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의 철학, 동학
6. 동학 수행의 유형
(1) 종교와 순례
순례는 대부분의 종교에서 중요한 종교 의례로 여겨진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또는 ‘하나님’과 관련된 땅을 순례하고 그 유래를 알아봄으로써 예수 또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목적으로 '성지'순례를 시행한다. 또한 역사상 나타난 수많은 ‘순교’의 땅을 돌아보는 것도 순례의 중요한 유형이다.
기독교의 '성지'순례는 예수 이전의 유대교 전통에서부터 비롯되며, 시대와 장소에 따라 유형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필수적인 종교 의례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경우에는 예루살렘을 비롯한 ‘예수’ 관련 성지뿐 아니라 국내에도 수많은 ‘성지’가 있고, ‘성지순례’가 이루어진다.
이슬람에서 성지순례는 ① 샤하다(Shahada,신조 암송), ② 살라트(Salat, 하루 5회 기도), ③ 사카트(Sakat, 구제), ④ 사움(Saum, 라마단금식), ⑤ 하지(Hajj, 성지순례)로 구분되는 5대 종교 의무 중 하나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모든 모슬렘(이슬람신도)들은 일생에 반드시 한 번은 메카와 그 일대를 순례하게 되어 있다.
이슬람의 성지순례는 정해진 기간에 하게 되어 있어, 순례 기간이 되면 메카에는 수백 만의 모슬렘들이 모이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한다. 또 이슬람의 성지순례는 성지를 돌아봄으로써 신앙심을 굳게 하고 영적으로 더 한걸음 나아가게 하며 여행을 통한 인내와 헌신을 배우게 한다.
불교의 경우도 부처님과 관련된 성지를 찾는 것에서부터 역사적으로 형성된 각종 불교 유적지를 순례하는 것까지를 모두 성지순례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천축국’이라고 불리던 인도 순례나 중국 각처의 불교 유적지를 순례하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던 신라시대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역시 국내의 유명 사찰을 순례하는 것 역시 중요한 종교 수행의 한 방법이다.
(2) 동학/천도교 성지순례
오늘날 천도교에서도 성지순례는 중요한 종교의례이다. 해마다 각 교구별 또는 연원별로, 또는 ‘대학생단’과 같은 단체나 몇 명으로 꾸려진 순례단이 성지와 사적지*를 순례하고 있다.
* '어디까지'가 동학(천도교) '성지'이고 '무엇'을 동학(천도교) '사적지/유적지'로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수련, 수도, 수행, 수양이라는 말만큼이나 복잡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천도교단이 아닌 동학기념 단체에서 '경주 용담정'을 '동학 사적지'로 보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 같은 점이 있다. 이 문제는 별도 논구를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성지순례란 성지가 만들어진 다음[=그곳을 성지라고 할 만한 역사가 전개된 후에]에 그 장소를 방문함으로써 스승님/성인의 숨결을 느끼고, 성인/스승님의 가르침을 좀 더 실감 있게 이해하고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학의 역사 기록에 나타나는 최초의 성지순례는 의암 손병희 선생이(수운 선생이 살아 계실 때에 해월 선생을 비롯한 제자들이 용담정을 수시로 드나든 것은 아직 성지가 만들어지기 전이므로 좁은 의미의 성지순례의 범주에서는 제외했다.)
1909년 의암 손병희 선생은 통도사 내원암으로 특별기도를 가면서 최준모, 임명수, 조기간, 김상규, 윤구영, 박명선 등 6명을 대동하고 내원사 초입의 적멸굴을 탐방하였다. 이곳에서 의암 선생은 다음과 같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일찍이 양산 통도사에서 수련할 때에 활연히 '옛적에 이곳을 보았더니 오늘 또 보는구나' 하는 시 한 구를 불렀으니, 이것은 대신사의 옛적과 나의 오늘이 성령상 같은 심법임을 말한 것이니라.[余嘗 梁山修煉之時 豁然得 「昔時此地見 今日又看看」之詩句 是大神師之昔時余之今日 性靈上同一心法立言]
여기서는 '양산 통도사에서 수련할 때'라고 에둘러 표현하였으나, 정확하게는 통도사의 말사인 내원암(지금은 '내원사')에 딸린 수도장인 적멸굴을 둘러보면서 지은 시가 '옛적에~'라는 시다. 이 시는 동학 천도교의 주요 교리인 "성령출세"를 감각적으로 설명해 주는 결정적인 시이기도 하다.
이어 1911년에는 춘암(당시 도주) 선생 이하 총부 간부와 보성학교 교직원과 학생 등 200여 명을 인솔하고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수운 선생의 탄신지인 경주 용담의 가정리와 용담 성지, 그리고 수운 선생 묘소를 참례하시는 등으로 순례하셨다.*
필자는 이 성지순례를 종교 의례에서 범위를 더 좁혀 수련의 한 방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의 성지순례의 기원은 수운 선생 득도 이후나 순도 이후가 아니라 수운 선생께서 구도의 일념으로 "주유천하"하는 데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오르게 된다.
즉, ‘성지순례’의 의미가 ‘스승님들의 유적’을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구도’의 일환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성지순례의 창시자는 바로 수운 선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수련으로서의 성지순례’는 바로 그 수운 선생의 구도법을 계승하는 것이 된다.
수운 선생은 득도 이전에 주유천하(=순례)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방방곡곡행행진(坊坊曲曲行行盡) 수수산산개개지(水水山山個個知)’라고 표현했다. “유도 불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라는 ‘천도 대각’의 결정적인 전제 조건이 되는 깨달음도 ‘주유천하’라는 ‘순례’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다음에 계속)
*수운 선생의 현재이 묘소가 정확한가 아닌가를 두고 동학 교단 내에서는 여전히 논란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다. 현재 천도교단의 최고 수장인 천도교 교령은 수운 선생의 묘소로 조성된 용담 인근의 '대신사태묘'를 공식으로 참례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해월 선생 묘소(6.2), 의암 선생 묘소(5.19)는 참례한다.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바로 이때(1911)의 의암 선생, 춘암 선생 동반 '성지순례'와 그때 남긴 사진, 어록 등이 한몫을 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훗날 다른 글을 통해 자세히 논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