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다시 읽기
사람은 다만 한 '갈대'에 불과하다. 대자연 중에 가장 약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물(物)과 이(理)를 생각하는 힘을 가진 '갈대'이다.
인간을 눌러서 문질러버리는[壓潰] 데 있어서는 우주가 그 전체를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방울의 수증기, 한방울의 물, 한 점의 불일지라도 충분히 이를 문질러 죽일[潰殺]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우주가 우주 전체의 힘을 들어 이를 압살한다 할지라도 사람은 의연히 저를 죽이는 그것보다 고귀한 존재이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은 자기의 생사를 아는 까닭이다. 우주 그 자체는 우주 자체와 사람의 관계를 조금도[何等]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들 인간의 고귀한 점은 다만 사상에 있다. 우리의 위치를 높게 한 것은 사람의 사고이다. 아무쪼록 물(物)과 이(理)를 사고하는데 노력하라. 이것이 도덕의 원칙이다.
이것은 파스칼의 말이다. 사람은 실로 미약하다. 물에는 고기만 같지 못하고 공중에는 새만 같지 못하다. 그러나 사람은 잠수함[潛航艇]으로 바다를 정복할 수도 있고, 비행기로 공중을 날 수도 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이 우주를 알게 된 것은 우주가 사람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우주를 의식한 것이다. 우주는 사람의 의식에 의하여 그 본성이 나타난 것이다. 사람의 우주적 의식은 생명의 자기 관조다. 생명이 자기의 전적(全的) 과정을 회고하는 자기관조다.
생명은 영구무한(永久無限)의 과정에서 모든 만유를 창조하여 왔다. 그러나 생명은 인간 이외의 자연상태에서는 전혀 충동적 본능의 창조요 의식적 자유의 창조는 아니다. 그러다가 생명은 인간격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생명자체를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생명이다'라는 개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기의 전적 과정을 회고하게 되었다. 이것이 '한울'의식의 발생 시초다.
바흐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이렇게 말하였다.
인류의 본질이 오직 인류의 지상실재(至上實在)이다. 종교가 지상실재를 신이라 관념한 것은 전혀 전도된 사상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지상 실재인 신은 객관적 본질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소위 지상실재란 것은 인류의 본질에 불과한 것이다. 인류의 본질이 신적 대상으로 나타났으므로 신 그것의 관념이 곧 인류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금일 이후의 세계의 역사는 신이 신으로서 인류에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신으로서 인류에게 대하는 것이다.
이 말은 마치 "사람이 귀신이며 사람이 조화(造化)라" 한 수운의 교훈과 동일한 점이 있다.
(다음 '2. 인간과 신관념'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