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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Dec 30. 2020

인간의 삶이 상품이 되는 시대

[잠깐독서-042] [호모커넥투스] 중에서 

[책속에서]


[호모커넥투스 : 초연결 세계와 신인류의 연금술적 공생]
55-57쪽


리프킨이 지적하는 ‘접속의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발전시켜 온 문화의 광맥을 문화 자본주의가 샅샅이 발굴하여 상품화한 결과, 지역 문화가 고갈되고 지구 문화의 동질화가 심화되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 같은 맥락에서 전 세계의 많은 언어가 사라지면서 문화도 사라지고 그로 인해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가공되지 않은 원초적 지식(raw knowledge)의 보고(寶庫)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문화의 상품화로 인해 문화생활을 구성하는 수많은 관계가 상품화되고 심지어는 인간 자체도 상품화됨으로써 인류 문명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의 유지는 생물종(種) 다양성의 유지와 마찬가지로 지속 가능한 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 관계적인 접속을 통한 다양한 문화적 경험은 의식의 확장을 가져오는 단초가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인류 사회의 공진화와 관계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리프킨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인류는 물리적 자원이 소유권이 부여되는 상품으로 전환되는 시대를 살았다. 이제는 문화적 자원이 유료로 제공되는 개인적 경험과 오락으로 전환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상업 자본주의에서 산업 자본주의로 발전해 온 자본주의 체제가 문화 자본주의로 이행되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디지털 통신기술과 문화 상업주의로 대변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서는 소유보다는 접속의 비중이 훨씬 커질 것이며 경험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새로운 통신기술이 일상생활의 점점 많은 부분을 지배함에 따라 수천 년 동안 반독립 영역에서 존재하며 단 한 번도 시장에 흡수 당한 적이 없었던 문화―인간이 공유하는 경험―가 이제 경제 영역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고 리프킨은 진단한다. 말하자면 문화의 상품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 자본주의는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이 자기 주위에 만들어가는 ‘의미망(the webs of significance)’을 문화라고 한다면, 커뮤니케이션―언어, 미술, 음악, 댄스, 책, 영화, 음반, 소프트웨어―은 이 의미망을 해석하고 재현하고 유지하고 변형하는 수단이다.” 문화생활은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항상 접속과 포함(inclusion)의 문제로 귀결된다. 리프킨에 따르면 문화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 앞에 놓인 길은 공동체와 문화의 일원으로 의미와 경험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권리를 누리느냐 배제당하느냐 둘 중의 하나이다. 점점 더 많은 공유 문화가 네트워크 경제의 파편화된 상업적 경험으로 분해됨에 따라 접속권도 사회적 영역에서 상업적 영역으로 이동하고 상업 영역에서 통용되는 경제력에 따라서 부여된다.


소비 지향의 자본주의에서 예술은 문화적 영역으로부터 시장으로 끌려나와 광고 회사와 마케팅 전문가의 볼모가 되어 ‘생활 양식(way of life)’을 파는 데 동원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리프킨은 말한다. 선진국에서, 특히 자본주의 생활 양식이 제공하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는 전 세계 인구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상품의 소비는 거의 한계점에 이르렀으며, 이제 자본주의는 완전한 문화적 자본주의를 향한 최후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 생활을 상징하는 기호와 그 기호를 해석하는 예술적 의사소통 방식은 물론 살아 있는 체험 그 자체가 상품이 되는 것이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사회학 교수 노먼 덴진(Norman Denzin)은 문화 자본주의가 초래한 인간관계의 극적인 변화를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살아 있는 체험(lived experience)은 상품화의 마지막 단계이다. 환언하면 살아 있는 체험은…자본 순환에서 최종 상품이 되었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우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체험이라는 가장 일시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잠깐독서-042]


몇년 전부터 우리 안방(TV)을 점령한 '먹방'에 이어 최근 상승세를 타는 프로그램이 '집방'이다. 이미 먹방이 트렌드가 될 때부터 '집방'의 대세화도 예고되어 왔었다. 몇몇 선구적(?)인 집방[낡은 집 수리해 주기 등]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하다가 요즘은 또 하나의 [방송]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집방' '먹방'와 세트를 이루는 또 하나의 아이템은 '패션'일 터이다. 이건, 필자가 잘 접근하지 않아서 모르긴 하지만 '유튜브 채널' 가운데 패션이나 뷰티 관련 프로그램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안다. 방송에서도 몇 번 소개된 것으로 보아, 많은 연예인 들이 이와 관련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반대로 이와 관련된 유튜브 채널 운영을 통해 '스타'로 등장하고 '고소득자'로 등극한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안다.


이렇게 보면, 인간 삶[생존, 생활, 생명]의 필수요소로 거론되는 '의-식-주'가 모두 '방송의 소재'가 되어 '팔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의-식-주'라는 항목에 "딱 맞아 떨어지는" 아이템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리얼 예능'이라고 해서, 한(여러) 사람의 생생한(?)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룬지도 꽤 되었다. "혼자 살기" "육아" "사위-장모/장인" "추억의 연예인들" 하다 못해 "이혼했던 부부" 조합까지 등장하여 '생생한(?)' 삶의 모습, 리얼(?)한 일상을 '상품화'하고 있다.


집방은 먹방을 흉내내고, 먹방은 집방을 흉내내고, 의방(衣放)도 집방, 먹방을 흉내내기는 마찬가지다. 캠핑 관련 프로그램, 여행 관련 프로그램 등 이러한 '의식주 형 방송'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가히, 전성시기이다. 필자는 '홈쇼핑'을 거의 하지 않지만, 얼핏얼핏 스쳐 가는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하는 아이템을 보노라면, 우리 삶에서 소용되는 거의 모든 아이템들이 TV 속으로 들어와서 팔리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삶이 '(문화)상품화 되어 팔리거나' '상품 판매를 돋보이게/부추기는 소재'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방송 트렌드[이건 돌고 돌기 마련일 터이다. cf. 레트로]의 문제라기보다는 하나의 시대 / 문명적 교체의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과 200여 년 전 인디안 대륙의 한 추장은 "어떻게 어머니 대지를 사고 팔 수 있느냐?"는 구구절절한 편지를 '신인류(유럽으로부터 인디언대륙으로 몰려온)'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던졌지만, 불과 200년 만에, 예컨대 한국사회에서 '부동산'은 "돈 놓고 돈 먹는" 투전판의 동전처럼 사고 팔리고, 되팔리기를 거듭하는 '상품 중의 최상품'이 되었다. 이제 곧, 인간의 '삶'도 사고 팔리는 시대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적어도, 가상현실 속에서는 이미 실현된 지 오래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TV나 인터넷 공간에서 사고 팔리는 인간의 '생활'은 고 닥쳐 올 '가상현실문명'의 전조라고 읽어야 한다. 영화 중에 "게임속 인물"로 살아가는 이야기나 그와 유사한 소재를 기반으로 한 것이 등장한 것도 이미 오래전이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그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꼭 그와 같은 암울한(?) 방향은 아닐지라도, 우리 삶이 점점 '전자(電子)화된 공간' 속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삶의 양자화'라고 할까?


한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분자 수준', 즉 미시세계의 '존재감'을 '거시세계' 차원에서 '지겹도록, 무섭도록' 체험하고 있는 거라는 관점에서 보면, 근대 과학혁명 이후 숙원이던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통일을 인간은 이미 '존재론'적 차원에서 이루어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민자의 [호모커넥투스 : 초연결 세계와 신인류의 연금술적 공생]은 바로 이러한 시대에 대한 과학적, 철학적 조명과, 해명과, 공명(共鳴)을 추구하고 있다. '호모커넥투스'란 "연결된 인간"이란 뜻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인간이 외부 환경('자아'를 제외한 모든 타자)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점을 적시하고[동양철학의 '不一不二'적 관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만물이 '빅데이터'로 재배열, 재구조, 재평가되는 시대에, 인간의 자리, 생명의 본질, 세계의 진로를 묻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알고 보면 어려운 것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처음에는 '쉽게 접근되지 않음'으로 '재미도 없다.' 그러나, '수양/수련'하는 셈치고 한두 장(章)을 읽다 보면, 새로운 세계, 근-중 미래의 우리의 삶이 또렷이 가시화된다. '초연결'이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미 우리가 '체험'으로 '실생활'로 경험하고 있는 존재, 삶, 생활의 실상이기도 하므로, 사실, 알고 보면 어려울 것도 없고, 재미없을 수도 없다. 새해를 새롭게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미래를 든든히 대비하는 근본 지식을 비축한다는 마음으로,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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