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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7. 2020

개벽의 징후-책과 출판

[필자 주 : 이 글은 곧 출간될 <개벽의 징후(가제)>에 수록될 원고(초고)입니다.


1.


‘책(출판)의 개벽’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이니만큼, 책과 출판의 개벽에 관한 가장 첨예한 이야기보다,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초기단계부터 이야기해 보는 게 좋겠다. ‘인간의 삶과 운명’의 향방을 ‘종교 또는 그 종교를 등에 업은 소수의 성직자가 독점’하던 중세시대로부터 ‘보편적인 인권’을 지향하는 근대시대로의 이행은 ‘출판혁명’이 근본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은 현재까지의 출판의 틀을 형성하고 유지해 오는 기본 출발점이 된다. 책이 소수 귀족들에 독점되지 않고 시민들에게 보급됨으로써 그들의 교양수준과 자기인식의 수준이 심화되었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철학사상의 고양과 민주주의 발달로 귀결되어 갔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성서의 번역과 (대중적) 보급을 촉발하고 종교개혁(혁명)의 동인을 제공한다는 점도 ‘출판’이 ‘혁명’의 도구가 됨을 말해주는 징표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임금이 한글을 창제하고, 이 고유한 문자의 보급을 위한 인쇄를 늘림으로써 민(民)의 성장(사상적, 경제적)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 한글의 창제와 보급은 조선 시대 내내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근대(임진/병자 양란 이후) 이후 우리가 중국으로 편입되지도 않고, 일제 강점 이후에 ‘독립국임과 독자적인 민족임’을 회복할 수 있는 근본 바탕이 되었다. 또 6.25 이후 한국사회가 역사상 유례가 없이, 과거 식민 국가였던 나라가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는 유일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쉽게 배우고 익히는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의 양적 질적 확장과 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한국 근세-근대-현대사와 출판(교육)의 관계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우리나라 최대의 서점 ‘교보문고’의 설립 정신이 가장 잘 표현해 준다. 이것을 세계적/인류적 지평으로 확장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의 진화가 “인간과 도구의 공진화(共進化=인간이 도구를 활용하고, 그것이 인간의 認知力 進化를 촉진함) 과정”이었던 것처럼, 근대 이후의 인간은 “책(출판)과의 공진화(共進化)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근대(현대)문명을 일구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인터넷의 등장 이후 근 20년 이상 ‘종이책(출판)의 종말과 전자책의 득세’를 이야기할 때, 책의 물성(物性)과 인간이 공진화(共進化)해 온 역사, ‘책에 길들여진 인간의 의구성(依舊性)’에 기대어 “섣부른 단견에 불과하다”고만 외치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물론 ‘종이책의 종말’이라는 말을 가장 좁은 의미(‘종이책의 소멸’)로 이해하고 사용할 때, 그 말은 여전히 반발과 반론을 불러일으킨다(즉 종이책은 앞으로도 종말과 소멸을 고하기는커녕 상당한 기간 동안 인류와 더불어 함께할 것이다 = 필자의 입장도 여기에 서 있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한 지 40여 년, 대중적인 의미의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10년을 넘어서는 현 시점에서, 이미 ‘책’의 의미와 지평은 달라져 버렸다. (필자를 포함한) 종이책 존속론자들이 종이책의 성채(城寨) 망루에 서서 초조하게 전자책이 진군해 온다는 지평선을 관측하며, ‘그러나 전자책에 의한 종이책의 종말이 요원한 일’이라고 예측하고 있을 때, ‘새로운 책’은 날개를 달고 하늘로부터 살포시 종이책의 성(城)에 내려앉아 이미 성안을 점령해 버린(최소한 점령을 앞두고 있는) 형국이다. 다행스런 점(?)은 그 ‘새로운 책’은 “종이책의 멸망을 지향하지도 않고 또 바라지도 않는다.”는 공언(公言)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점령군의 公言은 늘 믿을 게 못 된다). 그 자비로운 ‘새로운 책’의 태도에 기대어, 종이책의 종말과 소멸은 당분간 유보 상태이다. 그 ‘유보기간’ 중에도 출판 환경은 진화와 변곡(變曲)을 거듭하는 중이다. 


아무튼 지난 500여 년 동안의 ‘종이책’ 중심의 책의 시대는 어느 날 갑자기 ‘좀 더 넓은 의미의 책-콘텐츠 = 새로운 책’의 시대로 가속을 거듭하며 이행하고 있음을 우리는 어느 날 문득 발견하게 되었다. 그 ‘가속’은 달이 바뀔 때마다, 해가 바뀔 때마다 ‘가속의 가속’을 거듭하고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미래를 분명하게 예측할 수 없는 이 ‘가속의 가속 시대’에 분명한 것은 출판(책)을 둘러싼 우리 삶이 이전과는 확연히, 단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즉 책(출판)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우리 자신(인간)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이 시대에 “사람들이 (종이)책을 점점 더 읽지 않고 있지만, 오늘날 인간은 인류의 등장 이래 가장 많은 콘텐츠를 읽고, 또 쓰고 있다.”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현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많은 출판사들이 도서 판매 부진에 따른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을 거듭하는데, 해마다 출판사의 숫자는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2013년에 44,148개이던 출판사는 2018년 말 현재 59,306개로 집계되었다(1권 이상 출간을 한 출판사-실적출판사 숫자는 8,058개로 2013년 3,400개 전후에 비해 40% 증가). 출간종수도 해마다 늘어 2018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총 81,890종의 도서(납본 기준)가 발행되었다. 전년대비 2.2%가 늘어난 수치이고, 2013년 61,548종에 비해서는 130%가 늘어난 수치이다.  


가장 두드러진 추세 중 하나는 2013년 2,331개이던 서점 숫자가 2017년엔 2,050개로 줄어들고 있으며 그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2010년경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독립서점’은 2015년 97개, 2018년에는 416개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여기에는 불완전하나마, 2003년 처음 도입되고, 2014년 강화된 도서정가제가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상반된 추세(일반오프라인 서점↓ 독립서점↑) 역시 달라진 출판+독서 환경을 반영한다.  

3. 


이러한 변화는 ‘오프라인 서점 몰락의 주범이자 종범이며 공범이기도 한’ 아마존의 최근 동향에서 가장 극적으로 두드러진다. 아마존은 이제 책을 파는 ‘온라인 서점’을 넘어선 지 오래고, 세계의 모든 것을 판매하는 플랫폼도 넘어 서고 전 세계의 모든(?) 데이터를 관리(AWS)하는 ‘플랫폼 오브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 아마존이 2015년 11월에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북스’ 1호점을 개설했다(2019년 12월 현재 미국 전역에 20개를 넘어섰고 수 년 내에 300-400개를 개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왕(오프라인 서점)의 귀환”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정-반-합(=정)’의 도식 그대로,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은 이전의 ‘전통적인 오프라인 서점’과는 같으면서도 또한 다르다. 가장 중요한 차별점은 ‘온라인(데이터)을 장착한 오프라인 서점’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모습을 하였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데이터화해서 처리하고 행동 방식을 결정하는 인공지능 로봇 ‘터미네이터’처럼, 온라인 서점에서의 평점, 주문 동향, 온라인에서 언급되는 키워드 등을 종합하여 도서 배열(큐레이션) 우리나라의 ‘교보문고’처럼 ‘오프라인 서점’으로부터 출발해서 ‘온라인 교보문고’로서도 국내 최고서점의 지위를 잃지 않아 ‘온-오프 서점’이 균형(?)을 이룬 경우와 다르면서도 또 같다. 이제 아마존 서점을 방문하는 고객은 놀라울 정도로 ‘오직’ 나의 취향이나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서가로 이루어진 ‘천국의 서점(도서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와 다른 결에서 ‘츠타야 서점’은 “서점이면서 서점이 아닌 서점”의 시대를 열었다. ‘책이 아니라 가치를 판다’는 츠타야 서점의 모토가 말해 주듯이 이제 책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를 지닌 상품이기도 하지만, 다른 상품(ex: 등산용품 사이에 놓인 등산 안내 책, 주방 용품 사이에 놓인 요리책, 육아용품 사이에 놓인 육아서적)으로 나아가는 입구 역할을 하거나 반대로 다른 상품을 위한 ‘장식물’이 되기도 한다(츠타야 서점의 경우 서점에서 출발하여 관련 상품을 파는 것으로 진화해 간 반면, 양복점에 패션 관련 단행본을 중심으로 한 여러 책을 비치하는 식으로, ‘상품판매’ 가게에 서점이 입점하기도 한다.) 


제1차 출판혁명(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의해 촉발된)에 이어, 지금은 가히 제2차 출판혁명기 – 출판의 개벽, 개벽의 출판 시대라고 할 만하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표어에 기대어 말하자면, 책을 만드는 사람이 변하니 책이 변하고, 책의 변화가 다시 사람의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거시적인 지평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좀더 근본적인 측면이기도 한데, 미시적인 수준, 개개인의 삶의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통적이고 저력 있는 출판사에서는 독자 개개인의 취향과 수요(need)를 정밀하게 타격하는 미세하고 세심하는 출판물로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적으로 3~4인의 직원을 둔 출판사까지를 지칭하던 ‘1인 출판’은 이제 명실상부하게 ‘1인(이 근무하고 운용하는) 출판사’로까지 진화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 출판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렇게 해도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고 유통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고, 그렇게 해야 할 만큼 열악해졌다는 뜻도 된다. 그런가하면 종이책을 출간하기 전에 전자책을 먼저 출간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아예 전자책으로만 출간하는 사례도 폭증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등에 따라 학습교재 시장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가는 반면 오랫동안 ‘비주류 출판’으로 폄훼되어 오던 만화(웹툰)과 장르소설이 전자책 출판 환경을 매개로 하여 출판계의 블루오션 내지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일간(日刊)이슬아’는 매일 한 편의 수필을 이메일을 통해 구독하는 새로운 개념의 ‘출판’을 시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러한 성공을 기반으로 좀더 ‘전통적인 방식’에 가까운 출판사를 직접(?) 설립하여 종이책 출판까지 진행하고 있다(이와 유사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다양한 성공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통적인 출판이라면 1권으로 발행될 책을 여러 권(?)으로 나누어 ‘온라인’에서만 판매하는 ‘북저널리즘’ 같은 새로운 출판(사+잡지사)가 등장하여 승승장구하고, ‘텀블벅’을 통해서 출간 전에 후원자를 모집하여 출간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여 안정적이고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는(그러면서도 충분히 독자 친화적인) 출판을 하는 사례도 이젠 그다지 특이한 경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전에 없던 출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전에 없던 형식과 내용의 책’들이 매일매일 독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동영상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1인 크리에이티브’의 영상이나 블로그(브런치)에 정기적으로 게시되는 콘텐츠들이 ‘출판’이 아니라고 할 근거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으며, 출판사에서도 영상과 웹툰과 콘텐츠, 전자책과 종이책 등의 구분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또 ‘오디오북’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출판계의 블루오션으로 등장하고, ‘독립출판’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이제 그다지 낯설거나 무모하거나 또 비주류 출판이 아니게 되었다. ‘독립출판’과 전통적인 출판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으며, ‘(텍스트를 포함한 다양한)콘텐츠’를 다양한 형식에 담아서 혹은 실어서 혹은 엮어서(묶어서) 판매하는 모든 행위가 출판의 영역에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 독립출판 혹은 독립서점은 단순히 전통적인 출판 혹은 유통망으로부터 자유롭다거나 차별화된다는 정도가 아니라, 저마다의 목소리와 문법으로 책을 호명(呼名)함으로써 책에 새로운 생명력과 의미를 부여하는 능동적인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데 있다. 그런 까닭에 독립출판(물)의 숫자(의 指數-독자와의 관계)만큼 책의 정의가 늘어나고 독립서점의 숫자(의 指數-독자와의 관계)만큼 책과 독자와의 관계망이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창출)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정통)종이책 - 비 전자책’의 약진에 따라 ‘전자책’ 시장은 한편으로는 성장의 흐름이,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판매 감소’ 현상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종이책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더 큰 반전(=大轉換)을 위한 숨고르기일 수도 있다. 


4.


출판 혹은 책을 둘러싼 환경과 출판+책 자체의 이러한 변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책(출판)의 변화가 사람의 변화’를 야기하고 가속화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몸의 (병적인) 이상 징후를 조기진단하려고 애쓰는 까닭은 그것으로 치유 가능성을 높여서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 수명을 연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책(출판)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과 우리 자신의 존재를 바꾸는 징후이므로 그 징후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출판(책)과 관련된 변화 양상은 그 자체로 ‘개벽의 징후’라기보다는 ‘개벽의 징후’를 지시하는 ‘지표’에 불과하다. 지진이 일어나려고 하면 곤충이나 파충류나 새떼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출판(책)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변화들은 더 크고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豫告)하고 예감(豫感)하고 예기(豫期)하는 징조들인 것이다. 책이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는 까닭은 수천 개(사람)의 촉수들이 매일매일 사회와 인간의 변화, 그리고 사람의 마음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그 흐름의 길목에 혹은 그 방향을 몇 걸음 앞서간 곳에 그에 감응하기를 갈구하며 내 놓은 것이 바로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 우리가 책 혹은 출판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들과 더욱 친해져야 하는 까닭은 이 시대가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적절한지, 그것이 가리키는 유의미한 실체(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따지기도 전에, 우리에게 변화가 실증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올해부터 거의 매년 서울대학교 5개 정도의 대학교가 문을 닫게 된다거나, 올해부터 사회로 진출하는 젊은이라면 평생 2, 30개의 직업을 가져야 할 것이 분명하다거나, 심지어 2030년에는 북극에 얼음이 하나도 없게 되는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는 것 등은 불과 몇 전까지만 해도 실감할 수 없었던 (그러나 관측되고 때때로 경고되기도 했던) 사회상이다. 지난 1백여 년 (식민지시기를 포함한) 한반도 내에서의 우리 사회가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 중심 사회로의 변화해 온 역사였다면, 현재 진행되는 우리 사회의 변화는 그 핵가족 중심 사회마저 구태(舊態)가 되고 ‘나 혼자 사는 집’(1인 가구)가 우리 삶의 대세가 되는 시대는 분명히 ‘근대’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그런 가운데서 지금도 매일 뉴스 지면이나 시중 여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역전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다른 한편으로 ‘창업(創業)’을 넘어 ‘창직(創職;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서 취업하거나 경영함)’이 새로운 시대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미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책(출판)의 개벽’은 바로 이런 점들을 반영하고 있다. 책의 중요한 주제가 그러한 대전환(大轉換)을 직접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러한 대전환(開闢)을 반영한 새로운 경향이 출판의 대세를 형성하기도 한다. 사회와 인간(심리와 욕망)의 변화에 그 어떤 것보다 민감한 것이 출판(책)의 세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때때로 서점에 나가 평대에 놓인 책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현재 사회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혹은 선구적으로 짚어낼 수 있다는 점이, 지금도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5. 


오늘 우리 인류는 ‘거의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도록 교육 받는 시대’에 도달했으며, 심지어 특별하게 읽고 쓰기 교육을 받지 않아도 ‘읽고 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론적으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문자 메시지 등을 포함해서) 누구나 자기 평생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읽고 쓰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가 매일 매일 쓰고 있다(=‘작가’로서)는 사실, 그리고 매일매일 읽고 있다(=‘독자’로서)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거의 누구나 읽고 쓸 수 있으며, 읽고 쓰고 있는’ 현 시대 환경이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키고 있는지 이를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망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조차 이 세상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두 부류로 나뉜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점점 더 ‘책을 읽는 사람’이 더  ‘더 잘 살고’ ‘더 오래 살’ 가능성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책(출판)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다름 아니라, 점점 개별화(고립화)되고 기술 종속적이 되어 가는 인간을 이 세계-내-존재, 세계-와 함께하는-존재(동귀일체)로 회복하려는 노력(내지 투쟁과정)일지도 모른다. 우주 탄생(빅뱅) 이래로 (우리가 오랫동안 ‘진화’라고 부르고 있는) ‘무수한 성숙의 과정’을 거쳐 도달한 인간의 현존의 의의는 바로 ‘그 과정 전체를 회고하고 감상하고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지금-여기에서의 인간이 그러한 회고와 감상과 감사의 전 과정을 담아낸 것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책을 들여다보는 것은 저 하늘의 별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르지 않고, 정좌존심(靜坐存心)하여 무시(無始) 이전의 소식을 듣는 일과 다르지 않고,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도 다르지 않은 일이다. 그 다르지 않음을 전제로, 오늘도 개벽의 역동과 격랑을 일으키는 책(출판)의 내면과 외연을 돌아볼 일이다.     


(이 글을 읽고, 추가할 정보나 잘못된 정보를 알려 주시는 분 중 5명 이내에게 추후 출간된 책을 보내드립니다.-2020년 1월 27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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