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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1. 2021

시천교조유적도지

[잠깐독서-050] [신간][시천교조유적도지]

[이 책은]

동학 계열의 신종교로 1905년을 전후로 ‘천도교’와 ‘분파’하였던 시천교 계열에서 간행된 ‘초기 동학 역사서’이다. 그동안 학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를 현대어로 역주하였다. ‘도설(圖說)’이라는 이름대로 초기 동학 역사를 70개의 그림[圖]으로 표현하고 거기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다. 다른 동학서와 구별되는 특징은 수운-해월에 이어 구암 김연국을 ‘동학교조’의 정통으로 세운 점과 시천교를 ‘친일파 교단’으로 자리매김한 이용구와 송병준까지 이어지는 ‘송파(宋派)시천교’ 계통의 관점에서 쓴 책이라는 점이다. 또한 ‘유적(遺蹟)’이라는 이름대로, 동학 교조들의 신이(神異)함만이 아니라 초기 동학의 제도와 종교적 활동까지를 두루 포함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이후 계속해서 간행될 이 시기 여타 동학서(東學書)와 함께 초기 동학사(東學史)를 더욱 풍부하게 해 준다. 동학의 고전(古典)을 역주해서 간행하는 ‘동학네오클래식’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시천교조유적도지]의 제1도 제세주(수운 최제우) 진상(왼쪽)  / 제10도 상제가 영부를 내리다 (오른쪽)

[책 소개]

1860년 창도된 동학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겪은 이후 절멸적 위기 상황에 처해, 교단의 진로를 새롭게 모색하게 되었다. 도통(道統)의 계승 관계로 보면 수운-해월까지 단일하게 계승되던 동학교단은 해월 사후(死後) 동학의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또 어떻게 개혁해 나갈 것인지를 두고 여러 갈래의 모색을 하였다. 결국 동학교단 내부의 여러 주체들은 ‘근대’와 ‘외세’와 어떻게 관계설정을 할 것인지를 두고 분파(分派)를 겪게 된다. 


동학의 정통을 가장 폭넓게 계승했다고 하는 천도교는 해월 이후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1861~1922)의 도통(道統) 계승을 주장하며, 근대적 교단 체제로의 재편과 자주적 근대화의 길을 모색하는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손병희의 핵심제자였던 이용구는 손병희와 달리 친일노선을 바탕으로 하여 동학-시천교(侍天敎)로 이어지는 새로운 분파를 형성하였다. 이용구(海山 李容九, 1868~1912)를 친일 노선으로 견인한 이는 송병준(濟庵 宋秉畯, 1858~1925)이었다. 이 두 사람은, 의암 손병희와 함께 해월의 신임을 받은 구암 김연국(龜菴 金演局, 1857~1944)을 끌어들여 교단 분립을 감행하였고, 다시 구암 김연국이 ‘상제교’를 분립하여 나간 이후에도 계속해서 ‘시천교’를 고수하며,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한일병탄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행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진행된 것이 바로, 시천교(侍天敎)라는 신종교 교단을 동학의 정통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이었다. 초기에는 동학 교단의 물적 토대는 물론 인적 토대까지 시천교에 쏠려 있었으나, 친일노선과 자주노선의 차이에 따른 명분과 ‘의암 손병희’와 ‘이용구’라는 인물 사이의 정통성과 지도력의 차이에 의하여 그 세력관계는 급격히 천도교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동학의 정통 계승 관계에 대한 판가름은 쉽게 마무리가 되어 갔다. 

시천교가 천도교에 대항하여 동학교단의 정통성을 다투던 시기에는 이를 입증하고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교서들을 간행하였는바, [시천교조유적도지]는 그중 대표적인, ‘시천교 중심’의 사서(史書)이다. 교조(敎祖)란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崔濟愚)와 그 도통(道統) 계승자인 최시형(崔時亨), 그리고 의암 손병희(孫秉熙, 천도교의 경우), 구암 김연국까지를 일컫는 명사이다. 


[시천교조유적도지]는 수운 - 해월 - 구암으로 이어지는 도통 계승과, 그 이후 해산(海山) 이용구, 송병준까지를 포함하여 기술한 동학 초기 역사서이다. 이 역사서는 초기동학의 역사를 ‘도설(圖說)’로써 기록하고 소개한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러나 ‘한일합병’ 직후 시천교의 용도가 다하고 일제로부터 토사구팽되면서, 시천교단 자체의 몰락과 더불어 이 책도 또한 거의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거의 사라져 버렸다. [도원기서(道源記書, 1880)]라는 초기 동학사가 1970년대 이후에 발굴되어 동학사 연구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온 이후에도 이 책에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제 ‘동학네오클래식’ 시리즈의 하나로써 이 책을 간행하는 것을 시발로, 시천교, 상제교 교단의 역사서에 대한 본격적인 간행이 이루어지면서, 동학 연구의 폭과 다양성이 좀 더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교단 계승 관계의 정통(正統)을 논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 근현대사의 원형이 형성되던 시기에, 한편으로 동학 창도 과정을 정리하는 ‘또다른’ 관점과 태도를 이해하고(수운~해월 시기),  친일노선과 자주노선의 최전선(해산~제암 시기)에서 간행된 초기 동학역사서 중 한 권은 그 자체로 한국사 연구의 소중한 사료로서 자리매김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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