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과 공동체문화
유무상자(有無相資)라는 말은 동학이 지향한 공동체의 이념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용어이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도운다.”는 이 말은 유무상통(有無相通)이라고도 쓰인다.
박맹수 교수는 이 말이 단군의 신시(神市)와 ‘홍익인간’ 이래 ‘호혜경제체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서구적 근대화가 가져올 극단적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또는 개인주의를 낳게 조장하는―자본주의적인 경제 체제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계속해서 박맹수 교수는 수운에 의해 제창되고 그 시대에 이미 씨앗이 발아한 유무상자의 전통이 2대교주인 해월 최시형에 의해 더욱 구체적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사료를 통해 제시한다.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자료인 <해월문집> 속에서다.(박맹수, 『개벽의 꿈』, 모시는사람들 참조)
“무릇 우리 동학 사람들은 같은 연원(최제우)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니 마땅히 형제와 같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형은 굶고 있는데 동생만 배부를 수 있을 것이며, 동생은 따뜻하면서 형은 추위에 떨어서야 되겠는가. (중략) 크게 바라건대 모든 군자들은 자신이 소속된 접(接=동학을 신앙하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공동체 단위) 안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들끼리 각각 서로 힘을 합해서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 해를 어떻게 보낼까 걱정하는 마음을 면하도록 하시오(1888).”
“같은 소리는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는 것이 예로부터의 이치이니 지금 우리 동학에 이르러서는 그 이치가 더욱 크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 환난을 서로 구제하고 빈궁을 서로 보살피는 것 또한 선현들의 향약에 들어 있는 것인데 우리 동학에 이르러서는 그 정의가 더욱 막중하다고 하겠다. 그러니 우리 동학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약속을 지켜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서 규약에 어김이 없도록 하시오(1892).”
동학의 유무상자는 향약의 환난상휼의 전통을 계승하되 이를 한층 강화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대안이 다양하게 모색되는 가운데 ‘나눔경제’ ‘돌봄 경제’ 등의 원형으로 깊이 논구하고 현대적 실천 모델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동학은 그 자체로서 ‘군자공동체’를 지향한다. ‘군자’란 동학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일컫는 말이다. ‘군자’라는 말은 본래 ‘유학’의 이상적 인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수운 선생의 글에서도 이는 분명하다.
“오제(五帝) 후부터 성인(聖人)이 나시어 일월성신과 천지도수를 글로 적어 내어 천도의 떳떳함을 정하여 일동일정과 일성일패를 천명에 부쳤으니, 이는 천명을 공경하고 천리를 따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사람은 군자가 되고 학은 도덕을 이루었으니, 도는 천도요 덕은 천덕이라. 그 도를 밝히고 그 덕을 닦음으로 군자가 되어 지극한 성인에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부러워 감탄하지 않으리오(동경대전, 논학문).”
이와 관련하여 수운 선생은 당신을 포함한 동학의 학문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우리 도유(道儒)’라고 불렀다. 수운 선생은 제자들이 진중하게 정성을 다하여 공부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도통을 바라거나 동학 세상을 기대하는 것을 경계하며 ‘도유들이 마음이 급한 것을 탄식하다(<嘆 道儒心急>)’이라는 글을 지었다.
또한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 시대에 각종 통유문이나 조정에 보내는 의송 등에도 스스로를 ‘도유’라고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보다 김구 선생이 애기접주로서 당시 보은에 계시던 해월 선생을 뵈러 왔을 때, 사방에서 해월 선생에게 ‘도유(道儒)들이 관에 재산을 빼앗기고 목숨을 잃는 사례가 많음’을 호소하는 글들이 답지하고 있음을 증언하였다(백범 일지).
이를 두고 동학을 연구하는 현대 학자들 중에 동학은 유학(儒學, 性理學) 아류이거나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상이라고 단정하는 경우도 있으나 여기서 도유란 ‘도를 닦는 선비’라는 일반 명사로 보는 것이 옳다.
유학 혹은 그 유학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 오랫동안 그러한 군자(성인)가 되는 것은 타고난 기질에 의해 선천적으로 결정되거나 매어 어려운 공부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로 본 반면에 동학에서는 이를 비교적 단순한(?) 공부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고 선언한 데서 동학의 특질이 드러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정심수도(正心修道) 하여스라. 시킨 대로 시행해서 차차차차 가르치면 무궁조화(無窮造化) 다 던지고 포덕천하 할 것이니 차제도법(次第道法) 그뿐일세. 법을 정코 글을 지어 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君子)되어 무위이화(無爲而化) 될 것이니 지상신선(地上神仙) 네 아니냐(용담유사, 교훈가).”
“열 세자(=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극하면 만권시서(萬卷詩書) 무엇하며 심학(心學)이라 하였으니 불망기의(不忘其意) 하여시라. 현인군자(賢人君子) 될 것이니 도성입덕(道成立德) 못 미칠까 이같이 쉬운 도를 자포자기 하단 말가(용담유사, 교훈가).”
(다음 "4. 동귀일체의 공동체"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