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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Feb 03. 2020

냄새, 소음, 시그널

학교를 그만두고 싶던 순간들이 여러번 있다. 감각적으로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는 두 번째 학교에서 첫날 화장실에 갔을 때였다. 내가 머물던 꼭대기층 화장실은 춥고, 습하고, 음산하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갑작스레 이런 생각을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거만하게 이런 생각까지 했다. ‘나는 이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


학교 급식실에 처음 간 날도 큰 충격을 받았다. 소음이 어마무시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수만 마리의 왕벌들이 일제히 귀로 달려드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맛도 없었다.(여담이지만 이 부분은 내가 유난스러운게 아니었다. 실제 몇 년 후 학교에서 대형 급식사고가 터졌다). 어쨌든 그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나는 이보다 좋은 환경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  

학교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위의 예들은 감각으로 느낀 사례이고 이 외에도 읊자면 끝이 없다. 3-4년차 때쯤, 나를 비롯한 소수의 저경력 교사들만 학년과 업무 독박을 쓰고 죽어라 일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떤 교사들은 오후 시간에 티타임을 갖고도 칼퇴근을 하는데, 어떤 교사들은 티타임은 커녕 학생들 보내고 죽어라 일만 하다 밤이 되어 퇴근해도 다음날 수업 준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는 열심히 일했고 학생들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뿌듯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소소하게 인정도 받았지만 문득 허무해지곤 했다. 내 에너지의 8할을 학급운영과 학생과의 관계맺기에, 2할을 행정업무에 쏟아도, 그 2할을 기준으로 나는 평가받았다. 더러운 싸움 끝에 깔끔하게 정리된 한 장 짜리 기준안을 볼 때마다 모든 게 부질없었다.


부질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그런 '보상'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깟 일 좀 더하면 어떻고, 낮은 평가를 받으면 어떠냐고. 교사라면 수업 전문성 신장과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만으로도 보람차게 살 수 있지 않냐고 말이다. 궁극의 즐거움이 그곳에 있는 건 맞다. 그리고 실제 오직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나는 아닌 것 같다. 액수와 등급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다.


평범한 나는 지금 내가 옳은 길로 제대로 가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다. 평범한 나는 내가 꿈꾸는 훌륭한 교육자의 모습이 변방 괴짜의 반항이 아닌 존중받는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범한 나는 내가 비웃는 승진가산점의 노예들이 아닌, 내가 존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발언권을 갖는 세상의 일원이고 싶다. 인정욕일수도, 권력욕일수도, 교육에 대한 애정과 열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시그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처음 발을 들였던 그 화장실과 급식실에서 내가 받은 시그널들은 이랬다. '이 곳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이 곳에는 빛이 들지 않는다', '너의 관심사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 냄새나 소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교육에는 그런 것들이 늘 더 큰 영향을 발휘한다. 그것들에 등급을 매겨달란 게 아니다. 존재를 인정하고, 빛을 비추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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