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제4호, 사설, 1920.9.25(10월호)
[이 글은 <개벽> 제4호 사설로서, 개벽강독회에서 김미정 선생님이 발제(현대어역)한 것을 기반으로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 편집자 주]
1.
인도정의(人道正義)의 소리가 한 번 세계에 전하자 온 인류는 오랫동안 압박에 치이고 굴종했던 나태한 기운을, 새롭게 되살리게 되었다. 새로운 활기(活氣)와 비상한 흥미를 가지고 그-인도정의를 환영하며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활동과 모든 경영이 다 같이 인도정의를 표준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위로 전 세계의 한 국가를 다스리는[經理] 자와 아래로 한 사회, 한 가정을 조화롭게 간섭(調攝)하는 자까지도 인도정의를 부르짖게 되었다. 아직 몽롱하나마 인도정의를 목표로 나아가는 중이요, 방황하면서도 인도정의에 접근하고자 하는 중이다.
생각건대, 모든 인류의 진심에는 드러나지 않은 어떤 목마른 동경과 어떤 요구가 묻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비록 시세(時勢)의 저항과 환경의 장애로써 그 우러러 갈구하는[渴仰] 것을 드러내고 그 요구를 표현치 못하였으나, 그러나 그들의 자연한 본능과 자유스러운 감정 중에는 스스로 그 사상이 가라앉아 세월과 함께 쌓이고 습관과 함께 전해 내려왔던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남녀는 평생 자신의 경우 또는 일반 사회 상태를 연구 비판할 만한 여유가 없었으며, 따라서 그에 대한 지식이 없어 그들은 다만 그들은 다만 어두운 눈으로 유유연(唯唯然: 공순하게, 순종적으로-편집자주)히 인생의 일대를 지내었다. 그들은 우연히 사회의 한 구석에 살며 자기 자신의 안전에 당면한 필요조건 이외에는 어떤 사색이 없이 자연한 생로병사의 가운데 묻혀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다만 본능적으로 순간 필요의 만족을 구할 뿐으로 충분한 노력에 의한 생활의 모든 조건의 변혁을 도모하지 못하였다. 또 일부 사람들은 개인적 야심에 쫓겨 자신을 사회 상류에 자리하게 함에 필요한 사상과 노력을 하였을 뿐이며,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을 위하여 이익을 진면목으로 만인에게 주는 자는 거의 없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겠다. 자기 일신 생활의 행복과 이익만을 취할 뿐 일반사회의 무수한 재해는 앉아서 보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지내는 것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시대의 진화는 점차 사회의 이면에 숨겨 있는 이 죄악과 이 폐단을 드러내어 밝힐 기회를 주었나니 근세 사회 교육의 보급과 일반 민중의 지식 향상은 스스로 그들의 자각의 정신을 충분히 주었으므로 기회만 있으면 그 정신을 드러내고 예측할 암시력(暗示力)이 일반에게 공통하여 있었던 것이다.
2.
학자들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의 원천되는 태양은 서서히 노쇠(老衰)하나니, 노쇠의 끝은 반드시 냉각하여 다시 생명의 원천이 되는 것은 불능하며 그리하여 태양계의 모든 것은 말라죽고 반드시 생명 멸망의 경계에 이르리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영국 여사 마키 씨는 답하여 말하기를 “노쇠한 자는 다시 재화(災禍)로써 부활을 꾀하나니라” 하였다.
나는 인간세계에 있어 이보다 숭고한 교훈은 다시없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대개 생명에는 끝이 있는 것이라. 성한 자는 반드시 쇠하며 산 자는 반드시 죽나니, 자못 회춘의 대수단(大手段)은 즉 신정력(新精力)을 주사(注射)하여 현상을 타파하고 근본으로부터 고치어 새로이 시작함에 있나니 궁한 후에 통하는 도는 오직 이에 있느니라.
당연한 것이지만, 쇠한 자가 (신정력을) 주사하여 새로운 부활을 꾀하고자 하면 반드시 큰 재앙을 요구할 것을 잊지 말지어다. 비유컨대 초목이 봄에 새로운 싹을 틔우고 꽃이 피며 과일을 맺어 신정력의 주사를 계속하다가 가을에 이르러 낙엽이 떨어지고 시들고 열매가 익어 떨어지면 자연은 다시 대재화(大災禍)로써 낙엽을 빼앗고 가지를 시들게 하여 다시 다음 봄의 부활을 꾀하게 하나니, 이는 우주의 공리(公理)이며 천지의 대법이라. 인간만사도 또한 이 이치와 법에 순응할 뿐이다.
생각건대, 모든 인류는 이미 노쇠하여 다시 큰 재앙으로써 신정력의 주사를 받지 아니하면 부활을 이루기는 불능할 극단의 꼭대기에 도달하였다 할지라. 생명이 있은 지 몇 십만 년, 역사가 있은 지 오천 년, 인류는 똑 같은 일을 반복하여 되풀이함에 실로 퇴굴(退屈)에 늙고 권태(倦怠)에 쇠하였다. 인류는 개벽 이래 금일에 이르는 사이 항상 압박의 역사를 거듭 되풀이하였다. 완력의 압박, 추장(酋長, 지도자-편집자주)의 압박, 정복자의 압박, 승려(=聖職者: 편집자주)의 압박, 귀족의 압박, 무인의 압박, 계급의 압박, 관료의 압박, 금권의 압박이 연달아 있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인류는 압박에 늙고 쇠하였으며 압박에 굴복하였다. 이와 같이 압박의 아래에 인류는 압박에 노쇠하고 압박에 퇴굴(退屈)하였다. 이와 같이 압박 아래에 게으른 마음이나 기분이 낳은 모든 인류는 다시 아무런 신정력의 주사를 받아 부활을 구할 시기에 이르렀다. 이 점에서 과거 오년의 대전은 실로 세계 인류에 대한 최대 재앙인데 세계 인류는 이 대재앙에 인하여 다시 거대한 부활을 꾀하게 되었나니 이 과연 신정력의 주사가 아니냐. 세계대전의 끝과 함께 전 세계에 대한 부활의 신(新)주사를 더한 자는 곧 인도정의의 소리였나니, 만일 세계대전을 거대한 재앙의 종결이라 하면 인도정의는 실로 큰 부활의 시초이리라. 그럼으로 이 소리가 한번 일어남에조차 전 세계는 공전의 활기를 가지고 현실개조 착수함도 무리는 아니다.
3.
당연한 말이지만, 원래 인도정의라 함은 심히 넓고 아득한 문제였다. 플라톤의 이상국(理想國)과 같이 몽롱한 상징이며, 예수의 천국과 같이 묘원(杳遠: 아득하고 멂)한 깨달음뿐이었나니 어찌 정도를 표준하여 이를 인도의 목표라 할 것이며 어찌 범위를 정하여 이를 정의의 발표라 할는지. 이는 명철한 철인의 두뇌 외에는 어떤 사람이든지 보편적으로 딱 잘라 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요컨대 인도정의라 함은 인격의 최고 진선미의 발휘를 목표로 함일 것이니 인간세계의 모든 경영과 활동을 오로지 인격의 최고 진선미에 표준하여 그를 응용하고저 함이다. 필연의 결과로 인도정의는 이를 도덕․법률․종교․정치에 이르는 민중운동의 모든 실력에 기대어 그 표현될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냐. 이에 나는 인도정의의 과거부터 현재에 있는 발전의 경로를 간단히 말하여서 장래의 세계를 미루어 생각해고자 한다.
첫째, 인도정의는 도덕론에 의하여 표현된 것이니, 유가의 인, 석가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과 같은 것은 그 가운데 은근하게 인도정의의 권위가 표현되어 양심상으로부터 이를 도발케 함이 아니겠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도덕은 이름뿐이라. 사람이 이를 강하게 따르게 하기 불가능하니, 그러한 연유로 인도정의의 대주의가 이에 표현하였을지라도 악인은 이를 따르지 않음에 어찌하리오. 고로 인의정의는,
둘째, 법률상에 응용함에 이르렀나니, 인도정의는 법률의 형을 얻음에 이르러 처음으로 제재가 있고 권위가 있게 되었다. 대개 미개한 시대의 법률이나 혹은 아직 발달하지 못한 법률과 같은 것은(근본부터 논할 것은 아니나) 완전무결의 문명의 법률이 되면 인도정의를 근거로 하나니, 즉 인격을 존중하는 점으로부터 근본원리를 삼음이라. 옛날에 있더라도 이 로마 법률과 같이 “사람으로써 목적물이 되게 함이 옳지 않다”고 하였느니, 이 로마법의 근본 정신은 사람을 ‘주의’로 하고 발원한 것이니 이에 법률도 인도정의 위에 책립한 것에 불과함인저.
근대에 이르러 모든 법률학자는 자연법 또는 성법을 말함에 이 주의는 더 확장되어 알지 못하는 사이 인도정의는 인류 최고의 훈규가 되어 인도정의는 다시
셋째, 정치상 방면에 응용함에 이르렀나니, 노예 해방 대사건과 같은 것은 가장 이에 적절한 일례가 되리라. 당연히 이는 대개 자국 안에 한한 것이라. 단순히 자국 내에 있는 인도정의의 응용일 뿐이요, 결코 광의적의 인도주의의 의의 자체를 표현한 것은 아니니 고로 인도정의는 다시
넷째, 만국공법상에 표현하게 되었다. 공법에 전시 금제품과 보통 상품의 종류를 나누어 전투원과 양민의 구별을 나누는 것은 가장 인도정의를 중요시한 것이니 만일 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이러한 구별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인도정의는 적십자조약에 의하여 점점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나니 적십자의 눈에는 적과 나의 구별이 없게 된 것은 실로 칭찬할 만한 인도의 효력이 아니냐.
4.
과거의 인도정의는 거의 이에 이르렀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주의는 금번 대전(제1차 세계대전: 편집자주) 종결과 함께 일층 기백 배의 세력을 나타나게 되었느니 정치문제, 사회문제, 모든 것이 다 같이 이 주의의 철저한 실현을 요구하는 중이었다. 강약의 차별이 없고 빈부의 심한 차이가 없고 계급과 계급 간에 우열이 없이 강하고 철저하게 이를 실행하고자 함이 대전 후 현상이 되어 오는 중이었다.
전후에 대한 인도정의의 최대한 옹호자는 국제연맹이라 할지니 국제적 인도정의의 의미에서 국제연맹은 실로 인간 세상에 가장 권위가 있는 사실로 나타난 것이라 할지라. 하여 제일 국제연맹은 반드시 독일과 같은 강국이 비인도적 군국주의로 세계의 평화, 인류의 행복을 저주하는 자에 대하여 재차 그 과거를 반복하지 아니하도록 한 이상적 기구이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중 연합국이 독일을 공격하면서 내세운 주장 측면은 말할 것도 없이 인도정의를 안목으로 한 것이었다. 또는 이 주장이 비록 가면이라 가정할지라도 나중까지 이 주장을 돌이키지 아니할 뿐 아니라 이 주장은 차례로 사건이 확대하여 세계의 각국이 이에 참여하여 어느덧 이를 한 국가의 자국보존, 자국증대의 가면적 행위수단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공평히 관찰하면 연합국의 거동의 열에 열 모두 정의인도에 부합하였다 할 수 없는 것이요, 또 독일 등도 또 그 전쟁의 목적에 문화 선전을 표방하였기 때문에 자못 그 기인(旗印: 내세운 명분)만으로 실제상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우나, 그러나 크게 저 연합국에서 정의인도의 소리가 높았던 것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강화조약과 함께 국제연맹이 조직케 되어 이를 또 인도정의상 책봉함 이르렀다. 만약 국제연맹의 세력이 완전하게 되는 날이면 세계의 어떤 나라를 물론하고 만일 평화와 행복을 위협하는 나라가 있다면 국제연맹은 바로 인도정의의 표방 아래에서 연합협동의 힘으로써 이에 임할 것이니 사실로 인도정의가 국제연맹에 의하여 큰 뜻을 철저하게 실행된다 할 것이다.
국제연맹은 사실상 발전이 적잖이 느리게 됨은 실로 인도정의상 유감이라 할지나, 이에 대하여 최근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이 각국 간 민중의 운동으로 국제연맹협회라 하는 것이 성립한 것이다. 국제연맹협회는 창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활동의 가치는 아직 금후에 기다리지 아니함이 어려우나 그 연합회는 제1회 회의를 작년 1월 26일로부터 2월 3일까지 9일간 파리에서 개최하였고, 다음 제2회 회의는 같은 해 3월 11일로부터 13일까지 런던에서 개최하고, 다시 같은 해 12월 1일부터 3일까지 3일간 브뤼셀서 제3회 회의를 개최하여 처음으로 완전한 연합회의 성질을 이루었다.
요컨대 각국에 있는 국제연맹협회의 목적은 국제연맹의 취지를 널리 국민 간에 보급케 하여 그 완비(完備)를 꾀하며 그 목적의 관철을 기대함과 동시에 그 취지 아래 있는 내외 단체의 경로를 꾀하며, 특히 때때로 열릴 연합회에 그 대표자를 파견하여 협동으로 국제연맹을 위하여 노력하여 세계의 평화, 인류의 행복을 증진함에 있는 것이라. 생각건대 금후의 평화는 국제연맹 없이는 도저히 유지하고 기다리기 어려울 것이라.
금후의 국가가 아직 경제적 제국주의를 버리기 이전에는 국제간 쟁단은 또한 종식을 고하였다 말하지 못할지니 그간에 처하여 그를 조절하기 위하여 국제연맹회의를 유효하고 철저하게 하며 또한 권위를 갖게 함에는 아무쪼록 각국 내의 국민은 물론 국민과 국민 간에도 국제 취지가 십분 이해하게 하여 공동일치로 십분-이를 행동하지 아니함이 불가하도다. 즉 전 세계의 인류가 서로 공동일치하여 인도정의의 진짜 뜻을 절실히 감격하고 그리하여 표현을 완성하게 하도록 국제협회가 일어난 것은 금후 세계운동에 실로 도덕적 가치를 짊어진 기구라고 할 것이다.
5.
다음으로 인도정의상 국제연맹과 관련하여 지금 사람들의 주의를 이끄는 것은 노동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간단히 경제적 문제가 아닌 일은 주의(注意)를 더하여 할 것인데, 경제문제가 도덕문제와 명료히 결합한 것은 누구라도 의심하지 못할 사실이다. 노동문제라 하면 다만 노동자의 임금 증가, 경제 균형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그 사이에는 어느덧 인격문제의 자각이 충분히 확장되어, 노동자일지라도 인격상 표준 아래에서 모든 것의 자유와 쾌락을 향유하고자 함이니 즉 인격을 빈부귀천의 일관한 점으로부터 보아 동일한 국민적 또 민중적 권리를 향수하고자 함이며, 또 부인문제, 인종평등문제 등 모든 문제가 따라 인격주의를 주장하고 가장 격렬한 사회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인도정의의 발달사상 경시치 못할 사실이니, 이 점에서 인도정의는 다시 사회 문제상에 표현하여 모든 사회개량을 그 기치 아래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중이다.
오호라. 인도정의도 이에 이르러 실로 더할 나위 없이 높은 권위를 표현하게 되었으며 또 최초 법률 정치상에서 유치한 강제적 의미의 표현이었던 것은 본디의 상태로 되돌려 도덕상 또 자연상, 또한 인류 성능상 본위에 귀착하여 자각적 발전을 얻게 되었다.
6.
어떤 학자는 인도정의(人道正義)의 최후의 도덕적 목표로 동물학대 폐지를 중요하게 여겨,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류는 자기 개인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육식하는 하는 만큼, 이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어려우나, 동물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을지라도 여기에도 우애주의, 인도주의를 확실히 지켜야만 한다. 가급적 고통을 덜어주며, 이에 무익한 재해(災害)를 가하지 아니하게 하며, 또 저들 무리를 위하여 그 무리의 행복을 중요시하여 지나친 사역을 금하며, 사육하는 동물에 대한 학대(虐待)를 피함이 옳다.
원래 동물 학대는 단순히 동물을 위하여 불쌍히 여길 뿐 아니라, 다른 측면으로부터 논하면 인류의 성질과 능력부터 행위상 적지 않은 해로운 점이 미치는 바는 다시 간단한 이유로써 능히 이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사람의 품성을 거칠게 하며 감정을 상하게 하나니, 이를 감히 행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품위 있는 신사적(紳士的) 정조(情操)가 나지 못하는 것이요, 착한 사람의 공평한 마음[善人公心]이 생기지 못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정신적 아름다움을 맛보는 경우를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며, 또한 사람 마음의 작용은 가히 놀랄 만한 미묘한 반사작용이 있나니 이에서 동물의 고통으로 인하여 해를 입은 신경은 드러나지 않은 중 각종의 폐해를 생겨나게 해, 혹 그로 인해 불구의 몸이 되며 또 불구의 자식을 출산하며 바르지 못한 행위를 감히 하게 하는 등 - 실례는 과학적 이유에도 많고 많으니, 그러므로 인도주의의 최종 목적은 동물 학대 폐지까지 이르지 아니하면 완벽한 준비의 지경에 이르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안도정의의 문제를 만일 동물학대 폐지의 문제까지 확충한다 하면 그 사이에 있는 인류에 대한 압박과 학대는 도저히 머리카락 한 올도 이에 더하지 못할 것이라. 사람이 사람과 다른 동물도 학대함이 옳지 않거든 같은 인류가 인위적 권력으로써 상호 학대함은 도저 용인치 못할 대사건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금일 이후의 세계문제는 도덕은 물론, 법률․정치․국제․사회, 모든 활동이 오직 인도정의를 중심으로 하고 이에 부합하는 사람은 흥할 것이요, 이에 반하는 자는 망할 뿐이다.
세상 사람이 언제나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서 문득 말하기를 ‘티끌 많은 세상과 고통스러운 세상’이라 하나, 구름이 희고, 산이 푸르며, 물이 흐르고, 돌이 우뚝하며, 꽃은 새소리를 반기고 구렁은 나무꾼의 노래를 화답하여 뭍에는 티끌이 일지 않고 바다에는 물결이 치지 아니함을 알지 못하고 한갓 제 스스로 그 마음을 어수선하게 하는 것이 아니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