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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17. 2019

<새책>
한국 근현대사와 종교자유

- 이진구 지음,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이 글은 <<한국 근현대사와 종교자유>>의 '서문'입니다.] 




서문


종교자유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쓰고 있던 어느 날 동료 연구자가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종교자유가 학문적으로 유효한 주제인가?”


가뜩이나 글이 진척되지 않아 고민만 하고 있던 중에 들은 이 한마디는 뒤통수를 치는 일격이었다. 


그에 의하면 종교자유는 철지난 주제였다. 그의 말을 좀더 부연하면 이렇다. 1980년대까지는 종교자유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겠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더 이상 이슈가 되지 못한다. 군사정권 시절 진보 진영의 종교계 인사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받은 억압은 정치적 탄압인 동시에 종교 탄압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정치투쟁은 종교자유와 관련되어 있었고 종교자유를 위한 그들의 투쟁은 민주화 운동에 기여를 했다. 그러므로 군사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자유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국가권력에 의한 종교 탄압이 사라졌기 때문에 종교자유가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없다.


그의 입론이 맞는 것 같았다. 1990년대 중반이었던 이 무렵에는 국가권력이 노골적으로 종교를 탄압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사회적 차원에서도 종교자유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입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종교자유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과 미션스쿨에서의 종교자유 논쟁이 대표적인 사안이다. 이 두 문제는 군사정권 시절에도 존재하였지만 당시에는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진보적 종교계 인사들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종교자유가 문제로 되었을 뿐 소수파 종교집단이나 미션스쿨 학생의 인권 문제는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전 사회 영역으로 확산되면서 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급부상하였고 그 과정에서 병역거부와 미션스쿨의 채플 문제가 공론의 장으로 올라온 것이다. 이들의 인권 문제는 종교자유 문제였다. 이 무렵에는 공직

자의 종교자유의 권리와 종교적 중립의 의무 사이의 갈등을 둘러싼 논쟁도 벌어졌다.


이처럼 군대(병역), 학교, 공직사회를 둘러싸고 종교자유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라는 시민단체까지 등장하였다. 이 단체는 ‘종교인권’을 기치로 내걸면서 우리 사회의 종교자유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모색하고 있다. 필자는 이 단체의 설립을 보면서 종교자유가 철지난 주제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의 하나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아가 종교자유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는 중요한 학문적 렌즈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일제하 식민지 당국과 개신교 선교부가 미션스쿨의 종교교육과 신사참배 문제를 둘러싸고 벌인 논쟁과 갈등, 그리고 일제의 종교법 제정에 대한 개신교계의 인식과 태도를 주로 다뤘다. 그 후 개신교 이외의 종교들은 종교자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에는 종교자유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차에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저술 사업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을 토대로 하면서도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여 개항 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기 즉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종교자유 문제를 다뤘다. 그렇지만 막상 집필을 끝내고 보니 개신교의 비중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다른 종교전통과 종교자유의 관계에 대한 필자의 분석 작업이 충분치 못해서 나타난 현상이지만 한국 근현대사와 종교자유의 관계 속에서 개신교가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필자의 두 번째 저서이다.『한국 개신교의 타자인식』(2018, 모시는사람들)이라는 책에서는 해방 이전 개신교가 교파, 종교,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타자에 대해 지닌 인식과 태도를 분석하였는데, 국가라는 거대한 타자는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 책의 말미에서 국가와의 관계는 후속 작업에서 다룰 것이라고 약속하였는데 이번 책에서 국가를 중요한 대상으로 삼았다. 종교자유와 표리관계에 있는 정교분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국가이기 때문이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 이 책의 각 장은 이미 지면에 발표한 글들이다. 해방 이전의 종교자유에 관한 장들은 대부분 이 책의 집필 이전에 쓴 글들을 수정 보완한 것이지만, 해방 이후의 종교자유에 관한 장들은 대부분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중간 점검을 위해 지면에 발표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어느 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선후배 동료 연구자들의 도움에 감사한다. 때늦은 원고를 꼼꼼하게 다듬어 깔끔한 책으로 만들어 준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2019년 5월 이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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