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056
- 근대 한국종교, 세계와 만나다, 18~21쪽
정용서의 박사학위 논문 <일제하·해방후 천도교세력의 정치운동>(2010)에서는, 해방 직후에 천도교 이론가인 이돈화가 쓴 [당지(黨志)]와 [교정쌍전(敎政雙全)]을 근거로 천도교는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족 자주에 입각한 ‘세계주의’와 ‘세계공화’를 지향했다고 지적하였다. 여기에서 ‘세계주의’란 ‘세계를 일가(一家)로 하여 각 민족들이 공존공영의 생(生)을 도모하는 주의’를 말하고, ‘세계공화’는 ‘해방된 민족들이 세계 국가의 단위가 되어 유기적 연방 상태로 사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천도교는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를 동시에 주장한 셈인데, 이러한 지적은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종래에 ‘민족운동’이나 ‘민족종교’같이 주로 민족이라는 틀에서 논의되던 천도교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아울러 천도교의 세계주의는 같은 개벽종교인 원불교에서도 주창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가령 원불교의 제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1900-1962)는 세계주의와 세계일가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종사(=원불교 창시자 소태산)는 우주 만물을 한 집안 삼으셨나니, 이가 곧 ‘세계주의’요 일원주의”다. “우리 대중들은 먼저 각자의 마음에 ‘세계일가(世界一家)’의 큰 정신을 충분히 확립”하자.
그런데 천도교나 원불교의 세계주의는 단지 ‘민족’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즉 민족이나 국가의 조화나 평화를 추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점은 [당지]나 [당론]보다 20여 년 전에 저술된 이돈화(夜雷 李敦化, 1885-1950)의 [신인철학]에 잘 나타나 있다. 1920년대에 천도교를 대표하는 이론가였던 야뢰 이돈화는 1931년에 동학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인철학]을 간행했는데, 이 책의 첫머리에 소개되는 ‘한울’의 우주론은 ‘세계일가(世界一家)’라는 인식이 단순히 민족 단위를 넘어서 우주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원불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산 송규의 법문집을 모은 책 [한 울안 한 이치에](1982)나 원불교에서 발행하는 <한울안신문>에서의 ‘한울’은 인간과 만물이 지구라는 하나의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한 가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천도교와 원불교에서 사용하는 ‘한울’ 개념은 현대적으로 말하면 ‘지구일가’나 ‘지구촌’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울’에는 인내천(천도교)과 일원주의(원불교)의 인간관과 우주론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한편 ‘한울’ 개념은 ‘천지만물을 하나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유학에서 말하는 ‘만물일체사상’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유학에서는 인간과 만물 사이의 기(氣)의 차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분의 구분, 중국과 외국 사이의 문화적 우열 등을 전제한 상태에서 정감상의 일체를 추구한다면, 천도교나 원불교의 ‘한울’ 개념은, ‘모두가 하늘이고’ ‘모두가 부처이다.’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이, 존재론적 차원에서 만물일체를 인정하고, 나아가서 ‘생태’(동학·천도교)와 ‘은혜’(원불교)의 관점에서 인간과 만물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