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의 공부, 동학
이런 의미의 ‘초기 성지순례’는 수운 선생과 관련 유적지라는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순례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주어진다.
젊은 시절, 국토 순례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깨달음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순례'의 수행과 구도으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순례는 육체를 극한 상태로까지 몰고 가는 고행의 의미와 방방곡곡의 문물과 인심을 체험하며 알아가는 지적 탐구 작업의 의미 모두가 있다. 따라서 이 성지순례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고 해외로까지 확장될 수 있으며(좁게만 따져 보아도 일본의 의암 손병희 선생 관련 사적지나 만주 일대의 천도교 교구터, 천도교인들의 독립운동 사적지가 포함될 것이다.), 구체적인 장소를 염두에 두지 않는 ‘도보순례’ 그 자체 역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연례적으로 실시되는 ‘대학생국토종단’ 행사의 경우 참가 신청의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고, 이 순례에 참가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한 차원 높아지는 경험을 하는 사례를 위시해서, 최근 ‘순례’는 뚜렷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한편, 이것은 또한 선사 이래 우리나라 현묘지도(玄妙之道)의 수행의 내용과 체계를 표현한 포함삼교(包含三敎)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현현(顯現)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동학이 다시 개벽의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깊이 이해하고 되살려야 할 수행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본래 의미의 성지순례에 역사적 축적 작업이 이루어져, 오늘날 우리는 동학 선현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성지를 찾는 일까지를 성지순례의 범주로 이해할 수 있다.
수련으로서의 성지순례를 비견하여 이해하는 데 불교의 만행(萬行)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도 하는 만행은 ‘하안거’ ‘동안거’ 등 좌법수련을 통해 깨달은 바를 여러 스승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점검 받는 의미와, 여행을 통해 접하는 여러 가지 경계를 통해 자기의 깨달음을 시험하고, 깨달은 바를 실천한다는 의의가 있다. 또한 만행은 하나의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고 그 다음 단계로 끊임없이 정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천도교의 성지순례도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다.
3) 성지순례의 사적 고찰
수운 최제우 선생과 해월 최시형 선생, 의암 손병희 선생과 춘암 박인호 등의 동학 천도교의 스승의 경우를 제외하고, 초창기 일반 도인들의 성지순례 가운데 기록상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간략하게 나열해 보면, 우선 언급한 대로 포덕 52년 의암 손병희 선생과 춘암 박인호 선생 인솔하에 교단의 주요 두목들이 성지순례를 한 것을 들 수 있다.
또 포덕 68(1927)년 여름 소춘 김기전 선생이 경주 용담 일대를 순례한 것(이때 수운 선생의 수양녀에 대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포덕 71(1929)년 중앙총부 차원의 순례단이 경주를 순례하고 신인간 통권 35호(1929.5)를 “성지순례 기념호”로 꾸민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 이후에도 주요 교역자 또는 교구 단위의 성지순례는 끊이지 않았고 그 기록들이 천도교회월보나 신인간 등에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 있다.
최근 들어서는 삼암 표영삼 선도사가 수십 년 동안 전국에 걸쳐 성지와 유적, 사적지를 샅샅이 조사하여 해방 이후 성지순례의 기본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천도교 대학생단이 연례 도보성지순례를 20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또 천도교 서울교구(서울 종로구 소재)가 해마다 두 차례 이상 성지순례를 꾸준히 계속하면서 중요 성지·사적지에 안내판, 표지석을 세우는 사업까지 병행하고 있어 고무적인 성과를 낳고 있다. 그 밖에도 청년회중앙본부 주최의 신년 도보 순례, 대신사의 압상(押上) 행적을 좇아 서울(과천)에서 경주를 거쳐 부산에 이르는 국토 종단 순례 등 다양한 형태의 순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성지순례 역사와 유형 그리고 각각의 의미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앞으로 깊이 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동학의 공부법 (5) https://brunch.co.kr/@sichunju/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