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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18. 2020

일본 재발견

- 일본인의 성지(聖地)를 걷다 


1. 아는 만큼 보인다 - 일본 


개인적으로 일본인을 만나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일본인이 한국의 역사나 한국인의 심성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다’거나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것이다. 반면에 세계 최고의 독서국가답게 여전히 ‘많은 수’를 자랑하는 일본의 서점엘 가면 가장 눈에 잘 띄는 매대(賣臺)에 다종다양하게 비치된 것이 ‘혐한’ 관련 단행본이다. 그 옆에 자리 잡은 월간지에도 ‘혐한’ 관련 기사는 꼭 한두 개 이상이 들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십여 년 전부터 여러 겹의 변형을 거치며 지속되고 있는 ‘한류’의 결과로 한국에 대해 예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된 부분도 있지만, 그 역시 한국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인)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유럽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유럽이야 한국으로터 따지면 지구 반대편의 나라이고 보면,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무지와 왜곡된 인식에 비할 바는 아니다. 더욱이 한국인에게 일본(인)은 제1의 관심(미움도 포함한) 국가이고 보면, 일본(인)의 이러한 대 한국관(韓國觀)은 한편으로 허탈하기까지 하다. 


이런 평가를 한국인 자신에게 돌려보면 어떤가.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잘, 깊이 알고 있을까? 우리들 대부분은 일본인을 ‘반성할 줄 모르고’ ‘망언을 일삼으며’ ‘부조리한 국가(정부)에 저항할 줄 모르는’ ‘국민’으로 알고 있다. 그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알고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일본(인)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다. 그러나 ‘미워하면서 닮아 가는 법’이다. ‘너무 미워하기만 하는 것’은 일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일본을 제대로 모르고서는 결코 일본에 당한 뼈저린 역사를 제대로 청산할 수 없을뿐더러, 마음으로는 멀지만, 몸[지리적․경제적]으로는 가까운 나라일 수밖에 없는 일본(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에게 언젠가는 해 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우리와는 ‘가깝지만 먼 나라’ 그 자체이다. 멀리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 왕조 연간의 크고 작은 침탈, 근대 식민지시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부대끼며 애‘증’(愛憎)을 누적시켜온 한일관계가 진정으로 ‘정상화’ 되는 날이야말로 ‘한반도의 평화’가 명실상부하게 자리 잡는 날이 될 것이다. 극일(克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용일(用日: 일본 활용)이고 용일을 위해서는 지일(知日)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극일(克日)을 넘어 화일(和日)이고 포일(包日: 일본을 포용함)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 

화산의 신을 모시는 아소신사 입구의 사쿠라몬(櫻門)

2. 일본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 - 일본인의 성지 


한국인도 그렇지만 일본인이라고 해서 한 가지 성향을 띤 사람들의 무리는 아니다. 그 안에는 극단적인 혐한류(嫌韓流)에 기대는 극우(極右) 세력에서부터 평생에 걸쳐 좌파운동을 해 온 사람들, 그리고 ‘극우 혐한 세력’을 혐오하고 막아나서는 ‘양심적인 일본인’들까지 다양하다. 이들 모두가 ‘일본인’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줄 안다. 


일본인들이 그 속마음(혼네, 本音)을 감추는 국민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깊은 대화나 진정성 있는 교류를 위해서는 그 본심(本心)을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경로 중의 하나가 일본인의 심성을 형성해 온 ‘종교적’ 성지(聖地)들을 찾아가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이다. 


일본인의 종교적 성지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신화(神話)와 관련된 성지들이다. 일본의 경우 ‘팔백 만’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할 만큼 많은 신(神)과 그에 따르는 신화(神話)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도 구체적인 유적(ex: 神社, 寺刹)을 배경으로 전승되고 있어 가히 ‘신화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다종다양하다. 이들 중에는 한반도와 관련된 것들도 적지 않고, 그들 중 일부는 한국과 ‘역사분쟁’의 근원이 되는 것도 다수이다. 일본인은 현재의 ‘일왕’(‘天皇’)을 ‘살아 있는 신’으로 여기는 만큼, 일본인에게서 신화는 과거의, 인간계 밖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살아 숨 쉬는 현실이며 현재의 일본인의 심성과 존재를 규정하는 요소기도 하다. 이 점을 들여다보는 것이 긴요한 이유이다. 이 책에서는 ‘일본 신화의 무대’인 ‘규슈 다카치호’와 일본인의 자랑이라고 하는 후지산과 관련된 신화들을 살펴본다. 


일본인의 종교적 성지의 두 번째 유형은 역시 일본의 ‘신도(神道)’와 관련된 성지들이다. 주로 신사(神社)와 관련되지만, 이 역시 근대 시기를 거치며 ‘국가신도’ 등과 습합되면서 속세와 신계(神界)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강요된 경험을 통해 독특한 ‘일본인’의 심성의 근원적인 배경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일본신도와 신사의 메카로 불리며, 일본의 국가수호신 아마테라스를 모신 이세신궁(伊勢神宮)을 위시해서 수천, 수만 개의 크고 작은 신사로 이루어진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이 책에서는 이세신궁과 함께 ‘일본 신들의 고향’으로 일컬어지는 이즈모대사를 중심으로 여러 신사를 소개하며, 신사란 무엇인지, 신사와 일본(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본다. 


일본인의 종교적 성지의 세 번째 유형은 일본 불교와 관련된 성지들이다. 일본 전역에 신사만큼 많은 종교시설이 바로 ‘불교 사찰’들이다. 일본 불교의 경우 한국보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거대 사찰이 즐비하고, 무엇보다 현재에도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는 신종교(新宗敎)들이 거개가 불교(佛敎)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 만큼, 신도와 더불어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신도가 일본인의 생활세계에 가까운 종교적 요소라면, 불교는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가까운 종교적 요소라는 점을 ‘대동소이’의 차이점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일본 불교의 어머니 산’이라고 하는 히에이산과 일본인들의 사후 세계의 고향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야산을 중심으로 일본 불교 사찰의 특성을 살펴본다. 

그 밖에 일본의 성지 중에는 ‘기독교 관련 성지’도 적지 않다. 오늘날 일본의 기독교 세력은 우리나라에 비해 보면 ‘과할 정도’로 ‘쇠약’하지만, 일본 기독교의 역사는 우리나라에 비해 수 백 년이 앞선 것이다. 가고시마와 오이타 등지에 산재한 일본 기독교 성지들을 돌아보며 왜 일본에서 기독교가 한때 번성을 누리다가 급속도로 쇠퇴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오늘날 일본인의 심성의 특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것은 또다시,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해서 기독교가 오늘날과 같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고 진단하는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가고시마현 기리시마시(霧島市) 고쿠부우와이(國分上井) 소재가라쿠니우즈미네(韓國宇豆峯)신사. 가야=신라계 도래씨족인 하타씨(秦氏)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신사이다.



3. 일본을 앞지르는 크로스 오버 지점, 지금이야말로 일본을 알아야 할 때 


최근 몇 년 사이 한일 관계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여 국내에서 일어난 소재-부품-장치 산업의 국산화 시도와 일정 부분의 성공은 일본에 의존한 한국 경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 변화할 수 있다는 변곡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미 그 전부터 현상화되고 있었던 일본 내에서의 ‘한류’ 문제나 세계 문화계에서 한국의 위상 제고 등을 통해, 일본에 ‘강점되었던 역사’로부터 비롯되는 ‘대일본 콤플렉스’가 극복되었거나 곧 극복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특히 최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한 일본(아베 정부)의 대응(진실의 은폐), 코로나19에 대한 일본(아베 정부)의 대응, 그에 대한 일본인의 무기력한 대응 태세 등을 보면서 일본의 ‘욱일기’는 이제 떠오르는 해가 아니라 ‘지는 해’를 상징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이때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일’의 자세이다. 우리에게 일본은 ‘익숙하지’만 ‘낯설기 그지없는’ 나라이다. 일본을 알아가기에는 ‘미움’과 ‘극복’의 장벽이 너무도 높았던 역사(과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이야기할 것은 ‘한일간의 진정한 만남’일 테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예전처럼 일본 여행이 활발해질 때,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일본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미움’을 걷어내고 ‘콤플렉스’ 또한 씻어버리고, 담담하게 그러나 진정한 앎의 자세로 넉넉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대 이래 오랫동안 ‘일본에 대해 시혜적 교류’를 하였을 때, 한일 관계는 평화로웠고, 한일 양국의 발전은 병진하였으며, 그때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러한 시대가 다가온다. 이 책은 그러한 시대를 향해, 일본을 재발견해 나가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약 : 이 책은 저자가 20년 동안 일본 전역의 전통적인 종교 성지와 현대적인 새로운 종교 성지들을 탐방하며 보고 듣고 느낀 일본인의 감성의 원천들 속으로 안내하며, 그곳에서 읽어낸 일본인의 마음을 소개함으로써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심층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일본인의 민낯과 속내를 모두 드러내 주는바, 일본인 마음의 깊은 곳에서 만나는 ‘진정성과 스피리추얼리티(靈性)’에 주목함으로써 새로운 일본(인)의 얼굴과 마음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일본(인)과 한국(인)의 상호 이해 가능성을 희망한다. 

 

히노미사키신사 뒤쪽 해안의 후미시마.이곳은 일본의 사진작가들이 가장 찍고 싶어 하는 장소 중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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