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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11. 2021

안병욱 인생철학

[잠깐독서-045] 김대식 지음 - 안병욱 철학평전 

(예약 판매)



(이책은)


생철학자 안병욱의 평전이다. 

그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쫒아가며 그 삶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의 흐름과 철학을 시종 여일하게 톺아가며, 그 철학과 철학적 인생을 조명하는 ‘철학평전’이다. 

안병욱은 생애 전체를 기울여 청중과 독자들에게 ‘철학이 있는 삶’을 강조하고, 그의 철학대로 살아갔다는 점에서, ‘철학평전’은 그의 생애와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형식이다. 

이 책이 ‘인생철학’인 까닭은 한국 현대사에서 손꼽히는 철학자이자, 젊은이들의 인생 스승으로서 이당의 삶과 철학을 녹여내었기에 ‘인생철학’이고, 오늘 철학이 갈급한 이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발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인생의 철학이기 때문에 ‘인생철학’이다. 

저자는 안병욱의 철학을 크게 성(誠)의 철학, 중용(中庸) 철학, 생(生)의 철학, 실학(實學) 철학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살피면서, 그의 수십 편의 저작과 그가 존경하고, 공부한 철학자들의 사상까지 아울러 안병욱 철학의 전모를 감상할 수 있는 ‘안병욱 철학 입문서’로서의 책을 펴냈다. 


(출판사 서평)


행복한 인생을 향한 바른 길, 안병욱의 인생철학 


삶은 원본적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삶은 인간이 직접 체험되는 현장이며 실존이 논증되는 광장이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죽음조차도 이 범주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삶을 이해하고 그것을 제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삶을 좀 더 성실(誠實)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삶을 정성스럽게 대하고 긍정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서 자신의 철학함(philosophieren)을 대중들과 함께 나누며 연장시켜 간 철학자가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1920~2013)이다. 


그는 자칫 사변으로 흐르기 쉬운 철학적 이론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탁월함뿐만 아니라, 좋은 언어 구사력까지도 겸비한 철학자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넘나들며 시대의 민중이 갈급해 하는 실천적 사유의 바른 길, 더 나은 길을 「사상계」를 비롯하여 여러 매체를 통해 역설했다. 흥사단 아카데미를 조직하여, 직접 강연을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미래를 향한 희망의 의지를 열어 주었다. 


안병욱은 생애 동안 50여 권의 수상록을 남긴 ‘저술가’요 수필가(문필가)로 이해하기 쉽지만, 그가 수십 년에 걸처 수백 회의 대중강연을 통해, 회색빛 시대를 관통하여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삶, 참되고 성실한 인생을 지향할 수 있게 한 대중 강연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당의 이력은 그가 스승으로 삼은 도산 안창호 시절로부터 이당의 시대로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안병욱은, 지금도 살아서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김형석 선생, 그리고 천재적인 문필가여 강연자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이어령 선생 등과 더불어 한국 근현대사를 글과 강연으로 이끌어온 우리 사회의 석학이요, 선지식이며, 스승이었다. 


이당을 만든 철학, 이당이 만든 철학 


그의 철학은 동서양을 아우르고 넘나들고 들어 포월(包越)한다. 동양철학은 공자,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도산 안창호와 맞닿아 있다. 서양철학은 쇼펜하우어, 니체, 베르그송, 딜타이, 슈바이처, 우나무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생철학적 지평에 걸쳐 있다. 이를 종합하고 창조적으로 해석한 이당의 철학은 생(生)철학 혹은 성(誠)의 철학으로 귀결된다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 지류를 폭넓게 수용하여 독창적으로 펼친 이당의 철학을 평전의 저자는 좀더 세분화하여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성철학(誠哲學), 중용철학(中庸哲學), 생철학(生哲學), 실학철학(實學哲學; 윌리엄 제임스와 존 듀이 등의 실용주의까지)이 그것이다.


오늘날 철학의 유사상품이나 파생상품은 많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철학과 철학함은 드물어 보인다. 철학함은 단순히 빛나는, 번득이는 지혜를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철학자의 삶으로 구현해 보임으로써 그 철학(함)을 입증하는 데까지를 포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관성과 실천성을 겸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삶에 녹아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사유능력을 통한 엄밀한 비판정신 또한 살아 있어야 한다. 비판은 화자의 모범적 시범이 수반되지 않으면 결국은 비난일 수밖에 없으니, 비판정신이 살아 있는 철학을 이어나가고, (철학자가) 죽어도 그 철학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 생명력, 삶과 뜻에 정성을 다하는 성의(誠意)가 있어야 한다. 허언(虛言)을 하지 않고 알맹이가 있는 삶인 무실역행(務實力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며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중용철학, 곧 절제와 지족(知足)도 중요하다. 이것이 모두 이당에게 해당한다. 


‘성실’한 삶을 가르친 이당


사람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 당연한 것인데도,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그것에 정성을 기울이고[誠]이고 힘쓰는[務實力行] 생생한 삶[生]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시대는 말과 행동이 부족하기보다 오히려 차고 넘치는 시대이기 때문에 풍요속의 빈곤감이 더욱 커진다. 사람들의 행동이 나날이 그악스러워지고, 해마다 고립되어 가는 까닭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각자의 삶을 올바른 인생으로 완성시키면서, 또 인생이 행복해지는 데로 나아가는 것이 되려면, 그 모든 것이 ‘중용’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중용’은 사실상, 어려운 것 가운데서도 어려운 삶의 자세이다. 그러나 또한 중용은 가까운 데서, 낮은 데서,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 곳곳에서, 한가운데서, 작은 데서,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당은 그 점을 알려준다. 그 점을 깨닫게 한다. 그 길로 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과 동력을 준다. 


사람은 저마다 삶의 행복을 꿈꾼다. 생각을 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다. 불행하려고 사는 사람은 없다. 사회나 국가도 그 사회와 국가의 안녕과 질서, 그리고 평화를 꿈꾼다. 다른 말로는 사회와 국가의 행복이다. 물론 이당이 말한 ‘올바로 사는 삶’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행복한 삶의 필요조건이다. 철학은 행복한 삶(eudaimonia)의 길을 지시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행복한 삶은 좋은 삶, 참살이와 동전의 앞뒷면이다. 그래서 철학함은 나를 먼저 반성하고 타자를 배려하며 세계를 전망하여 참다운 관계를 설정하는 데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당의 철학은 생로병사(生老病死) 전체를 관조하면서 충실, 만족, 충족, 자족하라고 말한다. 그 처음과 끝은 관조적(contemplative) 삶에 닿아 있다. 시민이, 서민이, 민중이, 민초가 일상에서 중용을 찾고 중용을 살아가는 가까운, 쉬운, 평범하고도 비범한 길이다. 


이당은 이 모든 철학함의 원리를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철학함으로서의 공부, 삶의 원리에 대한 공부로서의 철학은 곧 위기지학과 이음동의어이기도 하다. 수단으로서의 공부나 처세로서의 철학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독실(篤實), 무실, 결실이 완숙해지면,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 되고 풍요로움을 나누고 더불어 행복하는 길로 물 흐르듯 흘러간다.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서의 공부나 철학은 필연적으로, 자연스럽게 시대적 살핌으로 나아가는 까닭이다. 철학의 쓸모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말만이 아니다. 말을 이루어야 한다[言+成=誠]. 이당의 철학에서 유독 ‘성’(誠)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당은 자신의 저서 『키에르케고르』(1967)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인생의 자전 제1장에 무슨 단어부터 먼저 쓰겠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성실’(誠實)이라고 대답하겠다. 나는 인생을 성실하게 살고 싶다. 일을 대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나, 나 스스로를 대할 때나, 나는 성실하기를 힘쓴다. 우리가 첫째로 꼽아야 할 인생의 공부과목은 성실하기 공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이당 안병욱의 생철학을 고백적으로 잘 드러낸 말이다. 오늘의 우리 삶이 첨단화하고 복잡다단해진 만큼 성실 이상의 정보와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 정보와 기술은 결국 성실, 성실한 공부로서 갈무리하지 않으면 백해무익할 분이다. 그런 점에서 성실이야말로 최신의, 최고의 처세술이기도 하다는 점을, 그러므로 어떻게 성실할 것인지를 이당의 생애, 이당의 철학은 지시한다.


철학평전, 안병욱의 인생을 철학으로 톺아 가다!


[안병욱 인생철학]은 안병욱 평전이되, 그의 생애사를 쫒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을 시종일관 톺아간다. 그러나 그의 철학이 곧 그의 삶이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그의 생애를 좇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그러기에 ‘철학 평전’이다. 누구에게든 ‘인생철학’은 있게 마련이지만, 철학자의 생애를 통틀어 ‘인생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아가, 그 철학자의 평전을 ‘인생철학’이라고 명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사에서 손꼽히는 철학자이자 스승으로서 이당의 인생을 녹여내었기에 ‘인생철학’이고, 오늘 철학이 갈급한 이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발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인생의 철학이기 때문에 ‘인생철학’이다. 


그는 “철학이란 죽음의 연습”이라고 하였고, 다른 곳에서 “청무성(聽無聲)”을 이야기하였다. 죽음이 들려주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을 끊임없이 되뇌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이 아닐까? ‘죽음’이란 나를 내려놓는 일이다. 죽음의 순간에서야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나를 내려놓고, 비워가고, 걸어가는 것, 그렇게 가벼워지고 가벼워져서, 마침내 하늘로 날아올라 원시(元始)의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말이 아닐까? 붙잡으려고, 집착하면 할수록 멀어지고, 희미해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 아닐까?


저자는 이당이 쓴 수많은 글들은 물론이고, 그가 공부한 동서양의 철학자들의 사상과 이당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촘촘히 뜨개질하여 ‘이당 안병욱의 철학, 철학자 안병욱의 사상’을 생생하게 되살려 놓았다. 저자(김대식)는 “이 평전은, 그의 아호가 뜻하는 것처럼 철학의 기쁜[怡] 터[堂], 행복한[怡] 철학의 집[堂]을 짓기 위한 초석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이제 이당의 더 큰 철학의 집을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그의 철학적 삶을 이어나갈 동학(同學)들도 말이다.”라고 밝힌다. ‘삶’이 ‘생활’이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리는 이 시대에, 이당의 철학의 빛을 따라 살아갈 수 있다면, 행복한 삶, 아름다운 ‘생활’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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