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교사일지 1
신규 교사 시절 당시 나는 방어능력이 제로에 가까웠다. 들으며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만 있을 때가 많았는데, 돌이켜 보면 대개가 헛소리였다. 당시 만났던 선배 경력 교사가 있다. 나와 성격이 잘 맞는 편은 아니었고, 늘 인생사 조언을 해서 피곤했지만 결코 나쁜 분은 아니었다. 10여 년이 지나 나는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라는 책을 썼고, 어딘가에서 그 분이 내가 쓴 책을 읽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왜인지 나를 보기 불편하다는 말도 함께 전해졌다. 안타깝고 죄송했지만 내가 짊어지고 갈 부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 분을 직접 다시 만났다. 내가 어엿한 경력자가 되었다며 신기해했고, 어떤 전환점이 있었는지 그 자신은 사회 운동을 하는 교사로 변신해 있었다.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지던 중 그 분은 돌연 내게 트레이드마크인 ‘인생사 조언’을 던졌다. 나로서는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결론이라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고 말했는데 약간의 실랑이 후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래도 선배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좀 들어야지...”
왜인지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 분에게 나는 여전히 어리고, 미숙해 이끌어줘야 할 존재였다. 나이 어린 자는 들어야 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사가 도출한 명제는 진리였다. 눈을 뜬 사회의식과 운동가라는 타이틀도 개인 고유의 관점과 안목을 변화시키지는 못한 듯 했다. 인간은 변화하는가. 개인은 진보할 수 있는가. 상념 끝에 나는 조금 울적해지고 말았다.
‘변화와 진보’라는 말을 생각할 때 늘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아니다. 2017년 여름 당시 경북 교육감은 교사 연수 특강에서 “처녀 여자 교사들 값이 높다.” 라는 발언을 했다. 일부 연수생과 각종 진보 성향 단체들이 반발했다. 인간의 상품화와 여성을 수동적인 객체로 규정하는 가부장적 관점에 문제를 제기했고, 논란은 기사화되었다.
사실 12년 전 임용 합격과 동시에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은 당시 경북 교육감의 발언과 매우 비슷했다. 신규 교사 연수 때, 장학사들과 ‘소위’ 잘 나가는 선배 교사들은 우리들을 앞에 놓고 특권의식과 차별을 조장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여러분은 최고의 엘리트이자, 최고의 결혼 상대이다’, ‘중년 부부교사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다’. 그때 들었던 다음과 같은 농담은 지금 생각해도 비릿하다. ‘1등 신부감은 예쁜 초등 여교사, 2등 신부감은 못생긴 초등 여교사, 3등은 이혼한 초등 여교사’. 나는 졸지에 암소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공적인 장소에서 이런 저급한 말들이 오갔고, 기사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 후 10여년이 흘러, 일정 연수를 받던 경북 교사들이 의견란에 또박또박 쓴 문제의식을 기사로 읽었다. 그때 나는 가슴에서 파도 소리를 들었다.
느리더라도 철썩, 세상은 결국 철썩, 변한다 촤아아아아....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기술과 제도의 발달은 물론 일상적인 문화 역시 느리지만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9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 시트콤 ‘프렌즈’는 내 10대 시절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지만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많은 농담이 장애인과 성소수자 비하, 성차별, 성적 대상화, 인종 차별, 문화적 고정관념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2019년인 지금이라면 큰 논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 세상은 변한다. 지지부진, 지리멸렬, 시궁창 속 암중모색이지만 변하고 있고 결국 변할 것이다.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자주 극심한 허무감에 시달린다. 나의 말과 실천 사이, 나의 일상과 구조적 변화 사이의 간극이 바다보다 넓다. 더구나 요즘은 인류가 추구할 가치 예를 들어 지성, 인권, 환경, 평등, 인류애 등을 말하면 PC충이라거나 진보들은 모조리 가르치려 든다는 가시가 날아든다. 내게 헛소리를 남발했던 속물 선배들보다 내가 얼마나 ‘덜’한 속물이 되었는지 기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모든 게 허무해질 때 파도 소리를 기억한다. 느리더라도 철썩, 세상은 결국 철썩, 변한다 촤아아아아....긴 안목으로 세상을 보자. 세상의 진보를 향해 거는 나의 유일한 베팅이다.
* 이 글은 딴지일보에 실렸습니다. (2019-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