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교사일지 2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남학생들이 여자 후배 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고 희롱하는 자료를 만들어 공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며 자료를 돌려 본 이들 중에는 현직 초등 교사들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당사자들이 법적,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함은 물론이지만 저변에 흐르는 교대 특유의 문화적 인과관계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일반대학교를 3학기 동안 다니다가 수능을 다시 봐서 교대에 입학한 케이스다. 그래서 교대와 일반대를 자연스레 비교하곤 하지만, 사실 단순 도식으로 보기엔 문제가 있다. 일반대는 단과대별로 문화가 다양하고, 내가 다닌 대학이 모든 일반대학교를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대와 교대를 비교하는 부분은 필자 개인 경험의 특수성을 감안해 읽어주길 바란다.
내가 다녔던 일반대는 규모가 크고, 각 지역에서 학생들이 모여들며, 단과대 내 남녀 비율이 거의 같았다. 나는 주로 동아리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성별에 상관없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노는 경우가 많았다. 2년을 휴학하고 돌아온 언니,군기가 덜 빠진 예비역, 사회 운동에 심취한 선배, 운동권이나 민중가요라면 치를 떠는 친구 등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했다.
교대에 입학 후 학교 문화가 몹시 획일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남학생들에게 세보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세다’는 말이 나쁜 뜻은 아닐 수 있지만 이전 대학 친구들은 나를 늘 신선하고, 엉뚱하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왜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해도 일반대에서는 '재미있는 사람', 교대에서는 '무서운 사람'이 되는지 궁금했다.학교에서 짜준 시간표대로 같은 반 학생끼리 수업을 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남자들의 대표적 악몽이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이라고 하던데, 나는 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한 악몽을 매일 꾸는 것 같았다.
가장 놀라웠던 건 교대에 '남자모임'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취미나 관심사가 아닌 성별로 모임이 생길 수 있는지 의아했다. 그 모임에서 오간다는 대화와 관례, 대면식, 얼차려 문화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교대의 남자모임은 교직 사회의 ‘남교사회’로 발전한다. 같은 지역 남교사들끼리 모여 배구하고, 술 마시고, 승진 정보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는다. 남자들끼리만 모이면 특유의 서열 짓는 수직 질서가 강하게 작용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발언도 심심치 않게 오간다고 한다.
어찌 보면 여초 교직사회에서 소수자인 남성들의 모임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소수 민족 모임, 성소수자 모임처럼 당사자들의 권익 신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부 남교사들의 고충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우리 지역처럼 여초 현상이 극심한 교직 사회에서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남교사에게 체육부장, 친목회장, 기피 업무를 맡기거나 과중한 역할을 부여하는 일이 있다. 이를 통해 승진에 유리한 포지션을 선점하는 남교사가 있는 반면 착취당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남교사도 있다. 또 남교사들의 결속이 만든 유리천장으로 피해를 보는 여교사들이 있고, 역으로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지만 정작 남교사회가 연대해 이와 같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나는 이번 서울교대 성희롱 사건을 성비 불균형이 탄생시킨 남자모임이 교대 특유의 폐쇄성과 맞물린 결과라고 본다. 교대는 규모가 작은 특수목적대학이다. 같은 과 친구들과 4년 동안 수업을 듣고, 졸업 후에도 선후배로 얽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남성의 비율이 낮아 응집력이 높다. 대열을 이탈했을 때 느끼는 심적 압박이 일반대학교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교대 학생 시절에 나는 남학생들이 내뱉는 자조적이고 패배적인 발언을 자주 들었다. ‘어차피 우리는 해봤자 안 된다’, ‘우리는 늘 (학점) 바닥을 깔아준다’ 등이다. 일단 3:7이라는 성비에서 밀리고, 교대 커리큘럼 적응과 과제 수행 등에서 (이유야 어찌됐든) 여학생들이 우수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에 관해 패배감이 깊은 남학생일수록 여학생들의 외모 품평을 대놓고 하는 모습을 보며 ‘약함’과 ‘악함’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곤 했다.
흔히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대상화한다고 말한다. 남자가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고, 부모가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실현시켜줄 도구로 아이를 대상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강한 사람은 상대를 대상화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엄마는 갓 태어난 신생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반면 신생아는 엄마를 대상화하기 쉽다. 그들에게 엄마는 이성과 감성을 가진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먹을 것을 주고 똥을 치워주는 도구에 가깝다. 여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자료를 만들어 공유한 남성들의 폭력성 저변에도 무력감, 열등감, 위축된 자아가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성희롱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일벌백계를 넘어 근본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예비교사들을 양성하는 교육대학교가 자유롭고, 다양한 인격이 존중되고, 젠더감수성과 사리분별력이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기에 적합한 환경인지에 대해 깊고 정직한 고민이 필요하다.
* 이 글은 딴지일보에 실렸습니다. (2019-03-18)
CARMEN MARTÍNEZ TORRÓN/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