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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

징크스

by 김현희

10대 때 내겐 징크스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거나, 험담을 하면 꼭 그 사람이 내게 갑자기 친절을 베풀거나, 행동 양식을 바꾸거나, 낯선 면모를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한 험담이나 몰래 품었던 좋지 않은 감정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같은 경우가 몇 년 동안 반복되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갑자기 내게 친절해진 게 아니다. 순서가 반대다. 상대방에게 적개심을 품은 것에 대한 무의식적 죄책감이 상대방이 베푼 작은 친절, 그동안 보지 못했던 면모에 대해 더 깊고, 강하게 해석하도록 만들었던 거다. 그 징크스는 내게 사람이란 복잡한 존재이고, 내가 마주한 잠시의 단편이 한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도록 했다. 그러한 자각과 함께 징크스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20대 때 새로운 징크스가 생겼다. 내가 싫어하거나, 함께 하기 피곤해하는 사람들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다. 특히 일터에서 내가 '이 분 완전 멘탈이 나갔는데' 싶은 분들이 갑자기 질병이 생겨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 그런 경우가 여러 차례 반복된 후, 나는 내가 정신과 신체의 연결을 비교적 잘 느끼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했다. 이 징크스는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일단 나와 충돌하거나, 내가 적개심을 품을 만한 사람 자체가 별로 없다. 옳든 그르든, 직장에서는 경력이 권력이 되기 쉽고 나도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내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한결 쉬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새로운 징크스가 생겼다. 정서적으로 힘들 때마다 경미한 접촉사고가 난다. 내가 실수를 하기도 하고, 신호를 기다리며 가만히 서있는 내 차를 누군가 난데없이 들이받기도 했다. 물론 마음이 심란하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는 쉬운 해석도 가능하지만 그 해석은 나 스스로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오늘도 작은 사고가 났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정신없이 출근해 네 시간 연속 수업을 해치우고, 같은 실에 있는 동료들에게 한탄했다. '나는 아무래도 운전하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 '사고가 날 때마다 무력한 기분이 든다' 등등. 동료들은 말했다. '넌 이미 잘하고 있어', '누구나 시간이 걸려', '그런 날도 있는 거지'.... 의미 없는 말인 줄 알면서도 오늘따라 힘이 됐다. 그리고 문득 이 징크스도 곧 사라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징크스란 주체의 선택적 기억과 해석일 뿐이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한 단계 높은 해석의 문이 열리는 순간 징크스는 나로부터 벗어날 구멍을 찾기 시작한다. 최근 들어 힘들 때마다 차 사고가 나는 것만 같았던 징크스는, 내게도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하는 신호인 것 같다. '넌 잘 살고 있어', '누구든 시간이 걸려',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지'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신호 말이다.



커버 이미지 'Young_Girl_with_Fish_Bowl'_by_Mabel_May_Wood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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