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에서 찾아보는 전환의 의미
어떠한 조건에서 순환은 일어나는가. 대기의 순환을 일으키는 것은 온도의 차이라면, 시운이 순환하게 하는 동력은 운수의 ‘지극’함이다.
“시운을 의논해도 일성일쇠(一盛一衰) 아닐런가. 쇠운이 지극(至極)하면 성운(盛運)이 오지마는 현숙한 모든 군자 동귀일체(同歸一體) 하였던가.(용담유사, 권학가)”
이를 동학 특유의 '괴질(怪疾)론'으로 보면 괴질이 온 세상에 가득 차[滿世]하는 상황이 와야 그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므로 우리나라는 악질이 세상에 가득 차서 백성들이 언제나 편안할 때가 없으니 이 또한 상해의 운수요, 서양은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천하가 다 멸망하면 또한 순망지탄이 없지 않을 것이라. 보국안민의 계책이 장차 어디서 나올 것인가.(故 我國惡疾滿世 民無四時之安 是亦傷害之數也 西洋戰勝功取 無事不成而 天下盡滅 亦不無脣亡之歎 輔國安民 計將安出, 동경대전, 포덕문)"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동양의 오랜 지혜이니 따로 주목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서 ‘동귀일체’가 주요한 화두로 떠오른다. 쇠운의 지극함을 어디에서 알 수 있는가? 동귀일체로부터 멀어짐, 바로 각자위심(各自爲心)이다.
동귀일체의 의미를 알자면 각자위심을 알아야 하고, 각자위심의 의미를 알자면 동귀일체를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다가 죽어 가는) 많은 사람 한울님을 우러러서 조화중에 생겼으니, 은덕은 고사하고 근본조차 잊을소냐. 가련한 세상사람 각자위심(各自爲心)하단 말가. 경천순천(敬天順天) 하여스라. 효박한 이 세상에 그 근본을 잊지 말아라(不忘其本)(「권학가」).”
여기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각자위심은 ‘근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근본’이란 바로 생명의 본성이요 다른 말로는 ‘한울님’이다.
수운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기에 앞서서 이 세상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씀이 바로 각자위심(各自爲心)이라는 말이다. 각자위심이란 좁게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이익만을 좇으며 사는 것’이라는 ‘이기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기심이 이룩해 놓은 세계가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살인적인 경쟁과 빈익빈 부익부, 적자생존의 치열한 신자유주의 체제 세계이다. 그러나 각자위심의 본질적인 의의는 그러한 삶의 행태가 비롯되는 사람들의 허위의식(虛僞意識)으로서의 각자위심이다. 나와 남, 사람과 자연(환경), 생명과 사물이 서로 떨어져 있다(各自爲)고 생각(心)하는 것이다.
이는 생명의 실상(實相)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생각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치부된다.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사는 것은 서로 도우면서 사는 것보다 앞서는 미덕이 되어 왔다. 그러한 삶의 행태가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 오늘의 사회이다. 모두들 그것이 편하며 선(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생명의 본성을 거스르는 삶의 방식이며, 그만큼 생명을 단축시키고 위축시키는 삶의 형식이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갈라놓음으로써 이득을 보는 것은 언제나 권력자요 기득권자들임을 알아야 한다.
생명의 실상은 동귀일체(同歸一體)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로부터 나와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一) - 다(多) - 일(一)의 순환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일이며, 존재 그 자체의 실상이다. 동귀일체란 '시천주(侍天主)'라는 근본 테제의 활용 측면을 표시하는 말이다. 이 세상 만물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한울님이라는 본체로부터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그 말이다.
사람이 공기 없이 살 수 없듯이, 나는 ‘너’없이는 생존은커녕 ‘존재’조차 할 수 없다. ‘너’라는 타자를 전제로 해서만 ‘나’라는 주체가 인식되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실상과 어긋나는 삶을 살면 어떻게 되는가? ‘병’이 생긴다. 오늘날 인간이 맞닥뜨리는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 불행과 고통, 갈등과 악다구니가 바로 그 ‘병’이다. 이것들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개선으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은 망상이다. 오직 동귀일체의 자각, 동귀일체의 실천, 동귀일체 세상의 실현(實現)만이 치유책이다. 동학은 바로 그 동귀일체를 위한, 동귀일체에 의한, 동귀일체의 철학이요, 종교이다.
(다음, "4. 예언인가 필연인가 명령인가 바람인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