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다시 읽기
원래 인간의 사상 중에 가장 최고의 사상은 신 관념으로 볼 수 있다.
신 관념은 일신적 대상에 이르러 가장 발달된 것으로, 인간성의 능력이 일신적 대상으로 반영적 표현이 되었다.
속언(俗言)에 "게는 자기의 몸에 맞을 만한 구멍을 뚫는다"는 말이 있는 거과 같이, 원래 사람의 신적 관념은 자기의 사상에 맞는 신을 창조하여 왔다. 부족적 신, 민족적 신은 고대인의 사상 발달 정도를 추측할 만한 것인데, 그들은 인간성의 정도와 그의 사회환경에 적응할 만한 신을 창조하였다.
그리하여 최종으로 우주 유일신인 무궁자(無窮者)를 창조하였다. 사람성은 무궁자의 신을 관념함에 이르러 생명이 자기의 전과정을 반성하게 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생명이 자기 자신의 무궁성을 돌이켜보고[返照] 동경하는 태도가 곧 신적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의 무궁은 곧 생명 자기의 무궁이다. 인간 자기의 무궁이다. 인간이 자기의 무궁성에 의하여 간접작용으로 신을 창조해 놓고 신을 무상의 실재로 숭배하는 대신에 인간 자기를 비열하게 보았다. 이것이 과거 종교의 골자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는 어디까지든지 진화하는 것이다. 인간성은 이제야말로 자기의 무궁성을 깨닫게 되었다. 무궁자의 신이란 것이 인간 자기의 본성인 것을 알게 됨에 따라 인내천주의는 '동방의 빛'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인내천주의에 있어 '한울'이라는 것은 인간 자기의 무궁성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성 무궁, 즉 한울의 무궁은 최초는 대자연의 본상태로, 다음은 개성의 특징으로, 최종은 인간으로서의 사회성, 이러한 삼단계를 밟아 혁혁한 정신의 최고 봉화(烽火)를 들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울의 관념은 인간의 존재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인간성을 최고 정신적 존재로 인정하는 동시에 인간 자체의 무궁을 승인하며 인간생활의 고상한 가치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한울의 존재는 인간의 존재로부터 시작된 것이란 말은 무엇보다도 간단명료한 진리로 볼 수 있다. 왜 그러냐 하면 다른 동물계에 있어서는 신의 존재를 알 수 없으며 일신의 존재를 인식치 못하며 더욱이 우주의 전 상태인 한울의 관념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맹목적이다.
그러나 인간성에 와서 처음으로 다신(多神), 일신(一神), 범신(汎神), 인내천 등 진화 사상을 보게 된 것은 인간에게 인간 자기성에 대한 의식이 명료해지고 정신생활이 인간성에 의하여 우주생활의 최고 단계를 이루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생명의 자기관조라는 것이다.
(다음 '제3절 인간의 정신'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