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Jun 10. 2016

다시 읽는 신인철학(40)

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다시 읽기 

제4절 진리 파지와 생명


1. 죽음의 성질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근본부터 없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말은 빨간 거짓말이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 사람은 누구나 곧이듣지 않을 뿐 아니라 노기(怒氣)와 역증을 내여 이렇게 말하리라. 

"죽음이 없다니 저런 거짓말이 있나? 우리 선조도 죽었고 이웃사람의 죽음도 보았고 모든 생물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도 장차 죽을 것이요, 고운 미인, 힘 있는 호걸,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이미 죽지 않았느냐? 살이 썩어 물이 되고 뼈가 썩어 흙이 되는 것을 눈으로 본 것이 아니냐?" 

이렇게 대항할 줄로 안다. 


그러나 죽음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도 죽음을 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며 또한 죽음을 알지 못하는 천치나 또는 천상의 천사(天使)가 아닐 것이다. 죽음이 없다는 사람일수록 죽음에 대한 경험과 연구가 몇 층 깊은 줄로 안다. 그러면 죽음이 없다고 주장하는 그 이유에는 무슨 진리와 변해(辨解)가 있을까?

  

첫째는 변화상으로 보아 죽음이라는 특수한 명사가 없어도 좋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죽음은 일종 변화에 불과한 것인데 세상 사람은 다른 변화에 대해서는 그렇게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죽음에 이르러서는 이를 변화로 생각지 않고 영멸(永滅)로 생각하는 까닭에 여기서 비애(悲哀)를 느끼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변천(變遷)에 대하여 불쾌를 느끼는 점보다 유쾌(愉快)를 느끼는 일이 많다. 적던 소년의 몸이 굵어져 청년시대가 되는 것도 유쾌한 일이며, 나날이 같은 생활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또한 유쾌한 일이며 춘유화(春有花) 동유설(冬有雪) 사시의 변천도 또한 해롭지 않은 일이며 역사가 단계적으로 변천하는 것도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변천을 좋아하고 변천을 흥미있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특히 죽음이라는 변화를 그와 같이 공포로 생각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원래 변천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첫째는 단계적으로 변하는 것이 그 법칙이다. 유년이 소년으로 변천하고 소년이 청년으로 변천하는 등의 일정한 순서가 있어서 어떠한 변천에도 그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사물에 변천이 있게 된 원인은 변증법상(辨證法上)에서 이를 모순의 법칙이라 하는 것이니 예를 들면 우리 신체중에 생과 사라는 전연 모순 반대의 율법이 잠재함과 같은 예는 어떤 사물에도 이 율법의 복재(伏在)를 찾아낼 수 있다. 

셋째, 변천에는 돌연적 혹은 비약적인 법칙이 있다. 예를 들면 물이 더울 만큼 더워지면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것이며 그 반대로 찰 만큼 차가워지면 액체가 고체로 변하는 것과, 계란이 부화될 만큼 부화되면 병아리라는 신생물이 되는 것과 같은 예가 그것이다. 

이러한 돌연적 변화는 처음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요 당초에는 극히 서서히 변하던 것이 그가 어느 정도까지 이르고 보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성질과는 전연 판이한 물건으로 돌변하게 되는 것인데 사람의 생사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이 돌연적 변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죽음만 그런 것이 아니요 탄생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나'라는 개체는 원래 부모 생명이 분화한 것으로 부모의 체내에서 서서히 탄생의 방면을 향하고 변화하기를 시작하다가 필경은 돌연적 비약적으로 유아라는 적은 몸이 그 답답한 태내(胎內)를 벗어나 광활한 일월의 광명 하에 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개체는 탄생이라는 돌연적 고개를 넘자 여기서부터는 서서히 죽음의 방면을 향하고 변천을 시작하게 된다. 한 살, 두 살, 열 살, 스무 살... 하는 이 서서한 변천은 다만 죽음의 방면을 향하는 변천인데 그러한 변천은 피치 못할 일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나면서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살을 먹었다는 말은 곧 한 살을 죽었다는 의미를 포용한 것이요, 열 살을 먹었다는 것은 열 살을 죽었다는 의미가 포용된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매일 죽는 것이며 시시각각으로 죽는 것이다. 죽을 때에만 죽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생존의 변천과 죽음의 변천은 전자는 서서한 변화임에 대하여 후자는 돌연적 변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읽는 신인철학(3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