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과 공동체문화
[필자 주] 이 글은 본래 '동학과 공동체 문화'라는 제목으로 별도(<개벽신문>)로 발표했던 글입니다. '동학, 더불어 삶을 가르치다'라는 글과 중복되는 부분이 일부 있지만, 이어서 게재하고, 다음에 한 편의 글로 묶어 낼 때 정리하려고 합니다.
공동체란 ‘더불어 사는 것 또는 그 무리’라 할 수 있다. 그냥 모여 사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며 ‘잘’사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이 공동체 속에 태어나는가, 아니면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는가의 문제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거칠게 결론지어 말하자면, 공동체 속에서 태어난 인간이 그 공동체성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공동체로부터의 자유(탈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가족(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양육을 받으며 자랐으나, 결혼할 때쯤 ‘자유연애’를 통해, ‘결혼은 내가 하는 것’임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흘러온 인간의 의식이 이제는 결혼마저도 계약결혼이나 계약동거와 같은 형태로 나아가며 끊임없이 ‘개인’이 ‘불가침의 성역’임을 확인하고 확장하고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실현하는 바람직한 방향인가? 설령 각자가 그것(자유롭게 사는 것)을 원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실로 인생(인류와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길인가.
동학의 공동체 이념과 실천을 살펴보는 기본 출발점은 거기에 있다.
초기 동학 공동체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객관적’인 문서가 있다.
수운 선생이 조선 조정에서 보낸 선전관 정운구에게 체포되기 직전에 경상도 일대 유림들 사이에서 유포된 통문(通文)이다.
경북 상주에 있는 우산서원(愚南書院)은 동학을 ‘서학(西學)이 개두환명(改頭幻名)한 것’이라 하여 배척하는 통문을, 같은 상주에 있는 상급 서원인 도남서원(道南書院)에 보냈다. 도남서원은 3개월 동안 심사숙고하여 그해 12월 초에 영남 일대 전체 서원에 통문을 보냈다. 그 내용은 유림들이 합심하여 사도(邪道)인 동학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상으로 볼 때, ‘동학 배척 통문’이 당시 조정에서 수운 선생을 체포하여 사형으로 다스리게 된 중요한 동인(動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통문 내용을 통해 초기 동학 도인들이 어떠한 무리였는지, 어떠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도남서원 통문 가운데 관련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①동학이란…그들이 이른바 송주(誦呪)하는 천주(天主)라는 것은 서양에 의부(依附)한 것이고 부적과 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황건적의 행위를 답습한 것이다.
②하나같이 귀천의 차등을 두지 않고 백정과 술장사들이 어울리며
③엷은 휘장을 치고 남녀가 뒤섞여서 홀어미 홀아비가 가까이하며
④재물이 있든 없든 서로 돕기를 좋아하니 가난한 자들이 기뻐한다.
⑤도당을 널리 거두어들이는 것을 제일의 공으로 삼아 한마을에 들어앉으면 온 마을 사람을 끌어들이려 힘을 다하며, 한 고을에 머물면 온 고을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힘을 다하니
⑥어찌 문벌 좋은 집안의 재주 있는 사람들이 점차 물들어갈 염려야 있겠냐마는 오히려 (그들이) 부족함을 좌교(左敎=西學; 인용자 주)의 윤리를 본떠서 자신의 필설을 더럽히며 밝은 도리를 논척할 수 있다.
⑦흡사 장각(張角)이 삼십육 방에 벌려 놓고 지휘하는 것 같으니 교(敎)의 주인으로 받드는 두목은 위엄이 대단하여 장차 지방관의 권한도 물리치고 마음대로 행하게 될 것이다.
⑧새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가 새로운 말이면 모두 잘 들으려 하며, 빨리 이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가 지름길로 모두 달려가려 한다.…무지한 천류(賤類)들이 많이 물들어 나무꾼과 초동(樵童)과 같은 더벅머리 아이들이 다투어 송주(誦呪)를 하는데 그들이 하는 말에는 원래와 조금도 헷갈림이 없으며, 근거가 비슷하여 난류(亂流)인지 진류(眞流)인지 견줄 방도가 없다.
⑨은밀히 서로 동학을 전수하여 깊은 산속 으슥한 곳에 근거지를 만들고 퍼져 물들게 되며, 고을과 마을의 중심에 한번 들어가면 장인과 장사치는 소업(所業)을 전폐하고 밭 가는 자도 또한 일하지 아니하니….” (번호는 인용자가 붙임)
①에서 ‘송주하는 천주’란 삼칠자 주문을 외는 것이니 주문 수련을 의미한다. ‘부적과 물’이라 함은 영부와 청수를 의미한다. 주문과 영부는 수운 선생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동학의 핵심 수행 절차와 도법이다.
②, ③, ④항은 일반 민중들 가운데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의 유형과 그 안에서의 행태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⑥항은 유림 가운데서 동학에 관심을 갖거나 입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음을 말해 준다. 동학에 대한 당시 보수 유림―경기와 전라도 지역의 서원과는 달리 경상도 지역의 유림들은 자신들이 공맹-정주의 성리학 전통의 고갱이를 쥐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의 편파적인 시각에 굴절된 점을 감안하여 읽어 낼 필요가 있다.
②항은 동학의 ‘평등’ 사상이 전개되는 정황을 엿볼 수 있다. ③은 훗날 ‘과부 재가 허용’이라는 구호로 귀결되는, 그리고 수운 선생이 두 여비(女婢)를 며느리와 수양딸로 맞아들이는 실천궁행의 확장 정황을 볼 수 있다. ④는 새로운 행태의 경제공동체 원리로서의 ‘유무상자(有無相資)’ 정신을 잘 보여준다. ⑤, ⑦, ⑨항은 동학이 어떻게 그들의 공동체를 확장하고 심화시켜 가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⑤항은 훗날 천도교에서 이상적인 마을공동체로 ‘궁을촌’을 만들어가는 원형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다음, '유무상자의 공동체'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