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더불어 삶을 가르치다(9)

동학과 공동체문화

by 소걸음



4. 동귀일체의 공동체


동학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이러한 동학의 군자(=道儒)들이 동귀일체(同歸一體) 하는 공동체이다.


“시운時運을 의논해도 일성일쇠一盛一衰 아닐런가. 쇠운이 지극 하면 성운盛運이 오지마는 현숙한 모든 군자 동귀일체同歸一體 하였던가(용담유사, 권학가).”


동귀일체란 각자위심(各自爲心)하지 않는 것이다. 각자위심은 수운 최제우 선생이 동학을 창도할 당시의 문제의식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단어이다. 이 세상이 이처럼 혼탁해지고 살기 어려워진 까닭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각자위심이라는 단어이다.


수운 선생이 이 세상을 구할 도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마지막으로 경주 용담으로 귀환하여 ‘불출산외(不出山外; 세상을 건질 도를 구하기 전에는 구미산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리라.)’를 맹세하던 순간 바라본 모습이 바로 각자위심의 세상이었다.


“또 이 근래에 오면서 온 세상 사람이 각자위심하여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천명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항상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동경대전, 포덕문).”


각자위심은 천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천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또한 각자위심은 자시지벽(自是之癖; 병적으로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태도)과도 통한다.


“각자위심 하는 말이 내 옳고 네 그르지. 시비분분(是非紛紛) 하는 말이 일일시시(日日時時) 그뿐일네(용담유사, 몽중노소문답가).”


현대사회의 탈(脫)공동체, 반(反)공동체의 실상은 바로 이 각자위심의 과정이며, 그 결과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개성과 인격의 존중’ ‘사생활 보호’와 같은 흐름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자연한 과정이 아니다. ‘개인주의화(이것 자체는 惡이 아니다)’는 ‘나의 선택이자 권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한 파편화 전략(‘개별 노동력’과 ‘소비자’로 존재하도록 하기 위한)의 산물이다.


동어반복일 수 있으나, 각자위심은 이 우주의 본성(本性)과 본상(本相)이 ‘동귀일체―사람을 비롯한 만물은 본래 하나인 한울로부터 화생한 동포(同胞)―’임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학에 입문하여 처음으로 하는 의식이 바로 ‘마음에 잊고 잃음이 많았음을 참회하는 것(동경대전, 축문(祝文))’이다.


동귀일체는 ‘전체주의’를 향한 일치가 아니라 ‘나’는 본래 영원한 존재로서 이 세상에 인물(人物)로 화생하여 살다가 다시 영원한 존재로 귀환함을 알고 그러한 이치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수운은 그러한 삶을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삶이라 했다. 동귀일체하는 것은 이 세상 만물을 내 형제자매처럼 우애하고 부모님처럼 봉양하고, 자식처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내 가족만이 아니라, 우리 지역만이 아니라, 내 나라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 만물에 대하여 그렇게 우애하고 봉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사람은 경천(敬天)함으로써 자기의 영생을 알게 될 것이요, 경천함으로써 인오동포(人吾同胞) 물오동포(物吾同胞)의 전적이체(全的理諦)를 깨달을 것이요, 경천함으로써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마음, 세상을 위하여 의무를 다할 마음이 생길 수 있나니, 그러므로 경천은 모든 진리의 중추(中樞)를 파지(把持)함이니라(해월신사법설, 삼경).”


(다음, "5. 지상신선의 공동체, 지상천국"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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