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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07. 2021

악의 일상성 - 한 죽음의 경우

[잠깐독서-044] [사회는 왜 아픈가]에 기대어 


책 속에서
집단학살이 일상적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악이 생각 없는 평범한 일상 안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는데 세상은 왜 평화롭지 않을까? 그 이유를 이렇게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통찰에서 도움을 얻어 보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으로 만들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악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왜 평범하다고 표현한 것일까? ‘악의 평범성’은 이제는 두루 알려진 문장이 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평범한 듯 다가오는 악의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폭력성을 제대로 분석했느냐 아니냐는 차치하더라도, 악이 종종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평범한 현실 속에 기생하며 증식한다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의 실질적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이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며 반복적으로 진술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히만이 엄청난 사태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하는 데 무능력’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홀로코스트라는 전무후무한 폭력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프리모 레비(Primo M. Levi)가 증언하듯이, 홀로코스트 책임자들은 ‘학살’이 아니라 ‘최종 해결책’, ‘강제 이송’이 아니라 ‘이동’, ‘가스실 살해’가 아니라 ‘특별 처리’ 등등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살인 행위가 사무적 행정 절차로 둔갑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전무후무한 폭력의 책임자들은 머릿속으로 사람을 사물화하고 인간을 일상적 행정 처리의 대상으로 삼았다. 


살인 행위를 책상에서 행정적으로 처리하던 이들에게는 집단학살이 일상적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악이 생각 없는 평범한 일상 안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찬수, [사회는 왜 아픈가: 자발적 노예들의 시대] 


[잠깐독서-044] [내 생각] 


한 입양아가, 사회와 관계기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양부모로부터 '아동폭력'에 시달리다가,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이 사태에 즈음하여 전문가들이 이렇게 조언한다.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가정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고, 아동의 보호와 구조를 우선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맞는 말인가?

오늘의 긴급구호문제는 '지금 폭력에 노출된 아동을 구조'하는 일이지만,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가정'이 파괴된 데 따른 것이다.  가정의 아이를 가정에만 맡겨 두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가정에만 맡겨 두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아이'가 그 (양)부모만의 아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가정'이 그 가정만의 가정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가정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틀에 더욱 얽매여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가정-개벽이다!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고, 위험에 처한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우선 급한 불을 끄는 것에 불과하다. 급한 불을 끄는 데에만 몰두하다 보면, 그렇게 우리는 이렇게 한 걸음씩, 디스토피아로 갈 뿐이다.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것이나, 자살방지 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하는 것이나, 중대재해 책임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제정하는 일이나, 이제 곧 가시화될,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개개인의 삶의 방식을 통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일이나, 점점 더 법과 제도를 강화하는 것은, 마치 내성이 생긴 질병에 항생제 투여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는 일과 같다. 해마다 생산량이 줄어드는 토지에, 화학비료와 - 농약 투여량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는 일과 같다. 


지금 우리는, 이처럼, 악의 재생산의 악순환 고리 속을 맴돌고 있다.  맴돌면서, 더욱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다.


우리 삶의 요소요소에, 악은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웃는 얼굴로 자리잡고 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방패로 나날이 늘어나고, 다채로워지고, 지능화화고, '더 일상적'이 되고, 더 상식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종기의 뿌리를 뽑지 않는 한, 종기는 계속 재발하고, 옮겨다니며, 범위가 넓어질 뿐이다. 종기의 뿌리는 무엇인가? 마음이다.

'긴급구호조치'를 게을리해서도 안 되지만, '긴급구호조치'로서 할 일을 다했다고 손 털고 돌아서는 것은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일이기 십상이다. 그렇게 '긴급구호조치'를 거듭, 거듭해 오는 동안에 우리 세계는 지옥이 되어 왔고, 되어 간다.   


내(네)가 할 일은 긴급구호조치에 넋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개벽하는 일이다.

마음에서부터 개벽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단히 '종교스러워' 보이고 허망해 보이지만, 내가 아는 한, 마음이 정답이다.

마음이 개벽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지금, 여기, 네(내) 마음부터 개벽해 나가야 한다!

다시개벽이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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