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세상은 어떻게든

페북 2020. 07. 22.

by 김현희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고 그 많지 않은 친구 중에서도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는 한 손에 꼽는다. 그래서인지 일터에서, 즉 같은 직장이라는 외적 요인이 강제하지 않았다면 사적으로 볼일이 없는 분들과 대화하다 놀랄 때가 많다. 나와 세상이 따로 굴러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알게 된 인상적인 소식은 요즘 젊은 세대들이 투자에 관심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대출을 받아 투자에 올인하는 교사들도 많다고 한다. 내가 깜짝 놀라 '아니 대출을 받아 투자한다고?'라고 묻자 동료가 말했다. 은행에서 푸는 돈을 굳이 받지 않을 이유가 없고, 은행 빚이든 수중에 있는 돈이든 디지털화된 숫자인 건 마찬가지이며, 우리 세대의 연금은 비루할 것이라, 나 역시 이제부터라도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말이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대화에서 나는 지금도 많은 여성분들이 '돈 많은 고아'를 이상형이라 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나는 돈 많은 고아가 이상형이라 말하는 친구를 스무 살 때 처음 보았는데 그때 나는 그 친구에게 심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줄 알았었다. 어쨌든 반쯤은 농담일 것이고 총체적으로 문제적인 표현인 건 사실이나, 2020년도 한국 여성들이 시가에 대해 느끼는 부담은 여전히 무겁다. 세상은 충격적으로 달라졌고 충격적으로 제자리다.


바깥세상 돌아가는 그림 한 구석에서 내 작은 세상도 있는 듯 없는 듯 굴러가고 있다. 일단 크림카레우동이 내 소울푸드로 등극했다. 나는 사실 어려서부터 카레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난봄 내 목이 정말 많이 아팠을 때 친구가 사줬던 크림카레우동을 한 입 먹고 세상이 달라졌다. 한 달이 지나도 떠날 줄 모르던 감기 바이러스를 다정함과 부드러운 우동 면발이 물리쳐주었다. 또 요즘 나는 길거리에서 동물의 사체를 너무 많이 보는 바람에 괴로워하는 중이다. 고라니, 새, 고양이, 쥐 등이다. 새는 꼿꼿하게 굳어 있었고, 고양이는 차에 짓이겨져 있었고, 쥐는 개미떼에 몸이 반쯤 덮여 있었다. 고라니 사체는 두 번 보았는데 두 마리 다 몸이 두 동강이 나서 도로 양쪽에 흩어져 있었다. 오늘은 집 앞 초밥집에 가는 짧은 길 횡단보도에서 방아깨비 사체를 보았다. 나는 며칠간 이 사태를 불길한 계시쯤으로 여겼는데 오늘은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방학을 맞아 버트란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고 있고, 오늘 아침에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대차게 내리는 비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오늘 내 세상은 느리고, 매우 슬프지만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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