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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3. 2020

조선 팔도 정월 풍속 전람회

<별건곤> 제3호 (1927년 1월 1일)

[편역-박길수 / 주 :<별건곤>은 개벽사에서 발간한 '대중취미잡지'입니다. 차상찬 선생이 발간을 주도했고, 1926년 11월 1일(창간) - 1934년 7월 1일(종간)까지 모두 74호가 발행되었습니다. 1920년 8월호로 <개벽>이 폐간되자, 심각한 재정난에 처한 '개벽사'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점도 있으나, 대중 취향을 지향하면서도 최대한 의의 있는 기사를 게재하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아래 기사는 맞춤법과 일부 표현을 현대어로 바꾸었고, 사진은 편역자가 임의로 추가한 것이다.]



개회사


세월이 빠른지 인생이 덧없는지 병년(丙寅年, 1926)이란 그 길고도 짧은 세월은 다 지나가고 정묘년(丁卯라는 이 짧고도 깡충한 토끼 같은 같은 세월이 또 닥쳐왔습니다. 


기미년은 벌써 9년, 개벽사(開闢社) 창간으로부터는 벌씨 8년, 소화(昭和)로는 2년, 포덕(布德, 천도교창도 기준)으로는 68년, 서력(西曆)으로는 1927년이 되었습니다. 


세세연년(歲歲年年)에 당하고 당하는 이 정초를 우리가 기쁘다 한들 무엇으로써 그것을 다 발표하며, 슬프다 한들 또한 무엇으로써 그것을 다 발표하겠습니까. 


우주의 공도(公道)요 인생의 정궤(正軌, 바른 궤적)이니 자연대로 맡겨두고 금년은 늘 하던 대로 도소주(屠蘇酒)*나 한 됫박씩 하고 우리가 매년 해 오던 연중행사나 구경하기로 합시다.

[*屠蘇酒(도소주) :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마시는 약주. 초백주(椒柏)와 함께 세주(歲酒)로 쓰이며, 설날에 이 술을 마시면 괴질과 사기(邪氣)를 물리치며 장수한다고 믿었다.]


4000여 년 전래의 풍속을 어이 다 볼 수야 있겠습니까. 또한 적어도 삼천 리 13도의 풍속을 일일이 다 볼 수야 있겠습니까. 다만 조선 전래의 풍속하고도 13도 사람이 거의 다 알 만한 중요한 것 몇 가지를 보고 따로 유쾌히 놀 방법을 취하기로 합시다.


한 국가나 한 민족의 풍속 습관이란 원인이 깊고 멀어서 자세히 알려면 실로 긴 시간을 써서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종류만도 수백, 수천 종이니 그 원인과 연혁(沿革)과 현행의 각양각색을 다 알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정초의 실례[例套]로 장난 삼아 한 번 슬쩍 보고 가기로 합시다.


개회사가 길어서 안 되었습니다만,  한마디만 더 합시다. 풍속 습관이 좋고 나쁜 별 문제로 하고, 또는 시대에 맞고 안 맞는 것은 별 문제로 하고 여하간 한 민족이나 한 지방의 그때의 풍속은 그 민족과 그 지방에 막대한 관계가 있는 것이니 아무리 장남 삼아 본다 해도 심상히, 무심히 보지는 마옵시다. 자- 이만하고 전람회장으로 가십시다.


조선의 정월 풍속 일람


자- 들어오십시오. 우선 풍속 일람을 한 장씩 가지십시오. 준비를 급하게 하느라, 아직 도별 일람은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목차 따라서 보실 수밖에 없습니다.


편(便) 놀음 : 편을 지어서 하는 놀이 


一윳놀이, 一줄다리기, 一석전(石戰), 一연날리기, 一횃불싸움, 

一널뛰기, 一제기차기, 一공기놀이, 一승경도(陞卿圖; 주사위놀이)

승경도 놀이판 

가정 또는 개인 풍속

一신수(身數) 보기, 一입춘(立春),  一점풍(占豐), 一관월(觀月), 一답교(踏橋), 一제웅

一딱총놓기, 一피리 불기, 一도소주(屠蘇酒), 一약식(藥食), 一오곡(五穀)밥

一만두(饅頭), 一찰밥, 一증병(蒸餠), 一엿먹기, 一잣까기, 一채소(菜蔬) 먹기

一잠 안자기, 一밥 아홉 그릇 먹기, 一왼새끼 꼬기, 一물 안 먹기

一양계(養鷄), 一양잠(養蠶), 一신발 안 내놓기 一귀발기 술


윳놀이(擲柶)


자- 윳 구경부터 합시다. 이것은 백제(百濟) 때부터 전해오는 풍속인데, 경기, 충청, 전라도에 가장 많이 유행되는 풍속입니다. 서북지방(西北)에도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성행한 것은 아닙니다. 있다고 해도, 피알윳이나 밤윳이지오. 그러나 서울이나 삼남 각 도에서는 장작개비가튼 윳짝으로 혹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혹은 방 안에 돗자리를 깔고 2인 이상(수십 인까지)이 모여서 편을 갈라 가지고 서로 말 쓰기를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전장 흉내입니다. 아주 기운 나는 놀음입니다. 정초 놀음으로는 그럴 듯한 놀음입니다. "윳이야!" "모야!" 하고 무릎을 치며 손벽을 치며 뛰었다 앉았다, 으악 으악 고함치는 멋도 그럴 듯 하고, 가다가 잡히는 것이나 따라가서 잡는 멋이란 참말 가슴이 간지럽게 안타까운 놀음임니다.

외국 사람은 모르지만 조선 사람치고는 남녀노소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듯 합니다. 아는 것을 오래 볼 것은 없으니, 다른 데로 건너 갑시다.(혹 외국인이 알기를 요하면 별로히 설명을 하지오.)


줄다리기

이것은 조선뿐 아니라 외국에도 있나 봅니다. 학교에서나 운동회 같은 데서도 많이 하는 편놀음입니다. 우리 조선에도 경남같은 데나 평북 같은 데서(기타 각지) 재래로 많이 유행하던 정월 풍속임니다. 동리와 동리, 면과 면, 군과 군이 동서 혹 남북으로 편을 갈라 가지고 수백 수천의 남녀가 함께 나서서[擧幷] 싸우는 아주 굉장한 놀음입니다. 이긴 편은 풍년, 진 편은 흉년, 이긴 편은 괴질이 침범치 아니하고, 진편은 액인오 온다고 하여, 죽거나 다치는 것을 불구하고 덤벼들어 하는 일대 편싸움입니다.  


정월 초하루나 보름을 편싸움[便戰] 날로 정해 놓고 편과 편이 각각 싸움을 준비합니다. 동별 혹 호별로 금전이나 물품을 배정해 가지고 "올해 운수가 이 싸움에 달렸다[今年運數在此一戰]"고 굉장히 떠들어댑니다. 산에 가서 칡(葛)을 끊어 오며 (산골서는) 지푸라기를 축여 새끼를 꼬며 술을 빚으며 떡을 치며 "내일이 싸움날[開戰]이니 온 동네가 떨쳐 일어나 단결합시다[擧洞一決]" 하고 야단들이지요.


그리하야 개전할 때가 되면 편과 편이 편장[便長] 부편장[副便長] 등 대소 장군을 선두로 하여, 북을 치고 꽹막이(꽹가리)를 두들기며 나팔을 맛추어 새 장고 장단에 새우춤 건달춤으로 의기양양히 진두로 나옵니다. 편장(便長)의 지휘로 수백 수천 남녀 병졸이 일시에 좌우로 갈라섭니다. 이 편 줄 저 편 줄 맞 잇기를 기다려 (줄의 대가리를 龍頭라고 함) 편장의 한마디 명령 하에 좌우편 남녀 병졸은 일시에 줄을 쥡니다. (原 줄은 굵기가 한아름은 되고 곁줄은 넙적 다리 혹 팔둑과 같이 굵다) "자! 당겨라." 하고 개전령(開戰令)이 내리면 일시에 "으악!" 하고 일어섭니다.

으얏차! 으얏차! 당기어라, 당기어라! 으얏차! 으얏차! 하고 수천 남녀가 악을 써 고함치는 소리야말로 태산이 우쭐거리고 온동네가 떠나가는 것 같습니다. 혹은 집이 쓰러지고 혹은 낫가리가 무서지고 장독 그릇이 깨어지고 쓰러지고 자빠지고 허리 다치고 발등 밟히고 손바닥 터지고, 아야 으야 진다 이긴다 당기어라 끌어라 나오너라 들어가라!!!!!  실로 전쟁 중에도 돌경장(突擊場)이지요. 술 팔던 노파도 술그릇을 던지고 뛰어 나가고 새로 온 색시도 앉아서 구경은 못하게 되고 앉은뱅이 등꼽쟁이도 안 나가고는 못 배깁니다. 붙들 줄이 없으면 남의 허리라도 잡아 끌고, 들어설 곳이 없으면 남의 옷고름이라도 잡아 끌게 됩니다.


이리하여, 승패가 정해지면 패한 편의 꼴이야 울고불고 지랄하고 발광하고- 처창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긴 편의 기세야말로 장관, 대장관이지요. 용두(龍頭)에다가 편장(便長), 부편장(副便長) 등 대소 주무자를 태워 가지고 승전곡을 부르며 남녀 병졸이 그 만근이나 되는 줄을 둘러메고 동네를 일주하면서 실컷 뛰고 놀고 놀고 뛰고 야단 법벅석이지요.


줄다리기란 이러케 장쾌한 놀음입니다. 자- 다른 데로 옮겨 갑시다.


석전(石戰)과 횃불싸움

석전(石戰)이나 횃불 싸움은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박물관에 가서 고물(古物) 보는 셈 치고 잠깐 보고 갑시다. 

(편역자인 나는 1966년 생인데, 내 나이 10세 이전에, 우리 고향에서는 해마다 석전을 했다. 다만 이때 석전은 아이들끼리 윗동네, 아랫동네가 편을 지어 하는 놀이였다.)


예전에는 의주(義州)나 평양이나 서울 동막(東幕)이나 경상도(慶尙道) 등지에 이 놀음이 대성행이었는데 지금은 못 합니다.


석전(石戰)이야말로 무풍(武風)이지요. 강적 수나라, 당나라도 이런 상무(尙武: 무를 높임) 민족에게는 아니 패할 수 없었지요. 그중에도 평양석전은 참 유명하지요. 그때 그 석전 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간 약한 사람은 말부터도 겁이 나서 못 듣지요. 여하간 돌을 날려서(던져서) 사람을 치고, 다시 그 돌을 주워서 사람을 치는 그런 엄청난 놀음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 전설에 대해서는 대개 너댓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울에 남색(男色)의 폐풍이 성행했을 당시 남북이 분구(分區)가 되어서 미소년(美少年)을 겁탈(劫奪)하는 폐단이 있었는데 여기에 대한 방어 또는 도략(挑掠: 약탈적 놀이)에서 편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옛날부터 전해오던 풍습인데, 시단(詩壇)에는 시편싸움(詩便戰), 활터(射亭)에는 활편싸움(射便戰), 도시민(都民)들에게는 도시민의 싸움이 있다(有都民戰)이라 하는 문자가 옛 책에 있다고 하며, 

또 다른 하나는 진나라 장군 왕전(王剪)이 초나라를 정벌할 때, 군사 중에서 나왔다고 하며

또 다른 하나는 고구려 때 평양 대동강에 돌던지기 놀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횃불 싸움도 (싸리나 겨름대로 빗자루같이 횃불을 매어 불을 붙여 가지고) 조선 각지에서 많이 성행하였는데 지금은 없습니다.


연날리기, 제기 차기

연(凧)은 개인의 장난이나 또한 서로 짝을 지어서 하는 기술 싸움도 합니다. 종이와 대나무 껍대기 줄로 연을 묻혀 가지고 수십 수백 척 면사로 공중에 날리는 것이니 정초면 아이들이 많이 합니다. 그러다가 보름날 석양이면 연에다가 자기의 거주성명을 써서 멀리 날려 보냅니다. 그러면 액을 막는 방책(防厄)이 된다 합니다. 전설로는 당나라 때 안녹산(安祿山)이가 궁중에 있는 양귀비(楊貴妃)와 통신하느라 그리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기차기란 예전은 꽤 유행되었으나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아동들이 엽전에다가 종이를 꿰어서 번갈아 많이 차기를 할 뿐임니다.


널뛰기와 공기

널뛰는 것이란 이야말로 한참 볼 만한 부녀(婦女)의 정초 놀음입니다. 새 옷과 새 신발로 곱게곱게 단장한 미인들이 삼삼오오 마당에 삥 둘러 서서 둘씩 둘씩 번갈아 널판에 올라 번갈아 좌우를 굴러 뛰는 것이란 참말 볼 만 합니다. 그중에도 처녀들이 긴 머리에 빨간 댕기를 드리고 꽝꽝 굴러 뛰는 것이 더 보기 좋습니다. 정초에 그것을 뛰어야 다리가 튼튼해진다 합니다.

공기놀리기도 또한 정초면 부녀들이 많이 하는 놀음인데 밤알 같은 조갯돌 넷이나 혹 다섯으로 던졌다 받았다 숨겼다 냈다 하며 많이 하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노름이라 그다지 시원치는 않으나 재미는 있습니다.


통틀어 일람하기 


시간 바쁜데 낱낱이 다 볼 수는 없습니다. 세배도 해야겠고 한 잔 마시기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자- 얼핏얼핏 보십시다.


섣달 그믐까지 설이라 합니다. 그래서 어린애들은 알룩달룩한 색동 저고리를 입습니다. 그믐날 저녁은 잠을 자면 눈섭이 센다 하여 잠 안 자기 내기를 합니다. 이것은 그해 마지막 날 저녁이니 자지 말고 유쾌히 보내자는 방도겠지요. 이날 밤에 조선(祖先)에게 차레를 지냅니다. 


초하루 날은 남녀노소가 연령 따라 세배를 합니다. 도소주를 먹으며 만두를 먹습니다. 그래야 1년 신수대길(身數大吉)하다고요. 그리고 어린 사람들은 딱총 놓으며 피리를 불며 길거리를 요란케 합니다.


입춘 날은 서울이나 지방을 막론하고 문이나 방에 입춘시를 써 붙입니다. 세재졍묘만사형통(歲在丁卯萬事亨通)이니 수여산복사해(壽如山福似海)니 호납동서북재(戶納東西南北財)니 그 따위 목을 맞이하고 화를 막는(迎福防禍)의 글귀를 써붙입니다. 


그리고 정초부터 보름까지는 대개는 일을 아니하고 질탕히 놉니다. 그리고 자축인묘진사오모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십이간지에 따라 1일이니 2일이니 그러지 안코 자일(子日)은 쥐날 축일(丑日)은 소날 인일(寅日)은 범날----. 이렇게 짐승의 이름으로 대용함니다. 그리하야 모생수 무모전(毛生獸 無毛戰)을 따라 모일(毛日)이니 무모일(無毛日)이니 하여 복(福)이니 화(禍)니 풍(豐)이니 흉(凶)이니 전설이 많습니다. 


시시껍적한 소리 그만하고 정월 보름은 관월(觀月)을 함니다. 달의 빛이 올라오는 방위를 보아 흉풍(凶豐)을 점치며 보름달만큼 보면 아들 낳는다 하야 마추어 보기 쟁선(爭先)을 합니다. 


그리고 이날 저녁 답교(踏橋)를 합니다. 서울 광통교(廣通橋) 다리는 미인 구경이 좋습니다. 탑교(踏橋)를 해야 그해 1년에 다리가 안 아프다 합니다. 


보름날은 약식(藥食)을 먹습니다. 

이가 튼튼하라고 잣이나 호도를 까 먹습니다. 

채소를 먹으며 오곡밥을 먹으며 신발 안 내놓기, 물 아니 주기, 누에 치는 홍내, 닭 치는 흉내, 별별 풍속이 많습니다. 


모두 복을 맞이하고 재앙을 막는(迎福防禍) 의미입니다. 그만큼 알면 그만입니다. 


자- 그만 보고 내년에 또 보기로 하고 세주(歲酒)나 한 잔씩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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