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 때 5학년 담임을 맡았다. 뽑아 든 명렬표를 보니 어떤 남학생 이름 옆에 별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 학생은 예전부터 좋지 않은 소문이 자자했고 일화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힘들지는 않았다. 주목받고 싶어 하는 개구쟁이이긴 했지만 말로 설득이 가능하고, 의외로 섬세한 면이 많았다. 나와는 유독 합이 잘 맞아 1년 내내 재밌게 지냈다. 그 학생이 6학년이 된 후 새로 만난 담임과 크게 부딪친다는 말이 자주 들렸다. 침착하고 친절해 보이는 선생님이셨는데 성격이 잘 안 맞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그 학생이 담임 선생님과 싸우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선생님 차에 우유팩들을 집어던져 차를 우유 범벅으로 만들어버린 거다. 학교는 발칵 뒤집혔는데 나는 그 사건에 대해 듣자마자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이 터졌다. 차마 동학년 교사들 앞에서 웃을 수 없어 혼자 화장실에서 푸하하하 크게 웃고 말았다. 그 와중에 본체가 아니라 타이어에만 우유를 던졌다고 하는데 그런 뜬금없는 소심함도 내가 기억하는 그 아이 성격 그대로였다.
오늘은 중학교 교사인 친구 학교에서 학생 몇몇이 입에 물을 머금고 분무기처럼 뿌려대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엄중한 시국에 무슨 짓이냐며 교무실은 난리가 났다는데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또 푸하하 웃고 말았다. 그리고 다소 죄책감을 느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는 선생 하기에 적합한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오해는 마시라. 그 학생들은 잘못된 행동을 했다. 내가 그 학교 교사였어도 정색하고 엄격하게 지도했을 거다. 내가 얼마나 개방적이고, 여유 있고, 인권친화적인지 혹은 학생 시절 내가 얼마나 못지않게 짓궂었는지 자랑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이 든다. 제아무리 침착한 교사도, 제아무리 강력한 바이러스도 열네 살들의 야성과 장난기를 잠재우지 못한다. 이 엄중한 시국에 그 사실에 비밀스러운 안도감을 느끼는 나는 지나치게 낭만적인가? 코로나고 자시고 입으로 물을 뿜으며 깔깔대는 학생들, 그 모습에 길길이 날뛰는 선생들, 앞에서는 정색하고 뒤에 숨어 낄낄대는 나 같이 철없는 인간들. 내가 교사 짬밥을 얼마나 더 먹어야 철이 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모든 장면들을 숨 막히는 시국에도 칙칙폭폭 일상을 꾸리는 학교 풍경으로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