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객관주의가 쓴 오명

by 김현희

객관주의는 오명을 썼다. 독재의 역사, 자민족 중심주의, 학생 시절에 지겹게 겪은 과도한 규제와 간섭의 경험이 나쁘지 않은 것을 나쁘게 보도록 만들었다. 우리에게 반드시 수호해야 할 가치가 있고,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려는 노력은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며, 세상에는 더 아름답고 더 유익한 생각과 관점, 예술 작품 등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반문할 수 있다. 아름다움, 고결함, 가치로움을 판단하는 기준을 누가 정하는가?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객관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는 걸 방해하고 특정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역사는 힘겹게나마, 합의에 기초한 자유로운 사회로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제아무리 유력한 정당이나 기업, 심지어 종교조차 설득이 필요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라면 반대 의견을 냈다고 철창신세를 지지 않는다.


물론 객관주의와 상대주의 모두 논리적이고 실천적인 난점들이 있다. 객관주의자들은 지식과 언어와 철학의 객관적 토대를 구축하려 노력했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 끝없이 실패해왔다. 시지프스가 받는 영겁의 형벌 수준이다. 반면 속절없는 상대주의는 우리를 자멸로 이끈다. 기계적인 상대주의 관점으로는 히틀러, 전두환, 4대 강 사업 등에 대해 우리는 어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도 내릴 수 없다. 자신을 상대주의자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실은 사상의 자유,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절대적으로’ 옹호한다. 진리가 상대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상대성을 진리로 본다는 점에서 자승자박이다.


중요한 건 상대주의와 객관주의를 통해 생산적인 의제를 만들고,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상대주의 덕분에 구조, 문화, 패러다임, 삶의 형식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이해하는 시선을 배운다. 자민족 중심주의와 끈질긴 편견,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끝없이 질문하고 회의하는 습관은 귀중한 자산이다. 객관주의자들이 엄밀한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 확고하고 보편적인 것을 찾아내고, 가치 판단을 내리는 열정은 매력적이다. 이러한 열정 없이 인류가 진보할 수 있을지 나는 매우 의심스럽다.


물론 객관주의와 상대주의의 균형, 이론과 현실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객관적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내가 볼 때 세상에 아무 말 대잔치는 이미 넘쳐난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의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 힘들더라도 치열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절충안이 아닌 제3의 지점을 찾아 진보하려는 노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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