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천도교 종지는 인내천, 21세기 천도교 종지는 동귀일체
[이 원고는 2020년 2월 9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한 설교의 원고입니다.]
한 시일 동안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모시고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가 오늘처럼 새삼스럽고 간절한 기도의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01. 입춘을 전후로 큰 한파가 밀어 닥쳤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중국은 물론 전 세계가 걱정과 두려움에 떨면서 하루빨리 이 사태가 진정되고, 해결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확진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서, 여러분들 모두 걱정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동덕님들께서는 각자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여 바이러스 감염 예방에 만전을 기해 주시고, 건강하게 새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02. 돌이켜보면, 이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 2000년대 들어서만 해도 2003년에는 중국에서 크게 유행한 사스, 2009년에는 멕시코 돼지독감, 2014년에는 아프리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에볼라, 2015년에는 중동 호흡기증후군이라고 불린 메르스, 2016년에는 브라질에서 시작된 지카 바이러스 같은 전염성 질병이 세계적인 유행을 하여 많은 인명이 사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거의 해마다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물론 조류독감이나 돼지열병이 계속해서 일어나서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이 살처분 되는 참극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대 유행 사태가 첫째, 일회적이고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 둘째, 그러므로 이것이 시사하는 시대적이고 문명사적인 의미가 있다는 점, 셋째, 코로나 바이러스 대 유행 사태를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계가 긴밀하게 이어져 있는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수운 대신사께서 동학을 창도하던 당시에 이미 예감하시고, 민감하게 염두에 두었던 문명사적인 전환의 한 흐름이면서, 20세기 내내 심화되어 왔고, 이제 21세기에 접어 들어서, 더욱 뚜렷하게 그 모습과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 개벽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21세기와 동귀일체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03. 일찍이 수운 대신사께서 천도교를 창도하실 때도, 가장 우선으로 고려하였던 것은 이른바 ‘악질’이었습니다. <<동경대전>> <포덕문> 끝부분에서 대신사께서는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악질이 가득차서 사람들이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으니, 보국안민의 방책이 장차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라고 한탄하시면서 “간략하나마 적어 내어 가르쳐 보이니, 공경히 이 글을 받아 삼가 교훈의 말씀으로 삼을지어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수운 대신사께서 태어나신 1824년보다 한 세대, 약 30년 정도 앞선 1800년 무렵부터 우리나라에는 오늘날의 동남아시아에서 유입된 콜레라가 괴질 또는 역병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 걸러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수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생기곤 했습니다.
04. 그런데 그로부터 20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괴질, 악질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이러한 전염병이 단지 인간의 위생 문제나 자연 환경, 바이러스나 병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방식, 즉 오늘날 우리 인간이 누리가 있는 현대문명의 근본적인 문제와 깊이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라고 하는 시대의 조건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21세기라는 시대 환경 속에서 우리 개개인이 천도교 신앙을 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05. 다시 앞에서 언급하였던 경전 <포덕문>의 말씀을 돌이켜보면, 수운 대신사께서 “지금 우리나라에 악질이 가득차서 백성이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다”라고 하실 때의 ‘악질’은 단지 콜레라 같은 의학적인 질병만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불고천명, 즉 천명을 돌아보지 않고, 불순천리, 즉 천리를 따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문화적, 문명적인 차원의 문제까지 포함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수운 대신사께서는 <<용담유사>> <안심가>에서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십이제국’은 이 세상 모든 나라를 말하는 것이므로, 오늘날 지구촌이라고 하는 이 세상이 괴질 운수에 빠졌다가 다시 개벽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보면, 수운대신사께서 태어나시던 1820년대부터 2020년 오늘에 이르는 200년 동안은 바로 이러한 괴질운수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며, 이 괴질운수는 우리 동학 천도교가 앞장서서 열어나가고 있는 개벽운수로 말미암아 다시 개벽할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도교의 역사를 보면, 그 사이에는 1860년에 수운대신사께서 동학 천도교를 창도하는 사건이 있었고, 또 1905년에는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1905년 의암성사께서 동학을 천도교로 현도하시는 사건이 20세기의 개막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6. 아시는 바와 같이 동학으로부터 천도교를 대고천하는 과정은 동학혁명의 좌절, 그리고 노골적으로 전개되는 서세동점, 그 가운데서도 일본이 우리나라의 주권을 야금야금 침탈해 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의암성사는 1900년, 즉 20세기가 개막되는 바로 그해에 서세동점의 최전선이던 일본에 건너가셔서, 도도하게 밀려오는 세계의 신문명, 20세기의 과학주의, 제국주의 문명의 거대한 흐름을 목격하셨습니다.
의암성사는 해월신사로부터 이어받은 동학의 근본적인 이치에 비추어 서양의 과학과 철학과 종교를 무조건 배타적으로 대하지도 않으셨고, 그렇다고 무조건 수용하는 태도로 일관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1900년대 초엽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우선 눈에 띄는 모습은 당시 세계를 풍미하고 있던 서양의 종교와 철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동학 – 천도교의 경쟁력을 확인하고 확보하고 확장하는 과제였습니다.
07. 이러한 과제를 종합적으로 대처한 것이 바로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천도교로 출범하면서 수운대신사와 해월신사로 이어져 온 동학의 교리 가운데,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고 하는 용어를 가장 핵심적인 용어로서 세상에 널리 홍보하였습니다. 교리 발달사에서 보면, 그리고 현대적인 용어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1910년대와 1920년대 천도교단의 폭발적인 성장은 바로 ‘인내천(人乃天)’이라고 하는 가장 천도교적이면서도, 또 세상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깨우침을 주는 용어가 마케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08. 인내천이라는 용어를 의암성사 시대에 비로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해월신사 법설을 보거나 의암성사법설을 보면 인내천은 수운 대신사님께서 도를 펴시던 당시부터 직접 누누이 강조하신 말씀라고 하셨습니다.
즉 <<해월신사법설>> 「기타」(427-428쪽) 편에는 “내 꿈속이라도 어찌 수운 선생님의 유훈을 잊겠는가. 선생께서는 인내천의 본뜻을 말씀하시되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섬기듯이 하라”고 하셔서 ‘人乃天’이라는 말의 본뜻은 수운 대신사께서 말씀하신 것임을 밝히셨으며,
또 <<의암성사법설>> 「성령출세설」(654쪽)에 보면, “대신사께서 일찍이 주문의 뜻을 풀어서 말씀하시기를 ‘모신 것이란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 일세지인(一世之人) 각지불이자야(各知不移者也)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영의 유기적인 표현을 지칭하신 것이며, 인내천의 정의를 도파하신 것”이라고 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물론 결정적으로는 <<의암성사법설>> 「대종정의」(654쪽) 편에서 “인내천이 우리 도의 종지”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고, 결정적으로는 <<의암성사법설>>「신앙통일과 규모일치」(708-709쪽), “우리 교회의 일대 목적은 인내천”이라고 선언함으로써 확고하게 그 시대 천도교의 최고 목표로 설정되었고, 그 이후 1910년대와 1920년대의 천도교의 지식인들이 이 말을 교리적, 철학적으로 널리 유행시키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천도교를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09. 그런데 저는 이처럼 교단 차원에서 ‘인내천’이라는 말의 유래와 그것이 20세기의 천도교의 종지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과정과 더불어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당시의 시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당시 동아시아로 밀려들어오던 서양의 종교가 천주교라는 서학이라고 한다면, 서양의 철학과 과학기술은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지상가치(至上價値)로 삼는, 다시 말해 이 세상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는 것으로 설정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20세기 이후 인류문명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인권과 인격, 즉 개개인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이데올로기를 절대적인 가치로 치부하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주의에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의 두 측면이 있습니다.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종지는 바로 서양에서 유래한 개인의 인격, 인권을 최고로 여기는 가치를 가장 근본적인 최고 정점으로서, 사람의 지위, 사람의 정체성을 ‘한울님’이라고 하는 궁극적인 존재와 일치시킴으로써,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근대, 자생적인 근대의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내천으로서 인간 개개인의 가치를 최고 지상의 가치로 옹립한 것은 조선 5백 년 동안 한 집안에 종속된 개인, 부모에게 종속된 자녀, 양반과 상놈의 신분제도하에 핍박받던 대다수의 인간을 해방하고, 그 정체성을 한울님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데서, 후천개벽의 위대한 발견이며 선언이었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당시 신분차별, 빈부차별, 남녀차별에 고통받던 많은 사람들이 ‘인내천’의 종지를 내세운 천도교로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10. 그렇게 해서 지난 1세기, 100년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의 변화는 그에 앞선 1천 년의 변화보다 더 급격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맞이하는 21세기는 많은 경제적 성장, 물질적 발달, 과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기상이변으로 수십만 년 동안 녹지 않던 북극의 얼음이 단 30년 만에 다 녹아 없어지고, 호주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산불이 몇 개월째 계속되는가 하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이번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처럼, 전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괴질, 악질이 만연하는 세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가 직접적으로 개인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개인주의라고 하는 이념과 근대과학의 물질주의를 이끌어가는 이념은 그 근본 바탕에서는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 그러한 맥락과는 좀 다른 차원에서 보면, 20세기 1백 년 동안 천도교와 영광과 고난을 함께했던 인내천(人乃天)이라는 종지도 이제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천도교를 색다르게 인식하게 하는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가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인권을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가 되었다는 이유도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개인주의가 현재 세계의 위기와 한계, 그리고 고립주의 등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2. 제가 오늘 ‘21세기와 동귀일체’라는 제목을 가지고 설교에 임하는 것은, 인내천의 종교로서 자리매김했던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한 현 시점에서 천도교 신앙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올해가 벌써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어느덧 20년 즉 1/5이 지났지만,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의 특징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두드러지고 있으므로, 이 시점에 21세기 천도교의 종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뒤늦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13. 저는 21세기에 천도교인들이 가장 깊이 생각하고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넓게 펼쳐나가야 할 교리적 표어가 바로 ‘동귀일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 천도교를 대표하는 핵심 교리가 ‘동귀일체’가 될 수 있다면, 그 뜻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동귀일체는 수운 대신사께서 <<용담유사>> <권학가> 등의 여러 대목에서 천도교에 입도한 현숙한 모든 군자나, 또 도탄에 빠진 세상 사람들에게 ‘각자위심’하지 말고 ‘동귀일체’ 하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
14. 동귀일체를 쉽게 생각하면 일치단결해서 교회 생활을 해야 한다, 또는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 한마음 한 뜻으로 상부상조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천도교를 대표하는 교리 용어로서 ‘동귀일체’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수운대신사님 이래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모두 담고 있으며, 또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15. 먼저 동귀일체는 천지인 삼재,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고하는 세 위상을 삼위일체, 회삼귀일의 형태로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동귀일체의 첫 번째 위상은 나 즉 하늘, 즉 한울님과 사람 사이의 동귀일체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곧 한울니이라는 인내천, 사람이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가 바로 동귀일체의 근본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동귀일체의 두 번째 위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동귀일체입니다. 우선 좁게 말하면 천도교에 입도한 우리 동덕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천도교인들이 서로를 동덕이라고 부르고 천포형제라고 부를 때,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는지, 또 실제의 교회 생활이나 사회생활, 가정생활에서도 동덕과 천포형제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마음가짐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동귀일체입니다. 나아가 인오동포, 물오동포라고 할 때, 우리 인류 전체가 나와 한 동포임을 깨닫고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동귀일체입니다. 동귀일체의 세 번째 위상은 바로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이 세상 만물 사이에도 동귀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로 인오동포 물오동포에서 물오동포의 정신이며 경천-경인-경물의 삼경에서 경물의 정신을 말합니다.
16. 이러한 동귀일체의 관점에서 지금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둘러싼 세상 풍속을 돌아보면, 21세기 천도교의 종지로서 동귀일체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 바이러스 예방의 필수품인 마스크를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였고, 그 틈을 타서 매점매석하는 사람들도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각자위심의 행위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맞이한 재난을 이용해서 나만 잘살겠다는 것이야말로 각자위심의 극단적인 행태입니다. 또한 중국 우환에서 귀국하는 우리 동포들을 임시 격리수용하는 문제를 두고 한때 지역 주민들이 극심한 반발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분들로서는 그렇게 반발할 이유가 없지 않았지만, 죽음의 땅에서 살 길을 찾아 온 동포들을 두고 잠시나마 보여준 그 모습은 각자위심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수운 대신사께서 주유천하를 하던 시절에 온 세상 사람들이 각자위심하여 혹은 궁궁촌 찾아가고, 혹은 서학에 입도하는 각자도생의 아비규한에 빠지고,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자시지벽을 내세우고, 자행자지하던 그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하루 이틀 지나면서 공포심이 줄어들면서 분위기가 극적으로 반전되어, 그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귀국 동포들을 환영하고, 또 물심양면의 지원을 하는 감동적인 모습이 연출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그 모습이 동귀일체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21세기형 각자위심과 21세기형 동귀일체의 모습들은 우리 국내뿐만이 아니라 이번 사태의 발원지인 중국에서도 번갈아 나타나며,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각자위심과 동귀일체가 서로 교차하며 나타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 동귀일체의 기운이 성숙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그것이 ‘다시 개벽’의 운수라고 믿습니다. 그 운수를 최종적이고 결정적이고, 근본적으로 꽃피우는 것이 바로 천도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17. 제가 21세기 천도교의 핵심 교리로서 ‘동귀일체’를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사건에 직접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이 21세기의 전 인류적이고, 전 지구적인 과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인류 문명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 동귀일체의 원리를 좀더 깊이 있게 해석하고 좀더 널리 세상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동귀일체의 원리를 잘 생각하여 교회생활과 가정생활, 사회생활의 모든 방면에 적용한다면 천도교를 신앙하는 개인적인 보람, 가정적인 행복, 교회적인 성취를 이루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니다.
18. 이런 점에서 21세기의 시대 상황 속에서 생각해 보아야 하는 동귀일체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는 바로 나와 한울님뿐만 아니라, 나와 신앙을 함께하는 동덕님을 비롯하여 이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 세상 자연 만물이 모두 나와 한마음 한 뜻으로 살아가는 인오동포요 물오동포인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 바로 동귀일체라는 말입니다. 이 동귀일체는 시천주나 사인여천 인내천이라는 그동안의 말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완하고, 또 재해석하는 용어임은 물론입니다.
19. 지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몰고 온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라는 악질이 지금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이러한 악질은 지난 20세기 동안 사람이 한울님을 돌아보지 않고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데 몰두하였고, 물오동포로서 우리의 환경을 돌아보지 않고 각자위심의 삶을 살아온 결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근본적으로 각자위심의 마음가짐과 삶의 방식을 동귀일체의 마음가짐과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되풀이되고, 새로운 변형 바이러스의 형태로 우리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20. 한울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만물이 모두 동귀일체의 존재라는 이 이치를 우리 스스로도 자각하고 그에 따르는 일상생활, 그것을 지키고 키우는 신앙생활, 그것을 널리 펼치는 사회생활을 해 나가며, 21세기 문명을 동귀일체 문명으로 바꾸어 나갈 때, 오늘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이 전 지구적인 재난 사태, 세상에 가득찬 악질과 십이제국 괴질운수는 다시 개벽의 성운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21. 동귀일체의 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손을 깨끗이 씻어서 나의 위생을 철저하게 하는 것은 나를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내 가족과 내 이웃, 우리 동포와 세상 사람들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동귀일체의 정신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천도교가 21세기라는 이 지구촌 시대, 우주 시대에 다시 한 번 세상의 희망이 되고, 문명의 선구자가 되는 길은 한울님과 사람과 이 세상 만물이 모두 동귀일체라는 원리를 나 한 사람부터 실천하고, 내 가족이 실천하고, 각자의 교회, 그리고 직장에서 실천해 나갈 때 가능할 것입니다.
22. 아무쪼록, 동귀일체의 정신으로 당면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천도교 시대를 여는 길을 생각해 보자고 당부하면서 오늘 설교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