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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더불어 삶을 가르치다(10.끝)

동학과 공동체문화

by 소걸음

5. 지상신선의 공동체 지상천국


일찍이 수운 최제우 선생은 동학을 창도하는 과정에서, 서양에서 들어와 조선 땅에 ‘새로운’ 도학으로 먼저 도를 펴고 있던 서학이 현세를 벗어난 별세계(上天=天上)를 상정하여 신앙하고 있음을 비판한 바 있다.


“(서학하는 사람들이) 무단히 한울님께 주소(밤낮)간 비는 말이 삼십삼천(三十三天) 옥경대(玉京臺)에 나 죽거든 가게 하소. 우습다 저 사람은 저의 부모 죽은 후에 신(神)도 없다 이름 하고 제사조차 안 지내며 오륜에 벗어나서 유원속사(唯願速死) 무삼 일고. 부모 없는 혼령 혼백 저는 어찌 유독 있어 상천(上天)하고 무엇 하고 어린 소리 말았어라.”


그 대안으로서 수운이 제시하는 실질적인 이상향은 지상에서 신선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봄 오는 소식을 응당히 알 수 있나니 지상신선의 소식이 가까와 오네(동경대전, 결).”


여기서 신선은 한울님의 선약(仙藥)을 복용한 사람으로서, 동학의 이상적 인간형인 군자(君子)의 다른 모습이다. 한울님의 선약은 동학의 주문 수련의 결실로 얻게 되는 영부(靈符)의 또 다른 이름이며, 그것은 ‘정성’과 ‘공경’을 매개로 해서 현실화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선약인 줄 알았더니 이것을 병에 써 봄에 이르른즉 혹 낫기도 하고 낫지 않기도 하므로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그러한 이유를 살펴본즉 정성 드리고 또 정성을 드리어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매번 들어맞고 도덕을 순종치 않는 사람은 하나도 효험이 없었으니 이것은 받는 사람의 정성과 공경이 아니겠는가(동경대전, 포덕문).”


‘지상천국’이라는 말은 이러한 수운 선생의 기본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것을 이상적인 지상신선(군자) 공동체 국가로 상정한 것이다. 이것은 주로 1920년대에 중엽에 처음 등장(신인간 7호, 1926.11)하는데, 주로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천도교의 전위운동(청년당, 청우당)에서 천도교의 핵심적인 목표로 설정되어 제시된다.


“지상천국―수운 선생의 주의는 그 목적이 지상천국의 건설에 있으니, 인류가 가장 동경하는 이상향을 이 지상에 건설하여 모든 민중에게 평등의 행복을 도모케 함을 이름이다. 수운 선생은 말씀하되 ‘봄 오는 소식을 정신 차려 들어라. 지상천국(地上天國; 수운이 지은 경전 원문에는 ‘地上神仙’이라고 되어 있음=인용자 주)이 가까워 옴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였으니, 그러므로 이 주의에 귀의하는 자는 지상천국의 주인이 될 수 있으리라(청년당 선전 전단, 1929년, <천도교청년당소사> 所在).”


“인생(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에 나왔을까 하는 것을 천도교에 물어보면 천도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첫째는 대생명의 파지운동입니다. 이 말씀은 최 수운 선생의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니냐.’ 하는 말씀의 뜻을 이름이니….

둘째는 인간격을 파지하는 운동입니다. 천도교는 이 우주를 일원적 계통으로 보아 가지고 인생을 우주의 가장 높은 단계에 있다고 보며….

셋째는 제도(濟度=구제, 구원)운동입니다. 위에 말한 생명 연장의 맛이라든지 새 인생의 맛이라는 것은 개인 생활에 있는 문제어니와 이 제도운동의 행위는 참된 사람이 참된 행위를 하기 위하여 ‘오심즉여심’의 대생명의 통제 아래서 동귀일체가 되어가지고 한가지로 좋은 일을 하고(1행 略=원본) 한가지로 좋은 이름과 좋은 사업을 자손만대에 유전(遺傳)케 하자는 운동입니다. 이것이 천도교에서 항상 말하는 지상천국 건설 운동입니다(청년당의 선전 전단, 1933년, <천도교청년당소사> 所在).


오늘날, 천도교의 기본 목표와 과정은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 지상천국건설"로 요약된다. 천도교인들은 밥먹을 때나 의식을 할 때 하는 기본 심고문에 대체로 위 네 마디 성어가 들어간다.

여기서 지상천국은 '천상천국'과는 달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며 좋은 일을 하고, 당대뿐만이 아니라, 자손만대에 이르도록 그 사업의 성과와 성질('좋은')이 이어지는 세상이다.

'좋음'의 내용은 그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으나, 일관된 원칙은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과 마음이 '사심'으로부터가 아니라 '공심(=한울님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동학'은 이처럼 '더불어 삶'을 말하고, 가르치고, 실천하는 종교요, 사상이요 철학이요, 정치학이다.


('동학, 더불어 삶을 가르치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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