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자고 일어나니 폰에 이런저런 알람들이 와있다. 한 분회원은 본인 몸도 성치 않으면서 그 와중에 내가 걱정됐는지 위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조만간 서울에서 얼굴이라도 한번 뵈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분회에 들어가 보니 이제 한결 정제된 의견이 차분하게 오고 가서 한숨 돌린다. 역시 시간이 약이고, 사람은, 특히 우리 분회원들은 믿고 기다리면 내 기대를 뛰어넘는 방향으로 흐름을 잡아간다. 구글은 친절하게 '수프얀 스티븐슨'의 새 앨범 인터뷰 기사와 '테임임팔라'의 공연 일정 등을 안내해준다. '수프얀 스티븐슨'은 인터뷰에서 '오스카 시상식 공연은 내 인생의 트라우마'라 말했다. 그가 화려한 오스카 무대에서 알록달록한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노래하는 영상을 보니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덕분에 메이저 뮤지션으로 인정받고, 주위에서는 굉장한 성공이라며 축하했을 거다. 하지만 본인은 내면부터 붕괴하는 건물 속에 우두커니 서서 입 속으로 흙먼지가 밀려오고, 홀로 잔해들에 파묻히는 외로움을 맛봤을 거다.
사람은 누구나 맞지 않는 옷을 입을 때가 있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상황의 요구 때문일 수도 있다. 나도 가끔 그런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소꿉장난 같은 작은 조직이라도 자리를 맡은 이상 시스템도 챙기고, 사람들 마음도 챙기고, 가치와 지향점도 챙기고, 오지 않은 미래도 챙겨야 한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싶어 진다. 물론 크게 힘든 일은 아니고, 어찌 보면 교실을 챙기는 것과 구조적으로 별반 다를 바가 없어서 굳이 앓는 소리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거나 수프얀 스티븐슨 새 앨범을 당장 들어보려다 문득 멈춰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지금이 내가 10대였던 90년대였다면? 새 앨범 소식을 듣고, 버스를 타고 내가 자주 가던 핫트랙에 가서, 씨디를 사서,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씨디플레이어에 씨디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뮤지션들의 피와 땀과 영감이 담긴 작품을 들을 수 있는 시대지만, 그 정도 시간은 기다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멈춰있는 중이다. 기다리는 중에 시간을 보내려고 짧은 포스팅을 남긴다.