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0008 : <한국의 종교학: 종교, 종교들, 종교문화> 중에서
(서양 전통의) 종교(宗敎, religion)는
인간의 삶의 영역 전반에 걸쳐 스며들어 있는 (동양 전통의) 교(敎)와는 달리,
유별나고 독특한 성격을 띠면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영역을 가리킨다.
'종교'는 비(非)종교와는 다르며 달라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종교와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 있지만, 종교가 아닌 것이 있다.
또한 종교로 있다가도 종교가 아닌 것으로 되기도 한다.
근대적인 국가권력과는 이중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불간섭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내세우지만,
그 권력을 인정하고 (국가권력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용납할 수 없는 집단으로 간주되는 순간,
‘종교의 취소’가 이루어지고 배제(排除)의 낙인이 찍힌다.
근대 한국에서 국가권력은 세속 합리성을 강제할 수 있는 대표적 기관이다.
종교는 그가 대표하는 세속 합리성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거기에서 비껴 서 있는 듯,
혹은 한쪽 발은 거기에 담그고 있지 않은 듯한 포즈로 있다.
틀림없이 체제의 소속 분자이지만,
노골적인 충성이 아니라 무관한 듯, 무심한 듯 제스처를 취하며 얽혀 있다.
그 포즈 취하기에 따라 종교의 지순과 불순(不純)이 나누어진다.
이런 구분 아래, 종교는 다른 인간 활동 분야,
즉 사회, 문화, 경제, 정치, 예술, 역사의 영역과는 다른 구획 안에 있다.
동시에 그런 영역과 구분되면서도 연관을 맺는다.
‘종교와 무엇’의 관계이다.
교의 전통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모습이다.
그 독자적 영역을 지키기 위해 종교는 스스로 패러독스적인 위치를 고수한다.
한편으로 세속 합리성을 따르고, 다른 한편으로 벗어나 있다는 포즈를 취한다.
세속 영역과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뗄 수 없이 밀착되어 있다.
처음에 종교는 자신 안에 권력이 지목하는 사이비 종교가 거(居)하고 있음을 알고
정화(淨化) 작업을 하지만, 기득권을 얻게 되면 그런 요소는 오히려 권력을 초월하여
권력을 밑으로 보는 탈속(脫俗)의 자세로 역전된다.
세속의 저속함을 눈 아래로 보는 종교의 신성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 <한국의 종교학: 종교 종교들 종교문화> 24-25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