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파 선언>을 읽고 (4)
[편집실 주] 이 글은 '개벽학당' 마지막 수업 시간에 '개벽파 선언'을 읽은 소감을 발표한 글입니다. <개벽신문> 제88호(2019.9)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개벽학당 개강을 앞두고 여시재로 답사가던 날, 로샤(이병한 선생님)의 뒤를 좇아 헉헉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새별(조성환 선생님)과는 서먹서먹하고 수줍던 사이여서 대화 중간 중간에 침묵이 잦았다. 말수가 적으신 새별은 꼭 필요한 질문만 하셨는데,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공공公共하다’는 말은 어떻게 알고 쓴 거예요?”
'새별'은 <<공공철학대화>>(김태창,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라는 일본어 책을 번역 출판했다고 했다.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시점이었으나 슬프게도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공공성도 아니고 ‘공공하다’라는 동사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나도 잘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딘(김현아 선생님)이 만드신 말인 줄 알았는데, 같이 쓰고 있었다니 참 신기하네요-. 하나마나한 대답을 했다.
우리가 ‘공공公共하는청년’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2017년 가을이었다. 청년, 공공성, 여행이 만나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길을 만들고자 하는 프로젝트였다. 조개, 제제, 자리타, 고운, 아싼떼, 하야티 등 로드스꼴라 울타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과 <남북한 교사를 위한 수학여행 로드맵>을 제작하여 전시하고, 평화퍼포먼스 그룹 레츠피스와 서울역을 국제역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병한 선생님을 만나는 강의를 기획하고,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김진향 이사장과 밀레니얼세대를 위한 남북한 소통매뉴얼 <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를 편집했다. 올해에는 개벽학당을 시작했다. 작지만 여러 가지 일들을 한 것 같은데, 정작 공공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은 부족했다.
새별의 강의와 서신을 읽으면 종종 무심코 지나쳤던 단어나 문장에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거 같다. ‘공공하다’도 그랬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모두가/모두와 함께한다는 뜻으로 쓰인 공공은 이어 주자학과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백성과 함께하고 공유한다는 의미로 등장하고, 천도교와 원불교에 이르러서는 ‘천인공화’ 하늘과 함께 해서 모두와 어우러진다, ‘일원공화’ 일원과 함께해서 모두가 어우러진다는 ‘공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인간과 인간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일원을 공통의 가치로 삼아 모든 존재가 어우러진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공공하다’란 ‘나는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인 거 같다. 처음에 ‘공공하는청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남과 북이 함께 어우러져야 새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유효하다. 남과 북 사이에서 좋은 번역가의 자질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들이 양쪽의 언어를 풀어내고 전달하는 역할이 절실하다고 생각해, 김진향 선생님과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책을 편집했다. AI가 지식 저장과 전달의 역할을 가져가는 시대에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이를 연결하는 좋은 번역자와 해석자는 더욱 많아져야할 것이다.
이제 개벽학당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니 내가 함께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의 지평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동물과 식물, 미생물과 공공해야 하는 것은 물론 미래 생명, 데이터와 어떻게 공공해야 할 것인지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때라는 걸 벽청들 모두 직시했을 거 같다. 경제의 영역에서 어떻게 공공할 것이냐에 대한 대답도 달라졌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 공산, 항산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건물, 땅, 이동수단, 데이터 등 일상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들이 모두의 소유이자 모두를 위한 재산이 되는 공유 경제가 활성화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정확한 자기 인식을 기반으로 수양과 수행을 하며 공공하는 천민(天民)이 되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됐을 때 생명을 생각하는 새로운 생활양식도 대중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거 같다. 제로웨이스트와 비건 라이프스타일이 사치가 되는 시대는 끝이 나지 않을까.
개벽학당은 내가 세계를 인식하는 시선을 바꾼 터닝 포인트였다. 한국사상사 속에 우리가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마주하게 되는 건 정말이지 귀한 경험이었다. 좋은 점이라야 늘어놓자면 한이 없다. 그런데 종강파티 때 쓸 샴페인과 와인을 고르면서도 왜인지 입이 썼다. <천도교의 정치이념>을 머리말만 읽고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부터 기분이 그랬던 거 같다. 개벽학당 가을학기를 준비하며 홍보 텍스트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그랬던 거 같다. 뉴스레터 기사를 쓰는 속도는 빨라지지만 그만큼 글이 무뎌진다는 느낌이 들 때부터 그랬던 거 같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날이면 마음의 빚을 덜어내기 위해 정성껏 다과를 준비했건만, 맘이 탐탁치 않은 건 매한가지였다.
한국사상사와 동학, 개벽학을 어떻게 해야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말랑말랑한 언어로 번역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내게 던지고 있노라면 까마득한 벽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말문이 꽉 막혔다. 새별과 로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무리 빛난다 한들, 그 내용들이 온전히 내 언어가 되지 못한다면 그건 개벽일 수 없었다.
"개벽하러가는 길"로 나서기 전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하나, 정직하게 되물어야할 때이다.
배낭 안에 무엇을 챙겨 넣어야 하는지 숙고해야하는 때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꼭꼭 씹어 먹고 물고 늘어지는 공부를 시작하지 않으면,
한 시절 개벽학을 공부했었는데 꽤 재밌었다고 말하는 40대가 될 거 같았다.
자기개벽.
내 안의 구습을 끊어내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을 단호히 버리지 않고서는 새 길은 열리지 않을 터였다. <개벽파선언> 앞에서 얼마간 입을 꾹 다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