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 청오 차상찬, [牛譜], [[개벽]] 제55호, 1925년 1월 1일 / 현대어 역-박길수
[역자 주 : 청오 차상찬(1887-1946)은 개벽사의 4대 '편집국장(이돈화-김기전-방정환-차상찬)으로, '개벽사'의 시작부터 최후까지를 함께한 유이(唯二, with 이정호)한 인물이다. 그는 사화(史話)와 고전(古典)은 물론, 풍자와 해학, 인물평은 물론 민속(民俗) 부문에도 탁월한 필력을 자랑했다. 이 글은 그의 '민속, 풍물 부문'의 잡학사전적 지식을 보여주는 글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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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우리 조선은 농업국인 동시에 천연의 풍토, 기후, 목초(牧草) 등이 다 축우(畜牛)에 적당[適宜]하여 예부터로 소의 산출(産出)이 매우 많고, 체격과 품질이 또한 양호하여 저 세계에서 명물로 회자(膾煮)하는 스페인[西班牙] 서서우(瑞西牛)를 크게[遙] 능가하고, 따라서 소에 관한 전설, 우리말[俚語], 동화(童話), 기타 여러 가지 언어(言語)가 매우 많다. 특히 금년은 소의 해[丑年]인 고로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소의 이야기를 잠깐 하여, 독자 일람에 제공하고자 한다.
1.
먼저 동물학상으로 말하면 소는 척추동물 중에 포유류요, 또 포유류 중에도 유제류(有蹄類: 말굽이 있는 동물)요 유제류 중에 우제류(偶蹄類: 발굽이 짝수인 동물)니 성질이 대개 온순하여 다른 동물을 박해하는 일이 적고, 전적으로 식물질(植物質)을 먹으며, 사지(四肢)는 길고 매 발끝에는 두 개의 발굽이 있고 발톱은 그 모양이 신[履]과 같아서 전적으로 발끝을 감싸안았다. 힘이 강대하고도 인내성이 많아서 경작(耕作)과 운반(運搬)에 적당[適宜]하다.
윗턱[上顎]에는 문치(門齒: 앞니)와 견치(犬齒: 송곳니)가 없고 양악(兩顎)의 구치(臼齒: 어금니)는 자못 발달되어 절구모양[臼狀]을 이루었다. 그 위(胃)는 다른 동물과 특히 달라[特異]서 4개의 주머니[囊]로 나뉘었으니, 최초에 씹어서[咀嚼] 삼킨[嚥下] 음식물[食物]은 제일 큰[極大] 제1주머니[第一囊, 瘤胃)에 저장되었다가, 그 근육(筋肉) 작용으로 조금씩[一部] 제2주머니[第二囊, 蜂巢胃)으로 들어가고, 이곳에서 다시 식도(食道)로 역류[逆上]하여 재차 입속[口腔]으로 나가서 충분히[十分] 정밀하게 씹어진[精嚼] 후 침[唾液]과 섞여서[和] 다시 식도를 통과하여 곧바로 제3주머니[第三囊, 重辦胃]에 들어갔다가 다시 제4주머니(第四囊, 皺胃)로 옮겨가서[移入] 완전히 소화되나니, 이러한 작용을 반추작용(反蒭作用)이라 하고, 또 이 작용을 하는 동물을 반추류(反蒭類)라 한다. 이 반추류는 일반적으로 겁나성(怯懦性: 쉽게 무서워함)이 있고 초식(草食)만 하는 고로 적(敵)이 없는 사이에 다량의 음식물을 취할 필요가 있는 까닭에 조화옹(造化翁)이 이와 같이 복잡한 위를 가지게 한 것 같다.
이마[額]에는 마주보는[一對] 뿔[角]이 있으니 뿔의 중심은 전두골(前頭骨)의 일부 골질로 이루어지고 겉면[外面]은 피부의 각질변형물(角質變形物)로 감싸져 있다. 소는 역시 천연 혹은 인공의 변화를 따라서 색채, 형체(形軆)가 각각 다르고, 육고기[肉], 우유[乳]를 식용(食用)에 제공하는 외에 뼈[骨]는 비료(肥料)에 사용[用]하고 거죽[皮]은 가죽[製革]에 제공하여 각종 공산품을 만들고 터럭[毛], 혈액, 배설물(排泄物)까지도 다 유용하니 실로 우리 인류에게 필요불가결한 동물이다.
2.
그 다음에 또 조선어(朝鮮語)로 상고하여 보자-.
첫째에 성적(性的)으로 구별하면 암컷소[牝牛, 빈우]를 ‘암소’라 하고 수컷소[牡牛, 모우]를 ‘황소’라 하며, 색태(色態)로 구별하면 누렁이, 검둥이, 바둑이, 칡소 등의 명칭이 있고, 송아지[犢]의 크기[大小]를 따라 송치(未生前), 젖먹이, 목매지(=목매아지: 아직 굴레를 씌우지 않고 목을 고삐로 맨 망아지), 어수럭이, 첫멍에 등의 칭호(稱號)가 있고, 암소[牝牛]가 몸집이 작은 것[軆矮者]을 댕갈이라 하고, 비대(肥大)하고 생산 못하는 것을 둘암소라 한다. 또 지방별로 말하면 경상도 산을 영(嶺)치, 강원도 산을 강(江)치, 평안도 산을 평(平)치, 황해도 산을 황(黃)치라 하되, 함(咸)치, 전(全)치, 충(忠)치, 경(京)치라는 말은 없다.
풍속(風俗)으로 보면 진주 등지에는 정월, 2월에 소싸움[鬪牛戱]이 있고, 함안(咸安), 영산(靈山) 등지에는 정월, 2월에 투우희[鬪牛戱]를 대행(代行)하며 또 정월 망일(望日)에 소를 타고 몰아서[驅馳] 경농(耕農)의 연습을 시험[試]하고, 입춘일(立春日)에는 외양간[牛廐]에 ‘牛耕百畝田(소가 백묘의 밭을 갈다)’, ‘牛如猛虎耕百畝(소가 맹호같이 백묘의 밭을 갈다)’, ‘濕濕其耳戢戢其角(그 귀를 촉촉하게 하고, 그 뿔을 온화하게 하라)’, ‘九十其犉(황소구십마리)’ [*주로 詩經에 나오는 시구들이다-역자주] 등의 문구(文句)를 붙여서 소의 복(福)을 빌었다(이 풍속은 조선 각지에 모두 있다-필자주). 강원도 지방에서는 밭을 갈 때에 “언여- 만라- 엇치- 돌거라” 하는 밭가는 노래[耕田謳]가 있고(사실은 노래가 아니나, 노래같이 부른다-필자주), 함흥 등지에는 멍에노래[駕牛歌]가 유행하고, 경북 특히 의성 부근 원우가(怨牛歌)가 있다(本誌 경북도호에 기재됨).
미신상으로 말하면 “꿈에 소를 보면 조상이 보인다.” 하고, 학질(瘧疾)에 걸린 아이를 소와 입술을 맞추게[合吻] 하면 즉시 낫는다 하며(남자아이는 암소, 여자 아이는 숫소), 외양간[牛廐]에도 신(神)이 있다 하여 떡[餠]을 만들면 갖다 놓고 신에게 공양[薦神]하며, 강원도 정선 등지에는 소귀신이라는 악귀(惡鬼)가 있어서 혼가(婚家)에 기피(忌避)하는 일이 있다.
황소가 소리 지르는 것을 ‘영각’한다 하고, 꼬리질 하는 것을 ‘껑거리샘’한다 하며 암소[牝牛]가 수태(受胎)하려고 수소[牡牛]를 부르는[戀呼]하는 것을 ‘암내 낸다’ 한다. 또 소에게 입히는 옷[牛衣]을 덕석이라 하고, 소의 사용기구(使用器具)에는 지름아[鞍], 멍에, 껑거리, 북두, 바, 그런구, 안채가낙, 달구지 등속이 있다. 그다음에 소에 관한 우리말[俚語]을 몇 가지 적으면 대략 아래와 같다.
소가 커도 왕 노릇은 못한다.
밥 먹은 즉시 자리에 누우면[食後卽臥] 죽어서 소가 된다[死後成牛].
소의 새끼는 두메로 보내고 사람의 새끼는 들로 보낸다.
쇠똥은 이밥(쌀밥)이다(用於肥料栽稻故云).
소 갈 데, 말[言] 갈 데, 다 간다(言奔*).
젖먹이 송아지는 삼부자(三父子)도 잘 못 끈다.
5, 6월 쇠불알 같다(形言性之柔怠者也).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이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나중[야종]에 난 쇠뿔이 우뚝하다.
말은 언(凍) 송아지 똥 싸듯 한다.
쇠귀에 바람 경(經) 읽는다.
소 잃어버리고 외양간 고친다.
얼음에 자빠진 쇠눈 같다(홀꺼백이 눈을 가리킴).
소뿔은 단결에 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소 나갈 곳이 있다.
또 고집이 심한 사람들 쇠고집이라 하고, 모양[貌形]이 험악한 자를 ‘소도적놈’이라 하며, 돈[金錢]에 인색한 사람을 쇠귀신 같다 한다. 옛날에 무관(武官)을 쇠뿔휘기(用弓故云)라 칭하였고, 최근[近日]에는 신여성[新女子]의 트레머리를 쇠똥머리라 하며, 납작 모자를 쇠똥모자라 하고, 곰보를 형언(形言)하여 우박 맞은 쇠똥 같다고 한다. 어른, 아이 머리에 낀 때(垢)를 쇠다댕이라 하고, 또 앞이마의 머리 올라간 것을 쇠헐치기라 한다.
그리고 마마 주사 놓는[施痘] 것을 우두(牛痘)놓는다 하며, 소의 장질부사(腸窒扶斯)를 우역(牛疫)이라 하고, 소목장[牧牛場]에 나는 버섯을 쇠똥버섯이라 하며(食用), 갑자기 오는 비[蹂雨]를 소나기라 하고, 짧은 잠뱅이를 쇠코잠뱅이라 한다(犢鼻褌).
그다음에 또 우(牛) 자(字) 가진 물건 이름[物名]을 들어 말하자면 별[星]에는 견우성(牽牛星), 우숙성(牛宿星)이 있고, 약에는 우황(牛黃), 우슬(牛膝)이 있고, 동물에는 천우(天牛; 장수하늘소), 수우(水牛: 물소), 우미어(牛尾魚), 우승(牛蠅: 쇠파리), 와우(蝸牛: 달팡이), 우맹(牛蝱: 둥애) 등이 있으며, 식물로는 우엉(牛蒡), 우두숭(牛肚菘: 천엽?), 우현(牛莧: 쇠비름) 우견화(牽牛花=朝顔花 別名), 우란초(牛欄草-木名), 우두전단(牛頭旃檀=西域 樹名 見觀佛三眛海經) 등이 있다.
또 땅이름[地名], 산이름[山名]으로는 우이동(牛耳洞, 在高陽郡樓花勝地), 와우산(臥牛山, 在高陽西江), 우각동(牛角洞, 仁川), 우포(牛浦, 在坡州) 우각산(牛角山, 在江原道 洪川 鑛産名地) 우두(牛頭, 春川), 우경(牛井, 在平壤府東), 우산(牛山, 在黃海道 信川郡東有大小南山), 우산포(牛山浦, 同上), 우이산(牛耳山, 在海州郡北), 우피포(牛皮浦, 在白川郡南), 우평(牛坪, 在唐津), 우산(牛山, 在江西), 차우도(車牛島, 在鐵山), 우이곶(牛耳串, 在宣川), 우통지(牛筒池, 在郭山郡東), 우장산(牛場山, 在孟山郡東), 우령(牛嶺, 在楚山郡南), 우장천(牛場川, 同上), 우실포(牛室浦, 在全羅道金鰲島), 우도(牛島, 在濟州島 附近), 유우산(流牛山, 在驪州郡東) 등이 가장 두드러진다. 또 경북 선산(善山)에는 의우총(義牛塚)이 있고 춘천에는 우두사(牛頭寺)가 있다(今廢).
3.
그리고 소에 관한 옛 이야기로 말하면 이태조(李太祖)는 함흥에서 소싸움[牛鬪]하는 것을 보고 맨손[徒手]로 갈라놓았다[挽解]는 말도 있고, 고려말[麗末]에 이행(李行)은 항상 소를 타고 다니며, 자호(自號)를 기우자(騎牛子)라 하고, 또 맹사성(孟思誠)도 항상 소를 잘 타서 ‘맹고불(孟古佛)이 소’라는 말이 있고, 정다산(丁茶山)은 기우(騎牛)의 삼락(三樂)이 있다 하였다(性鈍不驚能行泥濘遲步好觀山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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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父子)가 쇠풀[꼴]을 비러 갔는데 아비는 꼴짐을 지고 앉아서 가고, 아들은 송아지를 끌고 뒤로 갔다. 속담(俗談)에 묵매지 송아지는 삼부자(三父子)가 끌어도 잘 안 간다고, 송아지가 자꾸 가지를 않고 강변(江邊)으로만 가니까 그 아들은 송아지 고삐를 붙잡고 “아버지 같이 가요, 아버지 같이 가요!” 하되 그 아비는 아무 대답도 없고 송아지만 대신으로 맹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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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머슴[傭人]으로 있는 농부가 밭을 갈다가 주인집 서당(書堂)에를 가본즉 서생(書生)이 앉아서 <대학(大學)>을 읽는데 퍽 한가하게 보였다. 농부가 하는 말이 “졔기- 서생의 팔자만 같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하였더니 서생이 그 말을 듣고 농부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나는 밭을 갈 터이니 그대가 <대학(大學)>을 나와 같이 읽으라” 하니, 농부가 좋다구나! 하고 서당에 들어와서 평생에 꿇어 보지 못하던 무릎을 잔뜩 꿇고 앉아서 서생이 배운 글만큼 몇 줄을 배우려고 하니, 원래 초학(初學)이라 아침부터 저녁때가지 암만 배워도 한 줄도 알 수 없고 무릎만 깨지게 아팠다. 농부는 할 수 없이 못 읽겠다고 자복(自服)하고는 그 뒤에 밭을 갈다가 소가 말을 잘 아니 들으면 “이놈의 소, 대학을 읽힐까!”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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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를 훔쳐 달아났다는 혐의로 잡혀들어갔는데, 그 처가 군수에게 변명하는 소장을 지어 올리되, 첩이 직녀가 아니니, 낭군이 어찌 견우[牽牛-소를 끌고간 사람-역자주]이겠습니까, 하였더니, 군수가 크게 상을 내리고 즉시 석방[白放]하였다. 참 기묘절묘(奇妙絶妙).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