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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과 순환 그리고 개벽(2)

동학에서 찾아보는 전환의 의미

by 소걸음

2. 개벽은 혁명이 아닌 순환지리


이때 개벽은 과거의 것을 전적으로 파괴하고 처음부터 새것을 만들어가는 ‘혁명’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받은 것을 치유하는 것이며,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것이며,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이다.


“이 세상 운수는 천지가 개벽하던 처음의 큰 운수를 회복한 것이니 세계만물이 다시 포태(胞胎)의 수를 정치 않은 것이 없느니라. 경(經=동경대전 ‘嘆道儒心急’; 인용자 주)에 말씀하시기를 ‘산하의 큰 운수가 다 이 도에 돌아오니 그 근원이 가장 깊고 그 이치가 심히 멀도다.’ 하셨으니, 이것은 바로 개벽의 운이요 개벽의 이치이기 때문이니라. 새 한울·새 땅에 사람과 만물이 또한 새로워질 것이니라(「개벽운수」).”


이런 의미에서 개벽은 ‘순환(循環)’이라는 의미가 짙다.


“성한 것이 오래면 쇠하고 쇠한 것이 오래면 성하고, 밝은 것이 오래면 어둡고 어두운 것이 오래면 밝나니 성쇠명암은 천도의 운이요, 흥한 뒤에는 망하고 망한 뒤에는 흥하고, 길한 뒤에는 흉하고 흉한 뒤에는 길하나니 흥망길흉은 인도의 운이니라(해월신사법설,「개벽운수」).”


이는 해월 선생의 창안이 아니라 일찍이 수운 선생이 제시한 동학의 '순환사관'의 재현이다.


수운선생의 본격적인 첫 저술(경전)인 「포덕문」은 '순환'이 천도의 본질이며 상연한 이치임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 옛적부터 봄과 가을이 갈아들고 사시가 성하고 쇠함이 옮기지도 아니하고 바뀌지도 아니하니 이 또한 한울님 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뚜렷한 것이로되,"(동경대전, 「포덕문」)


"무릇 천도란 것은 형상이 없는 것 같으나 자취가 있고, 지리란 것은 넓은 것 같으나 방위가 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한울에는 구성이 있어 땅의 구주와 응하였고 땅에는 팔방이 있어 팔괘와 응하였으니, 차고 비고 서로 갈아드는 수는 있으나 동하고 정하고 변하고 바뀌는 이치는 없느니라. 음과 양이 서로 고루어 비록 백천만물이 그 속에서 화해 나지마는 오직 사람이 가장 신령한 것이니라."(동경대전, 「포덕문」)


"다시 앉아 생각하니 우리 집안 여경(餘慶)인가 순환지리(循環之理) 회복(回復)인가 어찌 이리 망극罔極한고 전만고(前萬古) 후만고(後萬古)를 역력히 생각해도 글도 없고 말도 없네."(용담유사, 「교훈가」


순환은 사실 생명의 본성이기도 하다. 들숨과 날숨이 그러하며 “(생로병사-)생로병사(-생로병사)”의 무한 연쇄가 그러하듯, 한 지점에서 끝을 향하여 나아가는 ‘단선적’인 세계는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일 뿐, 존재란 무릇 순환함으로써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순환은 불교적 ‘연기(緣起)’와도 맞닿아 있으며, 진리의 진상(眞相)을 표현하는 말이다.


“부(富)하고 귀(貴)한 사람 이전 시절 빈천이오, 빈(貧)하고 천(賤)한 사람 오는 시절 부귀로세. 천운(天運)이 순환(循環)하사 무왕불복(無往不復) 하시나니…(교훈가).”


여기서 수운은 현재의 부귀자의 몰락을 말하는 대신 현재의 빈천자가 부귀하게 될 것만을 말한다. 이는 동학의 개벽이 ‘혁명’을 넘어, ‘분노’를 넘어 있음을 보여준다. ‘무왕불복’의 이치란 순환의 다른 말이면서 동학의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일찍이 수운 선생이 동학을 창도한 소식을 들은 원처근처의 지식인(선비)들이 몰려들어 수운에게 ‘한울님이 강림하시어 새로운 도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수운은 “무왕불복지리-가고 다시 돌아오니 아니함이 없는 이치”를 받았다(「論學文」)고 대답하였다. 선비들이 다시 그 이름을 묻자 수운 선생은 “천도(天道)”라고 대답하였다.


훗날 해월 최시형 선생도 동학은 순환하는 천운을 타고난 가르침임을 재확인하였다.


“천운이 순환하여 오만년의 대도가 창명된지라. 세상 악마의 항복은 삼칠자의 신령한 주문을 믿는 데 있으려니와, 때를 따라 숨고 운을 응하여 나타나는 것은 이것이 대도의 활용이니라(해월신사법설,「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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