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창간호(1920년 7월호)
[편역자(박길수) 주] 이 글은 <개벽> 창간호(1920년 7월호)에 실린 글(필자 미상)이다. 당시의 한국 지식인의 '천문학' 이해 수준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당연한 귀결로, 개벽 기자(記者)들의 천문학에 대한 이러한 지식은 '동학사상'의 현대화(철학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때 그들이 무엇을 알았는가'를 아는 것은, 그때 그들이 말한바와 꿈꾸었던 바를 이해하는 데 핵심 관건이 된다. 특히 '동력'의 원활한 공급 문제가 '문명'의 성장과 쇠퇴와 관계한다는 인식은 오늘날 기후위기가 인류문명사 전체에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는 이때에 절실한 탁견이라고 할 수 있다(실제로 인류의 고대-중세 문명의 흥망성쇠는 기후 변화, 동력원 공급 문제 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1. 천문학의 필요 : 태양의 연구는 생활의 근원
대저 천문학(天文學) 연구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이 점에 대하여 우리는 십분 이를 이해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통사람의 눈[凡眼]으로 관찰할 때는 천문학 연구는 한가한 자의 일종의 소일거리로 인식될 것이다.
한밤중에 망원경(望遠鏡)으로 하늘[蒼天]을 우러러 별을 관찰[望見]하는 것은 현실 사회와 동떨어진 것과 같이 상상되나니 천문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가급적 눈앞의 이익과 욕망을 초월한 사상(思想)을 가질 것이며, 동시에 실로 인생에 대하여 극히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의(主義)를 가지는 것이 절절할 것이다.
천문학의 연구 사항은 상당히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으나 신체적(身體的)으로 달관(達觀)하면 궁극적으로는 태양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태양은 우리 지구상 생물의 어머니이며 모든 활동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태양 연구’는 실로 우리 인생이 전력을 다하여 힘써야 할 것이라 할 수 있다.
장래의 문제는 제반 동력이 불가불 태양 연구에 의해 해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에 먼저 동력 문제를 논한다.
2. 동력의 문제 : 동력의 결핍은 문명의 파괴
현대 사회는 기계적 동력에 의하여 진행되고 활동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통계에 의해 보면, (1)여러 종류의 공장과 전차(電車), (2)전등(電燈) 7천5백만 마력, (3)기차 2천1백만 마력, (4)기선 2천4백만 마력, (5)합계 1억2천만 마력이라고 한다.
즉 오늘의 문명은 합계 1억2천만 마력의 동력에 의하여 운전(運轉)되는데, 그중에 (1)화력(火力)에 의해 공급되는 것이 1억5백만 마력 (2)수력에 의해 공급되는 것이 1천5백만 마력으로, 이 차 1억2천만 마력 되는 동력이 끊임없이 공급되지 않으면 오늘의 문명은 부득이하게 다시 암흑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문명이 순조롭게 발달하는 것은 이 동력의 공급이 매년 약 5%[分]의 비율로 증가하여 20년마다 대략 배수가 증가하는 덕분이다.
3. 석탄의 수명 : 앞으로 120년이면 소진하리라
지금 석탄의 연 산출량은 약 13억 톤[噸]인데, 그중 약 3할 내외는 동력 이외에 사용되고, 그 나머지 약 7할가량의 석탄이 앞에서 말한 약 1억여 마력의 동력을 공급하는 자원인데, 이 석탄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는 것이다. “앉아서[坐] 먹으면[食] 산(山)까지 텅 빌 것[空]이다.” 지하에 매장된 석탄의 총량은 결코 무진장이 아닌 까닭으로 이를 1차 계산하여 보면 안심할 수 없다.
계산의 결과는 예상하고 기대한 것[豫期]과 반대로 상당히 놀랄 만한 것이다. 지질학자의 최근 조사를 보면, 지하에 매장된 석탄의 총량은 대략 7조 톤인데 지금 연 산출량의 약 6천 배가 되므로 약 매년 채굴량이 오늘날의 양에 그친다면 앞으로 6천 년을 계속할 수 있으나 문명의 순조로운 발달을 볼 때 20년마다 배수로 증가하는 비율로 채굴한다면, 석탄의 수명은 실로 단축되므로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앞으로 겨우 120년이면 이 석탄은 다할 것이라고 한다. 120년을 역사상으로 말하면 극히 짧은 기간이니, 이미 눈앞에 박도하였다.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찰하면, 만약 겨우 120년 후에는 석탄의 공급이 끊어지며, 동력의 공급이 끊어지고 따라서 오늘날의 문명이 정지한다고 하면 우리는 안녕[安閑]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문제로 돌아오니 이에 대해 어떻게 하든지 최선의 방침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가급적 효율이 좋은 기계를 이용하여 석탄의 소비를 절약할 것이니, 가령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대신에 내연기관을 사용하면 석탄의 소비를 반감할 수 있으나, 이와 같이 절감할지라도 120년 수명을 140년에 연장함에 불과할 것이요, 그 이상은 더 연장할 수는 없다. 이것은 매년 5%의 비율로 (소비량이) 증가된다는 전제에서 말하는 것이나 문명의 진보는 급속히 이루어지는 정도를 억제하지 못하여 5%가 6% 비율로 증가되고 다시 7%의 비율로 증가될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증가의 비율이 점점 줄어든다면 결국 문명은 퇴화되고 말 것이다.
요컨대 석탄의 수명은 금후 100년 내지 150년 내외에 불과하다 하면, 이를 대신할 한 가지 좋은 방안을 헤아리고 연구하지 않을 수 없으니, 어떠한 자료로든지 석탄의 화력을 대신할 만한 풍부한 동력의 원천을 다시 발명하지 않으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건설한 문명은 앞으로 100년이면 파멸되는 운명에 도달할 것이다.
4. 수력(水力)과 인력(人力) : 노동
수력은 당분간 아직은 개척할 여지가 있으나 이 수력도 역시 한계가 있으니, 전문가의 조사에 의하면 앞으로 이용할 만한 수력의 전량은 현재 이용하는 수력의 약 10배가량에 불과한즉, 도저히 100년 후 동력의 수요에 응하기는 부족하다.
이에 소위 육체[勤力] 노동자의 능력 등은 아래에 서술한 화력과 수력에 비하여 보면 그 미약함은 족히 말할 필요가 없으니, 이를 마력으로 환산하면 한 사람의 능력은 약 1마력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가령 전 세계 총 인구중 1억 명을 동원하였다고 할지라도 그 총 동력은 겨우 5백 만 마력인즉 몇 억 마력의 동력 공급문제에 대해서는 조금의 능력도 없으니, 이를 보도라도 최근에 소위 노동문제 등에 비하여 장래 동력문제는 얼마나 중대한 문제일지 짐작할 수 있다. 가령 전 세계 총 노동자가 동맹파업을 한다고 할지라도 겨우 5백 만 마력이 줄어드는 데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동력의 총 공급이 정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약 100년 후 동력공급방법을 고안할 만한 지식계급이 동맹파업을 한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될까.
화력, 수력, 인력의 외에 일찍이 또 조력[潮汐]과 지열(地熱)과 ‘라듐’ 등에서 이용할 만한 동력을 고찰하여도 역시 근소한 분량이므로, 결국 100년 후에 석탄의 화력을 대신하여 충분한 동력을 공급할 만한 것은 오직 태양열 이외에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5. 태양의 열 : 지하 석탄의 총량은 태양열의 7일분
태양의 빛과 열은 지상 어느 곳을 막론하고 도달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생물 생겨나고 인류가 생긴 이래로 그 은총을 입어 온 것을 보면, 그 광대 무량함에 대하여 실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태양이 우리 지구 전체에 주는 열의 총량은 겨우 그 일주일 분량이 지구 지하에 매장된 석탄의 총량 7조 톤을 전부 연소하여 발생할 열량에 맞먹는다.
이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하는 열량 중 약 절반은 대기 중에 흡수되고, 또는 구름으로 인해 허공에서 반사되어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것은 그 나머지 절반가량인데, 그 지면에 도달한 태양열 가운데서도 그 대부분은 다시 허공에 반사되고 일부는 바람과 비 등의 기상변화를 일으키며, 일부는 수력으로 변하여 우리에게 이용되며, 일부는 농산물의 생장에 이용된다.
이른바 수력이라는 것은 해양(海洋)의 물이 태양열로 인해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었다가 비로 변하여 마침내 하천을 이루고, 지상에서 흐르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기용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약 1천5백만 마력인데 이는 우리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열의 총량 중에서 겨우 1천5백 만 분의 1을 이용하는 데 불과하다.
농산물 생장에 이용되는 태양열의 분량은 수력으로 이용되는 것보다 오히려 많을지도 모른다. 혹 몇천만 마력에 달하는 분량이 된다고 할지라도 태양열의 몇백 만 분의 1을 겨우 이용하는 데 불과하다.
태양열 이용의 정도를 어떤 방법으로 하든지 이를 증대시켜 몇십만 분의 1 혹은 몇 만 분의 1까지 이용하는 정도가 증진하면 우리는 마침내 석탄의 화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어 장래의 동력문제는 좋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6. 태양열의 변화 : 장래는 열대 지역이 문화의 중심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열의 양(태양의 열)은 춘하추동의 계절에 따라 다르며 또 남북의 위도(緯度)의 차이에 따라서도 다르며, 또 기후에 따라서도 다르다. 더욱이 그 밖에 태양으로부터 발생하는 열량도 반드시 한결같은 것이 아니니 혹은 단기 혹은 장기의 변화가 있는 경우가 있다.
춘하추동의 태양열의 변화를 적당히 이용하기는 천문학(天文學)의 초기에 주요한 사항일 것이다. 인구 밀도가 희박하고 문화의 정도가 낮은 시대에는 열대 지역의 인민(人民)은 태양의 은총을 받는 것이 지나치게 많아서, 도리어 게으름에 빠졌으나, 동력의 공급이 차차 결핍하게 될 장래에는 열대 지역의 개발이 인류 발전의 운명을 지배하게 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7. 이용의 방책 :비와 바람과 열을 제대로 이용하라
태양으로부터 열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현재는 수력을 이용하는 것과 농산물의 생장을 이용하는 등이지만, 장래에는 더욱 진보하여 비와 바람의 힘을 이용하든가 태양열을 직접 전기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하든가 또는 미생물의 생장을 이용하든가, 기타 오늘 이후의 연구에 의해 각종 편리한 방법을 고안하게 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줄로 생각한다. 즉 인류의 장래 발전은 전적으로 이러한 연구의 결과 여하에 의할 것이다.
8. 태양의 연구 :11년주기로 태양은 변화함
태양으로부터 발생하는 열의 양과 광선의 종류는 때때로 그 표면에서 발생하는 흑점(黑點)의 증감과 같이 11년 주기로 변화한다. 따라서 지상의 기상에든지 또한 식물의 생장에라도 약 11년 주기의 소멸과 성장(消長)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有함을 可히 知할 것이며 더욱이 그 밖에도 가끔 짧은 주기나 긴 주기의 변화가 생긴다고 하며, 어떤 학자는 태양의 활동에는 몇 백년의 긴 주가의 변화가 있어서 역사상에 나타난 문화의 소멸과 성장(消長)은 그 주기의 변화의 큰 흐름에 동반한 것이 아닌가 하였다.
이러한 변화 법칙은 어떠하며,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는 태양열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태양의 과거는 어떠하며, 태양의 장래는 어떠할까 하는 등 문제는 극히 긴요하여 오늘날 천문학의 중심문제로 다수 학자가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다. 직접 태양에 나아가 관측하고 연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수의 항성을 연구하는 것도 결국은 태양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몇 억개라고 하는 항성(恒星) 대개 하나 하나가 태양과 같은 종류의 것인에 그중에는 진화 정도로 보아 태양보다 어린 것도 있으며, 우리 태양보다 더 늙고 큰 것도 있으므로, 이러한 항성을 연구하면 자연히 태양의 과거와 장래까지도 밝혀질 것이다.
[덧붙이는 말 - 편역자] 지난 100년 동안, 동력 사용량은 20년마다 배증한 것이 아니라, 3배 4배씩 증가하였을 터. 게다가 천문학 지식은 또 얼마나 증대하였는가. 그럼에도, 100년 전의 이 '천문학 지혜'에 비하여 오늘 우리의 삶과 지혜는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어진 것 같는 느낌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목메어 불러보는 '부'와 '지식'이란 것은 이 '현실세계'의 실상을 파악하고 이 '한 생애'를 살아가는 데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혹은 지금 우리가 '부'와 '지식'을 대하는 태도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준다.
<동학네오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