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기

by 김현희

무라카미 하루키는 ‘잡문집’에서 "음악이 가진 최대의 훌륭함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가치판단의 축적이 인생을 만들어 간다고도 했는데 매우 공감한다. 내 경우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 정확히 말해 ‘내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음악과 영화를 통해 길렀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이던 시절 나는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을 싫어했다. 노래 자체의 느낌은 단순히 내 취향이 아닌 정도였지만, 어른들이 이 노래를 우리가 불러도 좋은 대중가요로 허가하고 인증한 느낌, 하얀 옷을 입은 어린이들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예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이 지겹고 불편했다. 또 여러 음악들을 듣는 과정에서, 캐치한 노래는 누구든 쉽게 사로잡지만 나는 그런 음악에 금방 질린다는 것, 내가 건전하고 계몽적인 멜로디와 가사를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란 것도 알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모든 가치판단의 기억이 내가 되었다.


직장인이 된 이후, 내게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의 차이를 구분했다. 나는 꽉 막힌 원칙주의자보다 미꾸라지같은 기회주의자들이 더 싫다는 걸 알았다. 둘 다 함께 지내기는 힘든 스타일이다. 하지만 전자에게는 일말의 인간적 연민과 존중, 경우에 따라 존경심까지 생기는 반면 후자는 기생충처럼 보였다. 어쩌면 나란 인간의 어딘가에도 흐르는 미꾸라지 본능을 대면하기 두려운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이 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 어디에서나 좋은 사람은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적어도 내게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둥글둥글하다’, '살갑다'는 세평을 듣기 쉬운데 이런 분들은 ‘욕먹는 것, 책임지는 것, 상상하는 것'을 싫어하고 의외로 겁쟁이가 많다. 내 주위에서도 심심찮게 발견한다. 모든 교원단체를 응원한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거나, 비리 교장을 '정이 많은 분'이라 칭하며 학교 밖에는 더 큰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많다고 물타기를 하는 부류다. 이들은 삼성 이재용의 불법경영권 승계 의혹에 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상황에 서도 사람 좋은 얼굴로 현실의 벽을 논하고 합리성을 주문한다. 한국에서는 법 위에 재벌이 있다는, 그 무엇보다 현실적이고 엄중한 명제는 외면하면서 말이다.


나로서는 나이를 먹으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가 점점 더 분명해진다. 다만 내게 좋은 것이 남에게도 늘 좋은건 아니란 걸 알게 되어 표현과 언행에 신중해질 뿐이다. 사람들은 좀 둥글게 사는 것도 좋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물론 무언가를 싫어하고 화를 내다보면 에너지가 소모되고 힘이 든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정말이지 내게 좋은 것, 더없이 아름다운 것들을 마주치면 더 깊게, 더 크게 감동한다. 지금 이곳에 살아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곤 한다. 나는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그 느낌을 잃고 싶지 않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