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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Feb 13. 2020

땅이 곧 어머니임을 기억하라!

[편역자 주] 이 글은 <<개벽>> 제3호(1920년 9월호, 1920.8.15) '권두논단' "우리의 신기원(新紀元)을 선언하노라" 중의 일부임. 편역자가 '국한문혼용'체를 현대어로 각색함. 이 글은 2020년 2월 13일, <제4차 개벽강독>에서 읽었음.



땅(地)이 어머니임을 기억하라


특별히 새로운 말이 아니라, 천지부모(天地父母)라 함은 예부터 전해오는 말[自古傳稱]이거늘 근래 무슨 까닭인지 ‘하느님 아버지’라는 말은 성전(盛傳)하는데, 땅님 어머님이란 말은 아주 종적이 끊어졌도다. 


하느님이라 함은 즉 신을 말함이니, 신은 인간[人生] 자체를 떠나서 상상할 수 없으며, 인생은 그것의 자모(慈母)인 땅을 떠나서 상상할 수 없은즉 결국 우리에게는 자모(慈母)의 땅이 있을 뿐이다. 대체 생물이란 무엇이냐. 일종의 흙의 화생물[權化品: 잠시 변화하여 생긴 것]에 불과한 것이니, 창세기(創世記)에 사람은 흙으로써 사람을 만들었다 하는 것도 이를 의미함이라. 


어떤 사람은 육[肉] 외에 영(靈)이 다시 있음[更有]을 비견[以]하여 땅[地] 이외의 어떤 ‘아버지[父]’를 찾고자 하지만, 소위 영(靈)이라 하는 것은 자모(慈母)인 땅이 호흡하는 대기의 교묘한 응집(凝集)에 불과한 것인즉 어떻게 생각하여도 우리에게는 순실(純實)한 땅의 어머니가 있는 외에 다시 다른 것이 있음은 알지 못하겠도다.


형제들아! 땅에 충실[忠]할지라. 옛날에는 선성(先聖)을 모독[瀆]하는 것 혹은 천부(天父)를 모독하는 것이 최대의 죄악이었다. 그러나 선성(先聖)은 동일한 미성품(未成品)인 우리 친구[友人]가 되고, 천부(天父)는 그 존재를 인정[認]하기 어려운 금일에 있어서는 땅을 모독[瀆]하는 것이 가장 큰 죄악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말이라 하지 말지어다. 우리를 포옹하는 대지는 우주 대신비(大神秘)의 일대 결정체(結晶體)이니 저 들판의 초목 하나하나[一草一木]로부터 산하의 돌멩이 하나 모래 알갱이 하나[一拳石一沙粒]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이나 다 그 신비가 현실화한 한 형상(形狀) 또는 한 복장(服裝) 아님이 없으며, 인류는 그중 더욱 그러한[尤然]한 자라.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고요히 하여, 대지의 흉회(胸懷)에 들어가면 바로 어린아이[幼兒]가 자모(慈母)에)게 귀의하는 것과 같아서 무사기(無邪氣)한 즐거움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바로 대우주의 신비, 그 거문고줄[琴線]이 자기 화생의 그 원두(源頭)에 맞닿아[觸] 출생 그 찰나의 그 순수와 같은 대순수를 맛볼지니, 복잡한 이 세간에 있어서, 잠시나마[時日] 이러한 삼매(三昧)에 들어감이 없고서야 어찌 자기[自家]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그의 흉회(胸懷)에 들어가면 부지불식간에 인류는 물론이요, 이 세간 만물[萬生]은 똑같이 땅 어머니의 뱃속[胎中]에서 태어난[所産] 동시에 그들은 확실히 우리 형제라는 가장 진지한 감념(感念)을 얻으며 “어머니시여, 저는 어머니가 처음 주신 그 순실(純實)로써 여러 형제와 근심과 슬픔[憂戚]을 함께하며 기쁨과 슬픔[喜悲]을 서로 나누어 스 생명을 공영(共榮)케 하겠나이다.” 하는 기도를 스스로 아니하지 못하게 되나니, 이 감념[感念]에 접하고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자기에 충실[忠]하는 순수한 사람[純人]이 될 것이며, 전 인류와 운명을 같이 한다는 큰 지성(至誠)을 갖게 될 것이며, 천지와 그 화육(化育을 나눈다는 큰 감념(感念)을 갖게 될 것이다. 


이 거사에 나아가지 않고 오직 일시적으로 문서와 사고(思考)에 의하야 동포 형제를 말하고 친친급물(親親及物)을 말함과 같은 것은 위선[僞] 중의 위선이요, 오직 세간을 희롱하는 무리[徒輩]가 될 뿐 아니라, 이 의미에서 금후의 우리는 무엇무엇보다도 우선 대지(大地)의 자회(慈懷: 자애롭게 품어줌)에 귀의하여 대순수(大純粹)를 체득하기를 종용(慫慂)하며, 이 세계의 인류는 모두 ‘땅어머니’를 부를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을 미리 말하노라.


[편역자의 덧붙임] (1) 30년 넘게 천도교(동학)을 신앙한다 하면서, 천도교를 신앙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본 날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 삶을 어떻게 방향 짓고, 어떻게 자리매김하는지, 하게 할지에 대해서도, 막연히 생각해 본 것이 전부인 듯합니다. 천도교(동학)을 신앙하지 않고도, 잘 사는 사람들은 잘 삽니다. 30년 넘에 천도교(동학)을 신앙해 온 나보다 훨씬 더 잘 삽니다. 내 삶은 오히려, 이 시대 '잘 삶'의 평균 수준 이하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

(2) '천지부모' "땅 아끼기를 어머니 살 아끼는 것처럼 하라"는 말씀은 해월신사의 말씀을 - 1980~90년대 장일순 선생이 재발견, 재해석한 것으로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올해로 창간 100주년이 되는 <개벽>의 편집자들은 이미 그 시대에 "이 세계 인류는 모두 '땅 어머니'를 부를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을 미리 말함[豫言]합니다. 이것은 무슨 예지력의 소산이라기보다,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祈禱)일 겁니다. 

(3) 이 글을 현대말로 편역하면서, 30년 전, 1989, 1990 무렵 '주간개벽'을 만들며, 모자란 원고를 채우기 위해 애면글면 하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 지금도 나는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큰 프로젝트 사업이라면, 나 혼자 지금부터 시작해서 10년 넘게 걸릴 일을 한두 달 사이에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보면, 내 일생(70년? 80년?)이란, 어떤 사람(들)의 1년도 미치지 못하는 '일'을 붙잡고 씨름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4) 남은 삶의 시간은, 달리 살아야겠습니다. 달리 살아야겠습니다. -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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