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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n 10. 2016

전환과 순환 그리고 개벽(5)

5. “죽을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전환이야기』라는 책에서 주요섭은 ‘한국형 전환운동의 프로세스’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각비(覺非). ‘더 이상 이렇게는 아니다’라는 생명 감각. 

둘째, 엑소더스(exdos, 歸). 기존의 질서로부터의 탈출, 혹은 생명의 근본 자리로 돌아감. 

셋째, 깨달음. 이 세계는 살아 있는 전체, 혹은 ‘하나’라는 깨달음. 

넷째, 새 공동체.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내용과 형태이 공동체. 

다섯째, 체제 전환. 사회적 치유와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의 새로운 차원으로의 재구성.”


여기서 첫째 각비(覺非)란 본래 도연명의 시(<歸去來辭>)에 나오는 ‘자연과 더불어사는 지금이 바른 삶이요, 세파에 실려 흘러가는 어제의 삶이 잘못된 것이었네(覺今是而昨非)’라는 시 구절의 심정을 받아 ‘지금의 삶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것’이 전환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앞에서 필자가 말한 바 ‘각자위심’이야말로 ‘잘못’의 진상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둘째(歸)와 셋째(生命), 넷째(共同體)는 앞에서 말한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의미 그대로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전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의암 손병희 선생은 우리가 주변에서 익히 목격할 수 있는 계절의 순환에 따른 자연의 변화상에 빗대어 이렇게 경고한다. 


“무섭게 죽이는 가을바람이 쌀쌀하고 쓸쓸하게 서쪽으로부터 동쪽에 불어오니, 우거졌던 푸른 초목이 아무리 현재의 모양을 아직 보존하고 있지마는 하룻밤 지나면 산에 가득 차 누렇게 떨어지는 가련한 서리 맞은 잎뿐이리니, 이제 이 유형의 개벽을 당하여 정신상으로 무형의 개벽을 하지 않으면, 천하로 옷을 입고 우주로 집을 삼고 사해로 밭을 가는 그 사람이라도 한번 가지에서 떨어지면 문득 적막한 서리 맞은 잎과 같이 될 것이니, 이것이 사람과 물건이 개벽하는 때이니라.” (의암성사법설, 인여물개벽설)


한마디로 말하면, 선천과 후천이 갈아드는 이 개벽의 운수에 전환을 성공하지 못하면 모두 죽는다는 말이다. 한 개인도 그러하고, 한 사회국가, 나아가 온 인류가 그러한 운명에 처하여 있다는 것을, 지금의 지혜로운 사람들도 차츰차츰 말하기 시작했다.  

해법은 무엇인가. 역시 의암 선생의 말씀이다. 


“(1) 개벽이란 부패한 것을 맑고 새롭게, 복잡한 것을 간단하고 깨끗하게 함을 말함이니, 천지 만물의 개벽은 공기로써 하고 인생 만사의 개벽은 정신으로써 하나니, 너의 정신이 곧 천지의 공기이니라. 지금에 그대들은 가히 하지 못할 일을 생각지 말고 먼저 각자가 본래 있는 정신을 개벽하면, 만사의 개벽은 그 다음 차례의 일이니라. 

(2) 정신을 개벽코자 하면 먼저 스스로 높은 체하는 마음(自尊心)을 모실 시(侍) 자로 개벽하고, 스스로 높은 체하는 마음을 개벽코자 하면 의심스럽고 두려운 마음(疑懼心)을 정할 정(定) 자로 개벽하고, 의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을 개벽코자 하면 아득하고 망령된 생각(迷妄念)을 알 지(知) 자로 개벽하고, 아득하고 망령된 생각을 개벽코자 하면 먼저 육신 관념을 성령(性靈)으로 개벽하라(=以身換性; 필자 주).”


여기서 시정지(侍定知)는 동학의 핵심 요체인 21자 주문의 키워드이다(至氣今至願爲大 降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들려오는 소식들은 온통 나쁜 것들 뿐이며, 나쁜 것과 나쁜 것 사이를 정의로운 사람들이 겨우 비집고 나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세상이 이렇게만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중이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는 답이 없지만, 세상의 전환이 먼저인가 나의 전환이 먼저인가는 답이 있다.  세상의 전환은 '나의 전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자면, 어쩌면 변하는 것/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수천년의 인류역사를,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그렇다. 이 세계의 전환은 언제나 오직 그다음의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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