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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30. 2016

다시 읽는 신인철학(36)

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다시 읽기

그는(=신다윈파인 '와이스만'은 노화 및 죽음에 관한 과학적 규명을 위하여; 편역자 주) 먼저 모든 생물의 생식법(生殖法)을 조사해 보았다. 그래서 생물의 생식법을 크게 "유성(有性)" - "무성(無性)"의 두 가지로 나누었다. 


무성생식은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생물에서 행하는 것으로 헤겔의 분류법에 의하면 분열(分裂), 출아(出芽), 포자(胞子)의 세 방식이 있다. 그러나 이 삼자 중에 분열생식만이 직접적 주요점이요 다른 두 가지는 다만 그의 변태적(變態的) 작용에 불과한 것이라 하였다.

 

분열생식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심히 단순한 생식 방법으로서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물이 어떤 정도까지 성장하고 보면 자연이 그 신체의 중간이 꺾어지면서 동일한 2개체로 분열이 된다. 그리하여 그 분열한 2개체가 성장한즉 또한 각각 2개체로 분열이 된다. 이같이 영구히 분열하면서 그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분열법은 실로 단순한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고등동물이라 할지라도 그 신체를 조성한 세포는 역시 분열법에 의하여 증대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와이스만이 착안한 점은 이러한 분열법의 생식을 가진 생물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연의 죽음은 있을지라도 생물이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반드시 피치 못하게 죽는다는 운명은 없다는 것이다.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는 명제는 이런 생물에게는 무의의한 원칙이 되고 만다 하였다. 그는 분열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우리는 이미 단세포생물에는 죽음이 없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생물에게는 죽음이 없다. 죽음과 같은 종점이 없다. 그 신 개체의 발생은 구 개체의 죽음과 관련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개체가 분열하여 두 개체가 되는 것인즉 이 두 개체는 전혀 동일한 것이요, 그 사이에 노유대소(老幼大小)의 차이가 없다. 그래서 무수한 개체가 출현한다. 그러나 그 개체는 어느 것이든지 그 종속과 동연령(同年齡)이므로 무수히 분열하여 무한의 생을 계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그런데 사람과 같은 다세포의 생물이 되고 본즉 여기서 그 개체의 불사성(不死性)은 전혀 소멸되고 만다. 와이스만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다세포의 생물에서도 그 생식은 세포분열에 의하여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각 세포에는 그 생물 개체의 전신을 생식하는 힘이 없다. 다세포생물의 세포도 분화하여 생식세포(卵 혹은 情蟲) 및 신체세포의두 부류로 된다. 그리하여 단세포생물의 불사성은 생식세포에만 전하고 신체세포는 사멸의 운명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그런데 다세포생물의 전신의 대부분은 이 신체세포로부터 성립되었으므로 개체 그 자체는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라는 것이 이 세상에 있게 된 것은 창세기의 이른바 원죄의 결과가 아니요, 남녀 양성(兩性)이 분열된 음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물론 불사(不死)는 여전히 존재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의식있는 개체의 불사가 아니오 그 개체의 생식을 맡고 있는 단세포의 불사라는 것이다. 요컨대 와이스만의 불사설은 고등생물의 전신은 신체세포 생식세포 두 부류로 되어 있는바 후자, 즉 생식세포의 배종원형질(胚種原形質)만이 자자손손 유전되어 영속생존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먼저 다윈은 "전신생식"이라는 유전론을 제창하였는데 생물의 신체세포는 어느 것이든지 부세포(副細胞=毛芽)를 파생할 수 있고 이러한 부세포는 어떤 미묘한 작용에 의하여 그 생물의 생식기 내에 집중하여 포축(包蓄)되게 되었는데, 유전은 실로 이 포축되었던 부세포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라 하였다. 


이 설로 말하면 생물의 신체에 생하는 변화는 어느 것이든지 유전된다는 말인즉 와이스만의 일부 유전설과는 상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상은 과학적 생사설의 일부를 개략적으로 말[槪言]한데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과학적 생사설은 그들의 특유한 기계학적 해부 방법에 의한 생사설로서 인생의 전적 생명이나 본체적 관계와 같은 이론은 미처 말하지 못할 것은 사실이며, 또는 기계적 생사설이니만큼 우리에게 어떤 통일적 해답을 주지 못할 것도 사실이다. 다만 생사문제가 과학에 있어서는 어떠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참고하기 위하여 일언한 것이다.


(다음, '인내천의 생사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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