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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Dec 29. 2020

한국인과 도덕과 권력과 부

[잠깐독서-041]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중에서 


[책 속에서]

오구라 기조 지음, 조성환 역,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조선 혹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철학 그 자체가 영토·사람·주권으로 응결된 것이 조선 혹은 한국이다. 여기에서 철학이란 ‘리(理)’를 말한다. 주자학에 의한 국가 통치 이후, 이 반도를 지배해 온 것은 오로지 ‘리’였다. 항상 ‘하나임(一個性)’을 주장하는 ‘리’였던 것이다. ‘리’란 무엇인가? 보편적 원리이다. 그것은 천(天), 즉 자연의 법칙과 인간 사회의 도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된, 아니 일치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절대적인 규범이다.


오늘날의 한국인의 도덕 지향성은 이 전통적인 ‘리’ 지향성의 연장이다. 조선 왕조의 철학자들은 실로 치밀한 이기론(理氣論)을 수백년 동안이나 되풀이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인간의 마음에서 사회와 우주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리’와 ‘기’의 관계를 가지고 좀 더 논리정연한 체계로 설명할 수 있는 세력만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철학 논쟁에서 패배한 그룹은 권력에서 배제된다.


‘리’는 보편의 운동이다. 이 보편을 격렬한 논쟁에 의해 거머쥔 자가 권력과 부를 독점한다. 즉 ‘리’는 진리이자 규범이자 돈과 밥의 원천인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가 체현하는 ‘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일원적으로 서열이 정해진다. 체현하는 ‘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20쪽)


도덕·권력·부


여기에서 우리는 도덕을 지향해야 할 자들이 왜 돈과 권력을 둘러싼 암투에 기꺼이 가담하는지를, 그리고 그와 같은 싸움의 강렬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또한 도덕 지향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자의 행동이 언제나 도덕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유교의 도덕이 권력 및 부와의 관계에서 성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 지향성 국가’인 한국에서 도덕의 최고형태는, 도덕이 권력 및 부와 삼위일체가 된 상태라고 여겨지고 있다.


한국인이 이상으로 여기는 인생 또한 이 세 가지가 전부 구비된 상태이다. 즉 현세주의적인 유교에서 도덕이란 결코 사회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권력 및 부와의 융합과 반발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긴장하고 있다. 도덕은 권력이나 부와 결합되어 있는 것 자체만으로는 원래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지만, 권력과 부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손상될 수가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현실적으로는 거의 모든 도덕이 상처를 입고 있다. 그곳을 노리고 다른 세력이 굶주린 늑대들처럼 도덕 지향적인 공격을 해 온다. 권력이나 부와의 거리 차에 의해서 도덕 내용이 다양하기 때문에 공격하는 내용도 다양하며, 지칠 줄 모르고 파상적(波狀的)으로 계속된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한국의 도덕은 영원히 풋풋한 것이다. (21쪽) 


[사족 또는 독서 길잡이]


[잠깐독서-041]   이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하나의 철학'은 '리(理)'를 지칭한다. 한마디로, 한국은 '리(理)' 덩어리라는 말이다. 필자의 고백에 따르면, 여기에는 (긍정적 의미의) 상찬(賞贊)과 (부정적 의미의) 경탄(驚歎)의 이중적 의미가 들어 있다. 


연말연시가 되면, 이 책의 판매량이 증대한다. 아마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 사회의 현상을 진단하는 데 참고가 된다는 소문이 나 있기 때문이리라. 과연 그러하다.  얼핏, 한국인의 속내가 얼마나 복잡하고, 계층간, 지역간, 남녀간, 세대간의 차이가 얼마나 극심한데, 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철학!'이라니, 말이 되냐고 반감을 가질 수 있다. 더욱이 필자가 '일본인'이라는 데서, 아무리 객관성을 유지하려 해도 그런 혐의를 지우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그야말로 무릎을 치며 "맞아! 맞아!"를 연발하게 (또는 속으로 되뇌게) 된다. 그만큼 저자의 논리 전개가 탄탄하다는 것이고, 한국인의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이러한 원리('하나의 철학')가 일이관지하여 교묘하게 적용[妙用]되고 있는지 놀랄 정도이다. 여기에는 작은(아니, 그러면서도 큰) 착시(錯視)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사실은 '리(理)'라는 것 자체가 (유교-성리학에서는) 이 우주의 근원적인 질서를 담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현상계에서는 이기론(理氣論)이라는 형태를 띠면서, 기(氣)의 다양성까지를 포괄, 포용, 포함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삼라만상과 인간사의 모든 현상이 다 이기론으로 해명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얼령비얼령 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거나 하나마나 한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이기론'이라는 수백 년 된 탄탄한 철학적 기반에 의거하는 만큼, 허투루 넘어가는 구석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라고 하였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는[한반도 안팎을 통틀어] 사람, 즉 한국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동감하는 요소들은 대개 "이거 내 얘기야!"라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내가 좋아하는 요소든, 눈쌀 찌푸리는 요소든 온갖 군상(群像)의 한국인이 보여주는 온갖 군상(群相)들을 일통(一通)하는 이 책의 혜안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과제는, 우리 (한국인) 스스로, 일본인이 보는 것보다 더 잘, 일본인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던 것까지를 포함한 새로운 '한국인론'을 내놓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좀 더 조화롭게,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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