당에서는 ‘개벽의 눈으로 본 한국사상사’ 강의가 벽청들과 공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오전), 제4차 산업혁명-이라기보다 제1차 디지털혁명 시대 현재 철학-사상/문화/경제/과학 등 여러 방면의 흐름을 개벽 시대의 징후로 재구조화하는 지적 탐색도 진행(오후)된다.
이미 대학(교수)이나 한국 문화 담론 지형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진영(잡지/출판)에서도 관심을 표명하고, 학술발표에서 중요한 주제 – 일회성이 아니라 미래로 열린 주제로 자리매김하였으며, 국내 여러 운동 단체(조직)나 공동체가 관심을 보이고, 해외(일본)에까지 개벽파/개벽학 소식(?)이 전해져 연대를 모색하는 연락이 당도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오래전부터 ‘개벽’이라는 말을 곱씹으며(또는 꼭 개벽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더라도, 그 지향에 있어서는 여지없이) ‘다시 개벽’의 철학과 사상, 실천과 영성으로서 수양하며 때를 기다려 오던 수많은 은둔/고립/독립적 개벽파들이 속속 그 정체를 밝히며 제자리에서 개화(開花)한다는 소식도 수시로 들려오고, 그 꽃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개문납객(開門納客)이 재현되고 있다. 개벽만발(開闢滿發)이다.
이러한 개벽담론의 도약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로 보면 여전히 개벽은 국소적인 용어이고 때로 부정적인 반응마저 불러일으키는 용어이며, 무엇보다 거의 ‘듣보잡’에 가까운 용어라는 점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하여, 지금의 이 흐름을 개벽이라는 용어 대신 대전환 같은 좀더 보편적인 용어로 순화/완화/조화롭게 사용하는 전술적인 후퇴를 제안하는 사람도 여전히 있다.
그러나 길이 있어서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는 대로 길이 열리고, 길이 우리를 따라온다는 믿음처럼, 개벽파나 개벽학이란 선험적인 개벽을 추수하거나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개벽을 개벽하는 생생(生生)의 과정이며 창조 작업[述而創作]이라고 보면, 이제 와서 ‘개벽’이라는 말을 우회하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다가온다.
이 흐름 속에서 (재)창간 이후 몇 년 동안 죽은 듯이 그 생명력을 근근이 이어오던 <개벽신문>은 개벽 플랫폼으로서의 존재감/역할을 기대하고 기약하고 기도하는 기운이 뚜렷해지고 있다. (1/4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