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시민백서 / 코로나19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한국은 재난과 국난을 겪을 때마다 오히려 성숙해지고 단단해져 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이런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인문적 ‘눈’을 갖지 못했다. 대부분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 인문학의 허점이 존재한다. 기술은 독립해도 인문학은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 기획자의 말 중에서
위 인용문은 "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기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 준다. 이 책을 기획한 그룹 (모시는사람들 철학스튜디오)는 코로나19 이전부터, 한국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설명할 수 있으며, 특히 한국의 역사와 사회를 "다시개벽-개벽파"의 눈으로 읽고, 말하고, 써야 한다는 생각을 키워 왔다. 그것이 일련의 성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보는 눈을 단련하고, 또 그에 대한 주변의 지지와 지원, 그리고 참여의사를 확인하고, 우리는 좀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천착하기로 했다. 그 결실로 기획된 것이 <개벽의 징후 2020>이다. 이 책은 앞으로 매년 1회 발간으로 시리즈를 구성하게 된다. '개벽'이라는 말을 둘러싸고 사연이 아주 많고, '개벽'이라는 말을 우회해서 갈 것인가, 안고서 정면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두고 여전히 논란 중이다.
"개벽"이라는 말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처한 현실 - 벽안시되고, 이단시되고, 소외되고, 잊혀짐 - 은 한국 근현대사가 걸어온 족적(우리 것이 천대 받고, 우리의 마음과 기운이 소외되고 억압 착취 받아왔던)과도 관련이 된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든 "개벽"이라는 말을 모시고 또 살리는 일은 단지 하나의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뒤틀린 한국 근현대사(그리고 그 속에 반영되어 있는 세계 근현대사 = 자본주의/물질주의의 세계화)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을 내자마자 (원고 수집 때문에 예정했던 기일을 2달 정도 초과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흐름을 눈으로 쫓으며 우리는 가슴을 치고(수많은 사망자와 고난의 행군에 내몰린 세계 인민들을 보며), 무릎을 쳤다(우리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그러한 사실들을 확인하는 동안 이미 이 책 <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의 기획이 끝나 있었다. 그리고는 원고청탁 - 수집 - 편집 - 발간... 한 달 사이에 숨가쁜 일정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세계는 시나브로 코로나19 팬데믹의 정점을 찾아 헤매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미 초반기에 우리는 '한국이 이번 사태에서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기준으로 사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실은 마치 우리 생각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흘러가고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 모든 나라가 대한민국을 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핵심은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언제나 “따라가는 학습자이던 데서 벗어나 선도하는 창조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은 역사상 흔한 일이 아니다. 아니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그 이전에도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 가운데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한 나라”라는 이력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세계 속에 뚜렷한 각인을 남기지는 못하였다.
현재(2020년 4월 말)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세계 전체로 보아서는 아직도 정점에 도달하지도 못한 상황이어서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보여준 모습은 앞으로 더욱 더 전 세계, 인류가 이번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게다가, 이번 팬데믹은 B.C(Before Corona) - A.C.(After Corona)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지난 3, 400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자본의 세계화’라는 흐름이 ‘생명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인류 시대 단계로 진입하는 대전환을 가져오는 일이며, 그 일을 선도하는 국가가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하고 따져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따라가는 학습자(Learner)에서 선도하는 창조자(Creator)로!!"라는 말은 단지 코로나19에 따른 K-방역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세계가 직면한 문명사적인 대전환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문제어이다. 이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에 대하여, 우리들의 우리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 사람과 이 세계에 대하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