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by 김현희


너는 화를 잘 낸다, 고 가까운 사람이 말했다. 내가 맹하긴 해도 화가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가족들에게 물었더니 몰랐냐는 듯 대답했다. “너 아무것도 아닌 거로 짜증 잘내. 신나서 푹 빠졌다가 갑자기 싫증 내고.” 평소 나를 진중하고 침착한 사색가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대해 내가 평소 싫어하는 평론가가 남긴 한 줄 평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씀’)을 보고 무슨 개소리냐며 길길이 날뛰고 있는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런 문제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날뛴다.


얼마 전에 객관주의, 주관주의, 상대주의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빽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상대주의자인 상대방은 내게 왜 이견을 '틀렸다'고 보느냐고 따졌다. 나는 틀린건 틀린거라고, 세상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생각은 주관주의, 허무주의, 비합리주의로 우리를 이끈다고 말이다. 지나치게 흥분했던 것 같아 결국 사과했지만 솔직히 지금도 분노의 응어리가 남았다. 결국 리처드 번스타인의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라는 책을 주문해 기다리고 있다.


최근 일어난 사건들과 가까운 사람들의 증언에 비추어 볼 때, 내가 화가 많은 사람이란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화가 내 에너지의 일부이자 성장의 엔진이란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화가 많은 사람이 모두 나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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