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창간 100주년 D-1년에
[이 글은 <개벽신문> 제85호(2019.6) '개벽의 창'(사설) 글의 2/4입니다(6월 15일자)]
2.
다시, 개벽 시대가 <개벽>지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화’하고자 한다. 본디 개벽파란, 최근에 비로소 개벽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말하고,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160년 전 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학 창도 이래로, 개화파나 척사파와 달리 우리나라의 주체적인 근대 – 개벽을 예기(豫期)하였던 스승들과 그것을 믿고, 그것을 위하고, 그것을 향하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갑오년(1894)의 동학혁명과 갑진년(1904)의 개화운동, 그리고 기미년(1919)의 삼일운동으로 폭발하였던 개벽운동의 숨가쁜 흐름을 이어 받은 100년 전의 개벽청년들은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를 창립(1919)하고, 곧이어 좀더 긴 호흡으로 개벽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전략적인 교두보로서 천도교청년당(후에 ‘청우당’으로 이름을 바꿈)을 창당(1923)하였다. 천도교청년당은 스스로를 “천도교의 주의 목적을 사회적으로 달성코자, 이에 시종(始終)할 동덕(同德)으로써 한 개 유기적 전위체를 조직하여 그 명칭을 천도교청년당이라”고 규정하였다.
다시 말해 ‘청년당(靑年黨)’은 식민 당국을 대체하여 독립 국가를 책임질 정치적 유기체로서 정치적 주의와 정책을 추진하는 주체로서의 정당(政黨)일 뿐만 아니라-이라기보다는 “낡은 단계가 무너지고 새 단계가 지어지려 할 그 운회(運會)”을 맞이하여 그에 따른 “역사적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에 상응한 주의 정책 하에서, 일정한 의식분자를 결합한 조직”으로서의 “획시기적 당(黨)”(<<天道敎靑年黨小史>>), 즉 동학 천도교의 다시개벽을 앞장서서 이끌어갈 개벽청년[同德]들이 한몸처럼 결속한 ‘개벽당(開闢黨)’이다.
이들은 “지상천국건설”을 핵심 목적으로 하고 이를 위하여 “사람성 자연에 맞는 제도의 실현”과 “사인여천 정신에 맞는 새 윤리의 수립”을 두 축으로 하며, 이를 위하여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의 삼대개벽을 실천 방법론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개벽당을 조직하고 이끌어나가는 주체로서의 개벽당원의 자격-의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1. 주문을 매일 백오회 이상 묵송
2. 천도교 서적을 중심하여 매일 1쪽[頁] 이상의 정독(精讀)
3. 매일 30분 이상의 육체훈련
4. 침식 출입 동정에 당을 위하는 심고
5. 언제든지 당의 특정 지령에 복종할 것
6. 당의 경비를 부담할 것
7. 포덕과 당화운동을 일상적으로 노력할 것
8. 자기 의향에 의하여 7부문 운동의 1종 내지 3종 부문에 가입 활동할 것
(<<천도교청년당소사(天道敎靑年黨小史)>> 「당헌(黨憲)」 – 당원의 실행 의무조항)
첫째, 제1항 주문은 동학 천도교의 21자 주문[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을 말한다. 이 주문을 매일 백오회 이상 묵송(黙誦; 소리 내지 않고 주문을 외는 것)하는 것은 ‘영성개벽’을 최우선 요건으로 한다는 뜻이다. 영성개벽은 ‘정신개벽’을 포함하되 그보다는 넓은 개념이다. 동학의 관점에서 영성(靈性)이란 ‘무궁한 생명을 자각하는 감성’이다. 무궁한 생명이란 동학의 말로는 ‘무궁한 이울, 즉 한울님’이다; “너는 반드시 한울이 한울된 것이니, 어찌 영성이 없겠느냐. 영은 반드시 영이 영된 것이니, 한울은 어디 있으며 너는 어디 있는가. 구하면 이것이요 생각하면 이것이니, 항상 있어 둘이 아니니라.”(<<의암성사법설>>「법문(法文)」)
둘째, 제2항은 독서이다. ‘동학시대(1860-1905)’에서 동학도인은 “열세 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리”(용담유사, 교훈가)라는 수운의 말에 기대어 ‘글(책)을 통한 공부’보다/는 가급적 배제하고 주문 수행만을 유일한/유효한 공부의 방법론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였다. 그런데, 1920년대의 개벽청년들은 주문수행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우면서도 바로 다음에 ‘일일독서’를 강조함으로써 동학공부의 지평을 새롭게 해석/확장/개벽한다.
셋째, 제3항은 육체훈련이다. 이것은 청년당 시절 내내 중요 정책적 과업으로 당원들에게 ‘정말(丁末=덴마크식) 체조’를 보급하는 것으로 현실화된다. 육체훈련으로서의 체조란 단지 육체의 건강을 도모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조직의 규모와 기강을 강화하는 훈련이다.
넷째, 제4항은 일상에서 당을 위한 심고(心告)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심고는 ‘마음에 고한다’는 것으로 그 전제는 ‘사람은 한울님을 모신 존재’라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즉 심고에서 ‘마음’은 곧 한울님 자체 또는 한울님이 모셔진 장소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청년당원으로서 모든 일을 시작하거나 마칠 때에 한울님에게 그 일의 자초지종을 예고하고 보고하는(마음으로서) 것으로 어떠한 일이든 한울님의 간섭(=保佑) 가운데서 진행함으로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바로 심고이다. 이는 모든 천도교인들에게 부과되는 수양 과목이기도 하다. 이로써 청년당의 일은 ‘한울일’이 되고, 청년당원은 ‘한울청년’이 딘다.
다섯째, 제5, 6, 7항은 일반적으로 유기성을 기본으로 하는 조직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여섯째, 제8항은 천도교청년당이 현실 사회에서 전개한 구체적인 운동인 ‘7대 부문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규정한 것으로 3개 부문 이상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기회에 상술하겠지만, 이 7대 부문운동은 사실상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토대를 새롭게 만드는 운동이었고, 그것이 해방 이후 청우당의 부활과 더불어 정치이념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실천적 자산이 되었다. (3/4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