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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Apr 17. 2020

궁극의 교육방법

최근 온라인 수업 준비 과정에서 교사들 사이에 ‘통일’을 외치는 소리가 크다. 인디스쿨을 비롯한 각종 초등교사 커뮤니티에 이런 요지의 글이 인기리에 공유되기도 했다. "플랫폼과 콘텐츠를 통일하라. 절대 튀지 말고, 너무 잘하려 하지 말라".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초등 교직 사회는 원래 서로 비교하고 견제하는 문화가 강하다. 수업이나 생활 지도는 물론이고 교실 뒤 게시판 꾸미기에조차 유무형의 경쟁과 압력이 발생했다. 다소 극적인 경우지만, 다른 교사들에게 아이디어를 뺏기지 않도록 일부러 환경 심사 마지막 날까지 게시판을 비워두고 전날 밤 모두가 퇴근한 뒤에야 게시물을 거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나만 잘하고 싶다’와 ‘비교되게 너만 잘하려고 하지 마라’ 는 구조적으로 비슷한 불안과 욕망이다. 이런 목소리는 의욕적인 교사의 사기와 열정을 꺾고, 게으르고 무능한 교사에게 면죄부를 주는 방식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교직 사회에 ‘평균 정도만 하라, 튀지 말라’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는 다양하다. 현장과 정책이 분리되고,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고, 교직에 대한 편견이 만연하고, 일부 학생과 학부모의 무책임에 대한 보호막은 부재하니 보신주의만 강해진다. 물론 교사집단 내부의 문제도 있다. 흔히 교사들 특유의 좀생이 기질을 지적하는데 내 생각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소심함을 더욱 증폭시키는 환경이 더 문제다.


교사들이 서로를 비교하며 자존감과 창의성을 갉아먹지 않으려면, 최고의 교육방식이 존재한다는 신화부터 깨야 하지 않나 싶다. 백 명의 교사에게는 백 가지의 교육적 해석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교육방법의 다양성이 교육이 본래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란 뜻은 아니다. 나는 교육에도 엄밀한 규칙이 있고, 타당한 교육과 그렇지 않은 교육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치 않는 교육의 본질과 정수가 있다고도 믿는다. 다만 내가 볼 때 변치 않는 교육의 본질과 정수는 늘 이렇게 말해왔다. 궁극의 교육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선택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끝없는 탐색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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