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첫인상

페북 2019.11.19

by 김현희

어떤 사람들은 내 첫인상이 차갑고 냉정하다고 한다. 어른들 뿐 아니라 간혹 학생들도 비슷한 말을 하니 (“처음에는 도도한 선생님인 줄 알았어요.”) 내게 뭐 그런 느낌이 있긴 있나 보다. 학생들은 며칠 지나니 재밌고 편해진다 하고, 어른들은 몇 개월 내지 일 년쯤 지나니 내 성격을 알겠다고 했다. 부러 하는 칭찬이겠지만, 알고 보면 시야가 넓고, 인간애가 강한 관대한 사람이라는 말도 듣는다. 오래 두고 내린 평가가 진짜가 아닐까 생각하고 싶지만, 요즘에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몇 년 후면 소위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날 잘 몰라서 하는 말이겠거니 했지만, 냉정하고 강해보이는 느낌도 내게 없는 모습은 아닐 거다. 사각지대가 가득한 학교라는 공간, 내가 치를 떠는 관료적 시스템, 냉소를 불러 일으키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관리자들, 미지근하고 비민주적인 학교 문화, 장기적인 전망이 보이지 않는 교육 정책들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감정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 감정들이 내 가슴에 10년 넘게 묻힌 땅의 기온은 거의 툰드라급이라, 내게서 어딘가 차갑고 냉정한 기운이 보인다면 근원지는 그곳이 아닐까 싶다.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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