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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Sep 04. 2019

파쿠르의 몸과 세계, 자유를 말하다

[이 글은 <개벽신문> 제85호(2019.6.15)에 게재된 글입니다.] 


김지호 | 파쿠르 코치


자유를 찾아서


처음 파쿠르를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본다. 

2004년 겨울, 영화 ‘야마카시’(Yamakasi; 파쿠르의 창시자 데이비드 벨이 속한 프랑스의 파쿠르 팀 이름이다)를 보고 난 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자유로움에 매료되어 반 친구들과 함께 학교 조회대 난간을 뛰어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는 코치도, 아카데미도, 지금처럼 좋은 영상 강좌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에도 나는 파쿠르를 하고 있지만, 파쿠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파쿠르의 역사도, 창시자도, 철학과 가치들도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어딘가 반드시 가야 할 목적지가 있지만, 어떻게 그곳에 가야 할지 아무것도 모를 때처럼, 파쿠르 또한 그랬다. 그 당시 파쿠르 훈련자들이 걸어가는 길에는 먼저 앞서간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모든 순간이 시행착오인 동시에 처음 내딛는 발걸음이었다. 수많은 실패와 시련이 있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만큼이나 탐구하고자 하는, 개척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길가던 사람들이 파쿠르 하는 모습을 보고 도둑으로 신고하고, 비난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너무나 억울하고, 가슴속에 깊은 상처가 새겨진 만큼이나 파쿠르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잘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파쿠르를 창시한 그룹, 야마카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야마카시

[편집실 주] 파쿠르와 야마카시 : 파쿠르는 도시와 자연환경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애물들을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개인 훈련. ... 한국에서는 '야마카시'로 통용되기도 하지만, 이는 다비드 벨 등이 결성한 팀의 이름일 뿐이며 정식 명칭이 아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쿠르 [Parkour] (두산백과)


가장 먼저 나의 시선은 파쿠르의 본고장 프랑스로 향했다. 

2008년 8월, 파쿠르의 탄생지 Evry, Lisses에서 창시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직접 장애물들을 극복해 보고, 당시 존경해마지 않았던 창시자 David Belle의 상징적인 건물 사이 점프 ‘ManPower Gap’1 도전을 성취했다. 미국,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파리 시내 곳곳의 장애물들을 점프하고, 매달리고, 구르고, 통과하는 등 자유롭게 누볐다. 파쿠르 하나만으로 언어, 인종, 종교, 성별, 신체,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어울렸던 경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파쿠르의 본고장을 다녀왔지만, 파쿠르에 대한 호기심과 지적 목마름은 

해결되기는커녕 더 높아졌다. 나는 떠오르는 질문에 질문을 던지고 계속 그 답을 찾으려 했다.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대도시도 아니고, 어떻게 이 작은 마을 Lisses에서 파쿠르가 시작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전문가도 아닌 10대 청소년들이 파쿠르를 창시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밖에서 뛰노는 것을 그만두는데, 어떻게 창시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놀이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파쿠르 창시자들은 어떻게 위험과 부상을 관리할까? 파쿠르 창시자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왜곡된 편견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파쿠르의 움직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파쿠르는 어떤 정신과 사상,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파쿠르는 무엇인가?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에 힘입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알면 알수록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진짜 파쿠르’를 듣고, 보고, 만지고, 체험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깊어졌다. 군 복무를 마치고, ‘진짜 파쿠르’를 경험하기 위해 다시 해외로 떠났다. 2012년은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 등을 여행하며 파쿠르 창시자들과 1세대 훈련자들을 만나 함께 훈련하고 자격과정 및 연수를 마쳤던 특별한 해였다.


또한 인터넷과 책, 미디어 등 텍스트와 시각적 이미지상으로 밖에 접할 수 없었던 파쿠르의 기원과 정신에 관하여 파쿠르의 역사를 몸으로 직접 써 내려간 인물들을 직접 인터뷰도 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면서 나의 시야와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아래 내용은 창시자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책과 텍스트를 바탕으로 파쿠르의 역사와 정신을 요약한 글이다.


파쿠르는 무엇일까?


파쿠르는 1980년대 말, 프랑스 파리 인근의 교외도시 에브리(Evry)와 사르셀레스(Sarcelles)에 거주하는 9명의 소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던 시기였고, 그에 따라 파리 주변에 이민자들을 위한 위성도시들을 건설했다. 에브리는 거칠고 단단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신도시였고 무슬림, 힌두교도, 흑인, 아시아인 등 다양한 종교, 인종,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거주하였다. 그 때문에 사회적 갈등과 충돌이 잦았다. 길거리 싸움, 공공기물 파손, 방화, 도시형 빈곤문제, 범죄가 끊이지 않았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청소년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이웃들을 지키기 위해 강인해져야만 했다. 이들은 돈이 없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강해지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아직 ‘파쿠르’라는 이름도 없었고, 오늘날 우리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기술, 움직임도 없었던 그 시절. 모든 것의 시작은 생존을 위한 단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강해져라(To be strong)


강해지기 위해 9명의 소년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고,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극한의 상황에 도전했다. “내가 저 개울가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여기서 에펠탑이 있는 파리까지 쉬지 않고 달려갈 수 있을까?” “저 아파트를 아무 장비 없이 맨손 맨몸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팔굽혀펴기를 몇 개나 할 수 있을까?” “지금 2.5m 높이에서 1,000번 뛰어내릴 수 있을까?” 

매우 힘들고, 엄격한 훈련 모습을 상상하기 쉽겠지만 모든 것은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모험적인 놀이에서 시작되었다. 누구나 어린시절에 친구들과 놀이터 혹은 자연 속에서 뛰어 놀면서 “너 저기 뛰어 내릴 수 있어?” “저기 올라가보자!”와 같은 즉흥적인 모험을 즐겼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어린 시절 즐겼던 모험 놀이를 관두었지만, 이들은 모험 놀이를 계속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끊임없는 도전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실패, 시행착오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육체와 정신을 단련할 수 있었고, 오늘날 파쿠르의 모태가 되는 풀뿌리 움직임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담므 뒤 락(Dame du Lac)’은 불어로 ‘호수의 여인’이라는 뜻이다. Dame Du Lac은 원래 클라이밍에 쓰일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2명이 훈련도중 사망한 이후로 폐쇄되었다. 데이비드 벨(David Belle)을 비롯한 9명의 창시자들이 이곳에서 훈련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으며 오늘날 파쿠르의 성지로서 전 세계 트레이서(Traceur - 파쿠르 훈련자)들의 파쿠르 훈련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이들이 청소년으로 성장했을 때, 

파쿠르 창시 과정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그들의 친인척과 가족들이다. 특히 뉴칼레도니아 출신의 얀 노트라의 가족은 전통적으로 군인을 배출한 집안으로 엄격한 군사 트레이닝들을 파쿠르에 가져왔다. 세바스티앙 푸칸의 친형은 올림픽 육상 국가대표 선수였고, 그는 형의 영향을 받아 육상 기술과 달리기 주법, 스포츠 트레이닝, 코칭법을 파쿠르에 가져왔다. 



Stephane Vigroux와 함께. Stephane Vigroux는 창시자 데이비드 벨의 유일한 직계 제자로 인정받는 2세대 파쿠르 수련자이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세계 최초 파쿠르 교육기관 Parkour Generations 설립 멤버 중 한 명이다.


데이비드 벨의 아버지 레이몽 벨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엘리트 소방관이자 군인이다. 그는 베트남계 프랑스인으로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 분단으로 부모님과 헤어지고, 프랑스군에 소년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이후 프랑스 파리의 구조대원으로 활동하고, 군인 및 소방대회의 로프 클라이밍 챔피언이 되면서 프랑스 엘리트 소방연대 팀에 들어가게 된다.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구조 활동들을 성공해내면서 그의 영웅적인 행보와 용기, 희생정신, 이타주의는 당시 프랑스 젊은이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었다.


레이몽 벨은 자기 자신만의 독특한 수련체계 ‘Le Parcours’(길, 코스, 여정, 道)

를 만들어 자신의 아들 데이비드 벨과 친구들에게 전수하였다. 이는 어린 시절 군사학교에서 배우고, 전쟁터에서 터득한 조지 에베르의 자연훈련법에 바탕을 둔 것이다. 조지 에베르는 프랑스 해군 장교이자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자연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체육 교수 및 학자로서 갑판 생활을 하는 선원 및 해군들이 체력저하로 고통 받자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생활양식을 관찰한다. 원주민들은 체육교사, 체육관이나 프로그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먼 거리를 창을 던지고, 나무를 타고, 절벽을 오르고, 개울가를 뛰어넘는 등 놀라운 신체능력을 발휘한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달리기, 구르기, 매달리기, 균형잡기, 들어올리기, 던지기, 수영, 자기방어 등 맨손 맨몸 운동으로 전신 발달을 꾀하는 체력 프로그램을 완성한다. 이 뿐만 아니라 조지 에베르는 자연훈련법의 철학 및 정신적 가치도 완성하게 되는데 그 계기는 다음과 같다.


Chau Belle과 함께. Chau Belle은 9명의 파쿠르 창시자 중 한명이며 David Belle의 사촌이다. 움직임의 예술을 지도하는 ‘ADD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화 ‘야마카시’ 출연 이후 영화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02년,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큰 화산 폭발이 발생하여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조지 에베르를 비롯한 해군들은 인명구조 활동에 파견된다. 그 과정에서 조지 에베르는 어떤 주민들은 너도나도 살기 위해 서로 밀치고 배를 빼앗고, 생존 경쟁을 벌이는 반면에 어떤 주민들은 아버지가 딸을 위해,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양보하는 이타주의적인 모습을 보았다. 결과적으로 화산 폭발의 재난 상황에서 이타주의를 실천한 무리들이 더 많은 생존을 했다. 여기서 그는 한 가지 통찰을 얻게 되는데 재난, 극한의 위험 상황 속에서는 경쟁보다 공감, 상호연대, 협력, 상생하는 이타주의야말로 위기를 극복할 핵심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이타주의는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용기와 정신적, 신체적 강인함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였고,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정한다.


유용해지기 위해 강해져라(Be strong to be useful)


이는 자연훈련법의 핵심 가치로 후일 파쿠르의 이타주의 철학으로 계승된다. 9명의 청소년들이 레이몽 벨을 만난 것은 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단순히 개인의 경험과 자기중심적인 ‘강해져라(To be strong)’에서 보다 확장되어’ 어떻게 강해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이다. “유용해지기 위해 강해져라”는 개인의 생존뿐만 아니라 공동체, 사회, 세상과 연결되는 언어로 확장된다. 이외에도 1980~90년대 청소년들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것은 건물과 장애물들을 자유롭게 뛰어넘는 성룡의 액션영화, 마블 및 DC코믹스의 스파이더맨, 배트맨 같은 히어로 애니메이션이다. 실제로 9명의 창시자들은 청소년기에 파쿠르 수련을 통해서 불의에 맞서고, 타인을 돕는 도심 속 영웅을 꿈꾸었다. 그들은 심지어 파쿠르에 온 인생을 헌신하기 위해 자유를 가로막는 학교를 그만둔다.


1997년, 9명의 청소년들은 ‘야마카시(Yamakasi)’라는 팀을 결성한다. 

야마카시 팀은 2001년, 영화 야마카시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모험, 놀이, 육상기술, 자연훈련법, 군사훈련 등의 육체적인 요소와 그 시대의 대중문화, 가치관, 사회문제 등이 비빔밥처럼 뒤섞여 새로운 움직임의 첫 단추가 엮인다. 야마카시 팀은 자신들이 하는 움직임에 첫 이름을 붙인다. ‘움직임의 예술’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파쿠르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에 도시 장애물들과 상호작용하는 움직임을 지칭하는 최초의 명칭이다. 


그러나 1998년, 데이비드 벨은 자신의 아버지 레이몽 벨의 유산과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움직임 스타일과 철학을 더욱 드러내고, 영화배우로서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불어 일반명사로 길, 코스, 여정이라는 뜻을 지닌 Parcours에서 c를 k로 대체하고 묵음 s를 삭제하여 Parkour라는 명칭을 만들고, 야마카시 팀을 탈퇴하여 독립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데이비드 벨에게 있어서 파쿠르는 엘리트 소방관이자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탈출, 혹은 추적하는 실용적인 이동기술이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파쿠르에 대한 정의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파쿠르를 ‘출발지점 A에서 목적지 B까지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이동기술’이라고 정의했다. 2004년 영화 13구역은 데이비드 벨이 세계적인 배우이자 ‘파쿠르’라는 명칭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003년 세바스티앙 푸칸은 영국 Channel4 다큐멘터리 ‘점프 런던(Jump London)’에 출연하면서 

'자유롭게 달리다’는 의미의 프리러닝(Freerunning)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사용한다. 이는 기존의 불어에서 파생된 Parkour 혹은 L’art du Deplacement라는 명칭 대신 영미권 사람들에게 보다 쉽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데이비드 벨의 엄격한 파쿠르에 대한 접근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못했던 세바스티앙 푸칸과 새로운 움직임 세대들은 자기표현과 예술적인 요소를 입혀 프리러닝을 새로운 스타일로 정립한다. 프리러닝은 엄격한 실용주의 노선에서 탈피합니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주변 장애물들과 상호작용하여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점프 런던 다큐멘터리가 영미권에서 널리 인기를 끌면서 기존의 단순했던 파쿠르 동작들이 브레이크 댄스, 카포에라, 아크로바틱, 기계체조, 서커스, 길거리 예술 등과 융합되어 보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움직임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세바스티앙 푸칸의 좌우명에서 드러난다.


자기 자신만의 길을 따라가라(Follow your own way)


어떤 외부의 신념, 이념, 기준, 규칙, 가치, 믿음을 따라가게 되면 결국 자기 자신대로 살지 못하고 그것에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Follow your own way의 의미는 외부에서 어떤 진리를 찾거나 따라갈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의 고유한 것을 추구하고, 갈고 닦으라는 의미이다. 그리하였을 때, 자유롭고 독립적인 움직임, 자신만의 길을 만들 수 있다. 세바스티앙 푸칸의 움직임에 대한 사상은 맹목적으로 실용성만을 중시했던 기존 파쿠르 세계에서 탈피하여 각각 개별자들에게 자신의 스타일대로 파쿠르를 향유할 수 있는 자유를 던져 주었다는 점에서 움직임의 세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리러닝의 등장으로 인하여 움직임의 예술, 파쿠르, 프리러닝 각각의 분파들 사이에서 정의와 개념을 두고 철학적 분쟁이 있었으나 시간이 흐른 오늘날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름만 다를 뿐 모두 같은 역사와 흐름을 공유한 움직임으로 동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프리러닝은 창시자, 문파, 승사제도, 계보 등의 권력구도에서 벗어나 수련자 개개인에게 자유롭게 움직일 권리를 주었으며, 파쿠르 관련 상업화와 창조적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파쿠르는 비공식적인 통계 추산에 의하면 

전 세계 약 300만 명이 즐기는 매니아 중심의 움직임이 되었다. 특히 영국은 세계 최초로 파쿠르를 공식 스포츠로 지정하였고, 스포츠잉글랜드(SportEngland)에 의하면 영국 내에 매주 1회 이상 파쿠르 활동을 하는 인구는 약 10만명으로 집계되었다. 2018년 12월 3일, 전 세계 기계체조 단체를 관할하는 국제 체조 연맹(FIG)은 파쿠르를 8번째 기계체조 종목으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매년 국제 체조 연맹 배 파쿠르 월드컵 개최와 4년 단위 파쿠르 챔피언쉽 개최, 그리고 2024년 파리 올림픽에 파쿠르를 정식 종목으로 올림픽 추진위원회에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탈근대적(포스트모더니즘)인 파쿠르가 경쟁, 기준, 점수, 비교, 표준화를 중시하는 근대적 스포츠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파쿠르/프리러닝/움직임의 예술 그 자체는 태연하게 아무 말 없이 있는 그대로 있을 뿐이다. 단지 찾아오는 손님들에 의해,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 의해 덧대어질 뿐이다. 교육으로서의 파쿠르, 동호인들의 파쿠르, 스포츠로서의 파쿠르, 예술로서의 파쿠르, 미디어로서의 파쿠르, 놀이로서의 파쿠르, 사회과학의 파쿠르, 건축의 파쿠르, 철학의 파쿠르는 각각의 붓을 들어 파쿠르에 색깔을 칠합니다. 그만큼 파쿠르에는 무한한 잠재성과 자유로움이 있다. 지금도 파쿠르는 계속해서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자유를 찾아 외부에서 내면으로


파쿠르를 탐구하고자 하는 나의 목마름은 언제나 외부를 향해 있었다. ‘나’의 움직임, ‘나’의 생각보다 창시자들의 생각, 창시자들의 발자취, 흔적들을 좇았다. 단적인 예로 창시자 David Belle을 너무나도 존경하고 닮고 싶은 나머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David Belle의 영상을 반복 재생하여 보았고, 밖에서 파쿠르를 할 때에도 David Belle의 움직임 스타일을 똑같이 따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몇 년이 흘러도 David Belle처럼 똑같이 될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내 몸, 내 생각, 환경이 다르니 절대 그와 똑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되고 싶은 대상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깊은 상실감을 느꼈지만, 내가 되고 싶은 대상을 내 안에서 찾기로 결심한다. 그 계기는 프랑스에서 있었던 생존을 무릅쓴 도전이었다.


맨파워 갭 이야기, 자각(自覺) 


파쿠르를 처음 시작했던 그 순간부터 나의 목표는 영화 ‘13구역’에서 파쿠르 창시자 데이비드 벨(David Belle)이 뛰었던 맨파워 갭(Man Power Gap)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군 입대를 앞둔 2008년 8월, 그 동안 열심히 웨딩뷔페,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첫 해외여행을 혼자서 프랑스로 떠났다. 맨파워 갭 위에 섰을 때, 처음 내 머릿속을 강타했던 생각은 내 신체능력으로 충분히 저 건너편으로 점프를 해낼 수 있겠다는 직관이었다. 그래도 정말 두려웠던 것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 실수 한 번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 건물 옥상에서 1시간 넘게 두려움에 휩싸여 건너편 착지 지점을 바라보기만 했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어려운 순간은 언제나 점프하기 직전이다. 

결심이 흔들리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몸이 움직이고 있는 도중에 결심이 흔들리면 실패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점프를 위해 수년간 수백수천 번 점프를 하고 낙법을 연습했는데…. 정작 진짜 점프를 앞두고 나 자신을 의심했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나 자신의 초라함과 한계를 느꼈다. 나의 자존감은 완벽하게 무너졌고, 기댈 곳이 없어 결국 신을 찾았다. 용기를 달라 간청했지만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두려움은 커져만 가고, 그럴수록 나는 무언가에 의지할 것들을 찾았다. 오랜 고심 끝에 든 마지막 생각은 가족, 친구 그리고 신 조차도 이 점프를 ‘나’ 대신해 주지 못한다는 것. 결국 이 도전은 ‘내가 스스로 해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현실 인지하게 되었을 때, 무척이나 고독했다. 


결국 내가 ‘나’와 ‘세상’에 대한 종속적인 미련이 남아 있는 한, 

이 도전을 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잃을 것이 많을수록 두려움도 큰 법이다. 나는 간절한 목표를 심장에 품고, 과거에 얽매여 있는 내 자신을 스스로 죽이기로 결심했다. 이 도전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다 바쳤다.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다. 실패해도 아쉬울 것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파쿠르를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원하는 삶의 순간이 아니던가? 그 순간 내 몸은 긴장과 아드레날린으로 가득 찼지만, 머릿속에는 고요함이 들어섰다. 이것을 무패의 신화를 남긴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 1584~1645)는 무심(無心)이라 했던가?

점프를 위한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 

모든 시야가 건너편 건물 옥상 착지 지점으로 좁혀졌다. 마치 한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모든 집중이 한 곳에 몰렸다. 이전에는 경험해 볼 수 없었던 완전한 몰입이었다. 반복된 연습으로 습관이 된 착지와 낙법을 온전하게 해내고, 마침내 살았다. 생존을 무릎 쓴 도전은 내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인지, 아니면 가족, 동료, 신, 이름, 상징, 돈, 권력 등 다른 무언가에 의지하고 있는지 시험하는 기회이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처럼 열정으로 가득 찬 자기확신보다 숭고한 것은 은은하게 빛을 비추는 달처럼 묵직하고, 고요한 평정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심(無心)의 태도는 어떤 외부적 요인, 방해, 변화에도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도전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매 순간 어려운 장애물을 마주할 때마다 맨파워 갭의 경험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나는 지금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인가?” 


외부의 대상은 마치 흔들리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부유한다. 

나의 시선이 외부를 향해 있을 수록 변하는 외부의 대상에 따라 나도 갈대처럼 흔들린다. 외부 대상에 이리저리 반응하는 자기이해는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라 환상이다. 반면에 나의 시선이 내면을 향해 있을 때 어떠한 환경, 상황에 처해도 흔들림 없이 나 자신대로 행동할 수 있다. 사실 내가 경험하는 외부 환경, 상황, 조건은 가치 중립적이다. 외부의 대상은 있는 그대로 있을 뿐 좋은 것, 싫은 것, 옳은 것, 틀린 것, 착한 것, 나쁜 것은 없다. 그저 내가 그 대상을 그렇게 해석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저기 앞에 보이는 산은 산 대로 있을 뿐이다. 좋은 산, 나쁜 산, 높은 산, 낮은 산은 없다. 단지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붙이거나 비교할 기준을 정하고, 가치를 부여하고, 해석했을 뿐이다. 


인간은 해석의 동물이다. 

그러므로 주관성에서 벗어나 어떤 상황이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체계를 갖는 것이 살아있는 매 순간을 기회로 삼을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나는 이 작은 발견을 책이 아니라 파쿠르에서 찾았다. 파쿠르를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다들 흔히 말하는 자유로움도 아니었고, 성취감도 아니었다. 바로 두려움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학교 조회대 위에 난간을 붙잡고 점프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는지…. 그땐 이 마음의 불편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두려움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왜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를 매번 막아서고, 한계를 깰 수 없게 만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때에는 흔히 ‘질러버려’ 식으로 아드레날린 러시를 하기도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는 이성적인, 냉정한 판단이 어려웠고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내 몸을 막무가내 식으로 내던져 순전히 운에 내맡긴 경우가 많았다. 운이 좋으면 성공이고, 그렇지 못하면 다치는 것이다. 평생토록 잘 움직여야 할 내 몸을 운에 내맡긴다는 것은 지속 가능한 삶에 있어서 매우 불안정한 선택이었다. 매번 장애물을 마주할 때마다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반복된 고뇌의 끝에서 질문은 단순해졌고, 나 자신에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두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그 답은 안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과 자연의 본질은 위험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두려움은 위험할 때 느낄 수 있다. 위험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두려움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려움은 위험을 알려주고, 미리 대처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한마디로 신호등 역할을 해주는 ‘친구’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해 주고, 나에 대해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을 제공해준다. 역설적이게도 두려움을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안전하게 파쿠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점프할 수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이해를 바탕에 둔 위험의 선택과 도전은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이해하는 만큼,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며,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도전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파쿠르를 시작하기 전의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현재는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과정이 도전을 성취해 내는 결과보다도 더 아름다운 순간이라 생각한다. 두려움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지면서도 가장 인간미 넘치는 때이다. 외모, 돈, 학력, 입고 있는 옷 같은 외형적인 모습이 아닌 가장 순수한,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두려움 앞에서 내가 물질적으로 소유한 것들은 사실상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불안감에 남에게 도움을 청하고, 남을 먼저 시켜보기도 하고, 남이 잘되면 거기서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고, 눈 앞에 극복해야 할 장애물을 두고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사전 맛보기 식으로 비슷한 것들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마침내 그 끝에 눈 앞에 장애물 앞에서 나 홀로 남겨집니다. 모든 것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 있음을 알게 된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두려움은 적이 된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두려움은 친구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신뢰는 계속해서 시험받고 흔들린다.

결국, 두려움에 대한 탐구의 끝에서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며, 세상과 삶이 위험의 연속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보다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보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두려움과 마주하고, 불안함을 끌어안고, 도전해야 한다.


<주석>

1. ManPower Gap은 David Belle이 주연배우로 출연한 영화 ‘13구역’의 건물 사이 뛰기 장면으로 유명하다.

https://kimjiho9023.blog.me/220550652816


김지호는...

학창시절, 컴퓨터 중독에 우울증이 심했으나 2004년 영화 ‘야마카시’를 보고 파쿠르를 시작하면서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국 파쿠르 1세대로서 “파쿠르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하자”는 뜻을 세우고, 국내외 커뮤니티 활동으로 파쿠르를 전파해 왔으며 2014년에는 아시아 최초 국제공인 파쿠르 지도자가 되었다. 2018년에는 독자적인 파쿠르 세계 정립을 위해 건명원에서 인문, 예술, 철학을 공부하고 현재 파쿠르 교육 사업에 헌신하고 있다. 그 공로로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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