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모르면

페북 2020. 07. 19

by 김현희

어젯밤 페북에서 충격적인 글을 봤다. 어떤 의사분이 쓴 장문의 포스팅인데 '전 모르겠습니다'로 시작해 '노란 머리 변호사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머리가 아프다'는 말로 끝난다. 개소리는 어디에나 있다지만 5천 개 이상의 '좋아요'와 1천 회 이상의 '공유'기록에는 놀라고 말았다. 내 뇌가 자동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켰는지 자고 일어나니 글쓴이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좋아요'를 누른 다수의 페친들 이름은 안타깝게도 아른거린다.


'미투'는 싫은데 감수성 떨어진단 소리는 듣기 싫고, 욕하고는 싶은데 명확한 시빗거리가 없다. 그러니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개인 사담으로 본질을 왜곡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지 머리카락 색 따위에 시비를 건다. 행간이 온통 수동공격성으로 가득한 글, 저따위 글에 뜨겁게 호응하는 페북생태계를 보니 나도 머리가 아프다.


사람들이 외치는 '결정적인 증거'의 유무, '4년의 의미', 김재련 변호사의 행적, 폴폴 풍긴다는 '기획의 냄새' 등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모르면 판단을 유보하고, 관찰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모르면 제발 그냥 입을 다물길.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살 수 없고, 공론의 장이 청정지역일 수 없겠지만. 최소한 구더기가 들끓는 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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